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에 흐르는 엄마표 양념
엄마는 요리가 서툴렀다.
아니, 딱히 요리를 잘 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듯했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먹는' 일에 대한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었나보다.
학창 시절, 내가 졸업하고 나서야 학교에 급식실이 생기곤 했다. 이 말의 뜻은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내내 난 도시락을 싸지 않으면 점심을 먹을 수 없는 학생이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엄마는 요리가 서툴렀다. 도시락 미션은 엄마에게는 몇 년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난제였다. 어쩌다 한번 도시락을 싸주는 날에는 절반은 밥, 절반은 계란말이인 도시락을 받아야만 했다. 낱개로 파는 조미김과 함께... 딸이 뭘 좋아하는지, 뭘 먹는지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어쩌다 가족들이 한 식탁에 모여 앉은 날이면 먹었던 김치찌개, 계란말이, 김, 김치 외에 딸이 뭘 먹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엄마에게 길들여진 난 편식이 심했다. 흔한 햄, 소시지, 고기반찬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밥상에 올라오는 한 가지 반찬만 있으면 됐다. 김치찌개, 계란말이에 밥 한그릇이면 한 끼 식사 끝이었다. 엄마가 나를 이해하는 수준이 결국 내 수준이었다. 그 영향 때문일까? 난 성인이 되어서도 한식을 먹으려고 하면 좀처럼 반찬에는 손이 가질 않는다. 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비빔밥, 볶음밥은 선호하지만 칠 첩 반상은 나에게 아무런 흥미도 감탄도 자아내질 않았다. 그중에 먹을 수 있는 건 몇 개 되지도 않는 걸 뭐.
요리가 서툰 엄마에게도 절대 실패하지 않는 절대 요리가 있었다.
바로 '매운 양념' 요리다. 매운맛이라면 절대 실패하는 일이 없었다. 국은 못해도 찌개는 능통하달까.
내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생일날이면 집에서 생일잔치를 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날만큼은 요리가 서툰 엄마도 어떻게든 솜씨 발휘를 해야만 했다. 그래도 하나뿐인 딸 생일에 친구들을 모아두고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만 내놓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친구들에게 솜씨 좋게 직접 만든 생일잔치 초대장을 보내고 오전부터 분주한 엄마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려주었다. 꺼낼 때마다 왠지 모를 나무 냄새가 나는 체리빛 상 위에 차곡차곡 나를 위한 음식들이 쌓여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했다. 버터크림 케이크, 김밥, 잡채, 탕수육(!), 불고기, 각양각색의 초콜릿과 과자들. 그중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엄마표 떡볶이였다.
아무런 채소도 없이 빨간 양념에 가래떡만 있는 떡볶이는 쫄깃하고 매콤하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었다. 다만 흠이 있다면 너무 매워서 나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한 입만 먹어도 입에 불이 나는 맛이라는 것이었다. 신나게 먹고 있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입안 가득 고인 침을 삼키며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떡볶이를 눈으로만 바라봤다.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학의 이야기처럼. 초대받은 사람들은 손대지 못하고 초대한 사람만이 실컷 배를 불렸다. 내 생일이니까 내가 주인공인 게 당연하지!
온몸의 감각을 다 마비시킬 것 같은 강렬한 매운맛은 지금도 나의 소울에 흐르고 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맵다는 음식점은 다 찾아가서 도전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엄마표 매운맛에 길들여진 나에게는 항상 '먹을만한데?'라는 평을 벗어나기 힘들다.
엄마의 요리는 30년 전과 지금이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김치찌개와 떡볶이, 닭발만은 꼭 엄마에게 부탁해서 먹는다. 매운 맛은 역시 김여사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니까, 라고 치켜 세워주는 건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