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라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물건들의 이름을 알아내기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챗GPT 같은 툴이 발전을 해서 질문 한 번에 사물의 명칭을 알아내기가 훨씬 쉬워졌겠지만, 고생스럽게 알아내는 과정을 포함해서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도 AI를 이용해 확인해 본 적은 없다. AI야, 손톱 아래쪽의 반달 모양의 흰 부분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려줘, 라고 해서 답을 들으면 일이 너무 쉽게 풀리지 않는가. 이런 이름들은 여러 가지 역경을 이기고 알아내야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다.
예컨대 컵케이크나 케이크 위에 올라가 있는 반짝반짝한 코팅된 달달한 구체를 아라잔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았을 때에는 무척 기뻐서, 필요도 없는 아라잔을 무심코 구매해 버리고 말았을 정도이다. 지난해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만들고자 이리저리 구부려 모양을 잡아 공예에 쓸 수 있는 털 달린 철사를 사려고 했는데, 이것이 모루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몰라서 온갖 수수께끼같은 검색어와 한참 씨름했지만 그만한 보람이 있었다. 파도의 반짝임을 나타내는 윤슬이라는 단어는 마치 될성부른 연예인 지망생을 알아본 사람처럼 더 많은 사람이 알기를, 하지만 너무 널리 알려지지는 않기를 슬쩍 바라기까지 했었다.
흔치않은 단어를 발견하는 일을 좋아하니 언젠가 지인이 독일어 공부를 추천해 준 적이 있었다. 독일어의 조어 방식은 조금 독특한 면이 있다. 두 개의 단어를 이어붙이면 그대로 무난하게 단어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한국어로 '이어폰을 낀 채라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빨대로 음료를 시끄럽게 빨아먹는 사람' 이라고 적으면 어떤 인물에 대한 묘사적 표현이 되지만, 독일어로는 이 표현을 띄어쓰기 없이 전부 붙여서 쓰면 그대로 명사처럼 활용할 수 있단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신문을읽으며머리긁기' 라고 설명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아니고, 아라잔이나 모루처럼 사전 정보 없이 들어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단어이다. '딱딱한코팅과자'가 아니라 드라제, '찻잎쥐고비비기'가 아니라 유념이 좋은 것이다.
왜 이런 단어들에 열광하고 열심히 기억해 두는지는 장본인인 나로서도 알 수 없다. 흔히 사용되지 않는 단어를 선호하는 성향인가본데, 그러한 성향을 부르는 명칭이 있는지가 또 궁금하다. 나와 같이 사물의 이름 모으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부르는 단어도 어딘가에는 존재하지 않을까? 이름 수집가의 모임을 만들어 서로 그 달에 새로 모은 단어를 공유한다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