그건 누구의 말이었을까

이름을 지우는 시대

by 먼지잼

어린 시절, 내가 책을 읽고 깊이 느꼈던 문장과 감동, 통찰을 친구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그것을 마치 자기가 느낀 것처럼 다른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걸 들었다. 내 생각의 이름표가 사라진채로 유통되고 있는 걸 지켜본 그 경험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한 때 자기 계발서를 그저 성공한 어른들의 무용담쯤으로 여겼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내 시간을 내가 책임져야 할 때가 오자, 그 책들 속 문장이 단순한 무용담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자기 계발서의 장점은 단지 감동에 머무르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 구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책이 있다. 여러 번 정독했고, 책에 나온 '타임트래커'라는 도구를 실제로 삶에 적용했다. 나에게 맞는 타임트래커를 커스텀하기 위해 여러 번의 수정과 개선을 거듭했고, 직접 제작해 기록했다. 그 과정을 친한 친구와 나누며 피드백도 주고받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 책이 나의 시간을 바꿨고, 내 일상에 리듬에 변화를 주었으며,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책의 저자들은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그들의 강연을 들으러 다녔고, 유튜브를 구독하며 언젠가는 그들처럼 단단한 삶을 살고 싶다고 꿈꾸기도 했다.


어느 날, 그 책이 '표절 의혹'에 휘말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떠올랐다. 그것은 단지 책 한 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믿은 사람이, 내가 감동한 문장이, 내가 실천에 옮겼던 삶의 방식이, 사실은 누군가의 말을 짜깁기 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 앞에서 나는 내 성장에 대한 의심마저 생겨났다.


물론 내가 받은 감동은 진짜였고, 변화도 진짜였다. 그저 그들이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 단지 그뿐이었지만 충격은 가볍지 않았다. 나는 문장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쓴 사람의 진심에 반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말의 주인이 아닐 수도 있다면, 나는 대체 누구의 삶을 모델로 삼아 살고 있었던 걸까? 그때부터 나는 문장 하나를 통해 내 삶을 바꾸는 일의 위험성을 깨닫게 되었다. 감동을 믿게 한 '사람'이 사라졌을 때, 받는 무력감은 생각보다 컸다. 그 문장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마음은 움직이지만, 그 말을 처음 전했던 '그 사람'을 말할 수 없는 지금, 내 감동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뿐만 아니라, 그 책이 내 인생의 책이라며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며 추천했던 시간마저 부끄러워졌다.


이 경험 때문인지 나는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전자책 부업'의 흐름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SNS에서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AI 도구를 활용해서 하루 만에 책 한 권을 쓰고 수익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수많은 강의가 그 방법을 팔고 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 강의에 몰려든다. 출판이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판매를 목적으로 한 순간 창작의 순수성은 무너진다. 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진심이 아니라,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의 문제가 되어버린 듯 하다. 누군가의 블로그 글, 강연 노트, 유튜브 스크립트를 모아 짜깁기해 전자책을 만든다. 출처는 흐릿하고, 표현은 모호하며, 저작권이라는 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면서. 심지어 "판매에 실패한 독립출판물을 사서 표지만 바꿔 다시 출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강의가 있을 정도다.


이것이 단지 법의 문제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윤리의 문제고, 감동의 책임에 대한 문제다. 콘텐츠를 만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말들을 편집해 '팔리는 말'로 바꾸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문장도 감동을 주고,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감동은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나는 진리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진리는 전달 방식을 넘어 살아남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진리'에 반응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진리를 말한 사람'에 반응하고, 그 사람의 고백에 감동하고, 그 진정성에 기대어 움직인다. 그래서 저작권은 단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의 문제다. 그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을 기억해 주는 일, 그 감정을 책임지는 이름을 함께 전해주는 일이 바로 저작권이 지키려는 윤리의 핵심이다.


전자책 부업의 시대. 말은 넘쳐나고 이름은 지워진다. 책의 외형은 남았지만, 저자에 대한 신뢰는 점점 사라진다. 나는 이제 어떤 문장을 읽을 때, 그것이 누구의 말인지 먼저 묻게 되었다. 그것이 진리라면, 그 진리를 처음 붙잡은 사람의 이름도 함께 기억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감동 앞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며, 정보가 범람하고 있는 시대에 중심을 지키는 법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감동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 말이 나를 바꿨다면, 그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을 기억하려는 태도가 독자의 윤리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전도서의 말씀은, 우리가 오리지널리티를 포기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진리의 정신은 늘 존재해 왔다'는 선언이지, 그 정신을 빌려와 감정만을 재판매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창작은 재창조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가 되려면, 그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을 기억하려는 정직함이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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