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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옹일기 Nov 24. 2020

01. C, 나의 첫 번째 고양이에 대하여

1번이 없었다면, 4번도 없었을 거야.


만약 털이 있는 동물을 키우게 된다면,

그건 무조건 하얀 강아지일 거라고.

어릴 땐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회색 고양이 / COON / 10짤


| 너 땜에 내 기분이 '조쿤'


 그 즈음 유행하던 고양이 카페에 친구를 따라 두어 번 놀러를 갔던 것이 문제였나. 그 친구가 '러시안블루' 노래를 부른 것 때문일까. 10년이 넘도록 간직한 다짐은 온데간데 없이, 정신 차려보니 우리 집엔 새끼 러시안블루가 와 있었다. 당시의 연인이었던 지금의 남편이 준 선물. 링웜(고양이 피부병)으로 이마에 동전만한 구멍이 나 있었던 회색 쥐 처럼 작았던 고양이. 그 시절의 인기 아이돌 2PM 닉쿤의 이름과 고양이를 선물한 남자친구의 성을 따 '조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잘생기고, 멋진 고양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쿤이가 처음 내 침대에 누웠을 때의 작은 진동을 기억한다. 골골, 고르릉, 그릉그릉. 왜 이러지? 아픈 건가?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아 핸드폰 검색창을 켰다. 뭐라고 검색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양이 그'까지 치니 '고양이 그르릉 소리'가 떴다. 그 뜻을 알고 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너 지금 행복하구나. 우리는 아직 서로를 안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너는 나 때문에 행복하다니. 작은 온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행복을 줄 수 있다니!

  

 쿤이에게 내가 처음이었듯 쿤이도 내게 처음이었다. 복슬복슬 털이 많은 그 동물이, 내겐 마치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 같았다. 쿤이가 조금 아파 보여 병원에 갔을 때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고 펑펑 울었다. 휴지를 건내주던 의사 선생님의 난감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막내 고양이가 잠복 고환이라 개복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에도 제법 의연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지만, 10년 전의 내겐 하늘이 무너지는 일 보다도 쿤이의 폐렴이 더 큰 일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펑펑 울며 남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 나중에 듣게 되었지만,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많이 키워봤던 남친은 그 때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고.

  


| 종이 다른 가족


 고양이를 키우기 전만 해도, 아니 쿤이를 키우기 시작한 직후에도 동물을 대상으로 '아들'이니 내가 너의 '엄마'니 하는 소리는 어쩐지 불편했다. 사람과 동물이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 진짜 자식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누나'는 편했다. 다년 간의 반려 경험을 보유했던 남자친구는 거리낌 없이 쿤이에게 '아빠'를 자처했다. 아빠가 이거 해 줄게, 아빠한테 왜 그래? 그리고 나는 그 뒤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기 일쑤였다. 


 언제부터였을까. 너를 향해 스스로를 '엄마'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한 치의 거리낌 없이 부르게 된 것이. 한낮의 햇빛 아래서 잠든 너를 숨 죽여 바라보는 일. 들릴 듯 말 듯 고로롱 낮은 행복의 음파를 가만히 귀 기울여 찾아 듣는 일. 어느 순간 내게 그런 일들은 빼 놓을 수 없는 루틴이 되었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위로를 듣는 사이. 진짜 가족보다도 더 많은 (마음의)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정말이지 이건 가족이 아닐 수 없잖아.


그리고 침대를 나눠 쓰는 사이


| 안 좋은 거만 닮았냐


쿤이는 나와 많이 닮았다. 물론 그 길쭉하고 마른 팔다리와 잘생긴 얼굴은 빼고. 


유독 잠이 많고,

잠에서 깨면 짜증이 많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기분이 좋다가도 돌연 울적해지고,

좋으면서도 상냥하지 못한 표현,

하나에 꽂히면 광적으로 집착하는 성향.


(대부분 좋지 않은 성격을 많이 닮음)



 이제 곧 11살이 되는 이 고양이는 사람 나이로 치면 이미 나보다 훨씬 어른이다. 그러니 화를 내고 역정을 내셔도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행여나 스트레스를 받아 연로하신 육신이 쇠약해지지는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8살이나 어린 동생 놈이 우다다 하는 것이 시끄럽다고 달려가 주먹질을 날려주는 것도, 괜시리 집사 다리를 툭하고 한 대 치고 지나가는 것도, 매일 아침 옷방 문을 열어달라고 광적으로 긁어대는 일도. 그래서 고맙다. 



 남편과 나는 매일 저녁 식탁에서 비슷한 대화를 나눈다. 10년 전 회색 쥐 같은 너를 좁은 원룸으로 데리고 오던 그 날을 떠올리며 '아마 쿤이가 없었다면 나머지 고양이도 없었을 거야' 식의 말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그래. 아마 쿤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리 집엔 하얀 포메라니안이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제 고양이 아니면 안 되는 그야말로 '냥창' 인생이 되었다. 어딜 가든 고양이만 보이고 우리 집 고양이만 생각을 한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무조건 고양이'라고 생각할 지경이다.   


 나는 아마 언젠가 먼 훗날 네가 네 별로 돌아가려고 할 때 가장 큰 울음을 울겠지. 그리고 꼭 다음 생애엔 너와 같은 고양이로 태어날 거야. 따뜻한 햇볕 아래서 고운 네 털을 핥아주고, 온 몸에 힘을 빼고 네게 기대 누워도 불편하지 않도록.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앞으로도. 너는 내게 가장 빛나는 고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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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고양이 C 

2011년 7월 17일에 태어난 러시안블루

네 마리 고양이 중 첫째 고양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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