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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Grace Oct 09. 2022

투자사의 카톡방에서 벌어지는 일

투자 #VC #카톡방 #단체카톡방 #스타트업 #CEO #대표의삶 #인생리






투자사의 카톡방에 초대를 받았다. 그때는 투자 논의 중이었는데, 논의는 거의 마무리 되었고, 계약서에 도장은 찍기 전이었다. 나는 속으로 투자가 확정이 되었구나 안심을 했다. 거기엔 이미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100분 조금 안되게 있었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투자를 받은 대표님들이 들어감으로 인해서 피투자 기업이 100개가 넘어가는 중이었다. 투자사의 매니저님들, 기타 타 기관에서 함께 다양한 정보를 교류하는 방이었다. 드디어 인사이더들만 받을 수 있는 귀한(?) 정보들을 제공 받는 인사이더 클럽이 초대를 받은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카톡의 알림이 꺼질 날이 없다. 이 방에서는 주로 공지나 홍보를 피투자기업에 한꺼번에 전달을 하는 용도로 사용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알림이 떠서 들어가보면, 새로운 지원 사업에 대한 정보와 링크가 올라와 있다. 링크를 타고 이것저것 살펴본다. 투자사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홍보가 된다. 나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나 살펴본다. 다양한 정보들이 교류가 되고 있고, 다양한 분야의 대표님들이 계시니, 뭔가 다양한 도움도 받을 수 있을것 같았다.


제품 판매를 하시는 대표님들은 자주 홍보 글을 나누었다. 추석 선물 같은 시즌별 선물이나 직원들 선물을 다른 대표님이 판매하는 제품으로 구매를 하기도 한다. 이왕이면 스타트업을 돕는게 더 좋기 때문이다. SNS 홍보를 부탁하기도 하기도 하고, 자사 서비스가 런칭되는 소식도 알린다. 가끔은 어떤 서비스를 하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관심이 가는 회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저렇게 찾아보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회사에 관한 언론 기사를 공유하는 대표님들도 있다. 그중에 하일라이트는 후속 투자를 받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모두 축하를 하느라 카톡방이 쉴 틈이 없다. 


동일한 프로그램을 이수한 A사와 우리 회사는 같은 시기에 투자를 받았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간단하게 축약하고, 1년 뒤로 가보자. A사와 우리회사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A사는 트렌드에 맞는 기술을 가지고 미래시대를 선도할 기업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TIPS에 선정이 되어 R&D 개발을 더욱 안정적인 환경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는 건물의 대표 스타트업으로 전시회도 나가기도 했고, 직원도 빠른 속도로 늘려 나갔다. 이 승승장구의 중간결산은 후속투자다. 아찔한 후속투자를 성공리에 마무리하고, 우리와 함께 있던 공유 오피스를 떠나 자체 사무실을 갖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고객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매출과 비용을 맞추지 못해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대출을 받아 개발을 이어갔다. 짠돌이처럼 돈을 아껴써서 일까? 아니면 펑펑 의미 없이 개발을 해서일까? 대출금은 다 쓰고,  금리인상으로 이자만 2.5배가 늘어 이자 조차도 갚지 못하는 '좀비기업'이 되어버렸다. 마지막 사활을 건 개발을 하고 있지만, 이게 얼마나 성과를 보일지 예측하기도 힘들다.


어느 통계에서 스타트업들의 2%만 VC로 부터 투자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카톡방에 모인 스타트업들도 사실 2%에 해당하는 실력있는 기업들이다. 그럼 다양한 분야의 100개 이상의 스타트업들이 모여있는 이 카톡방의 스타트업들은 어떤 상황일까? 이곳에 80/20법칙을 적용해보자. 이 중 20% 정도가 잘나가고 있을테고, 80%는 잘 되어가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있을 것이다. 정말 희망차게 봐서, 나머지 80%중에서도 그나마 20%는 어느정도 발버둥을 치면 승산이 있겠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또 나머지 80%는 나 처럼, 엄청나게 힘든 순간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작은 회사가 작은 돈으로 비어있는 시장을 빠르게 빨견하고 서비스를 개발해 고객의 사랑을 받고, 매출까지 얻어내기란 정말 대단한 운과 실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투자사의 카톡방에서 그걸 해내고 있는 멋진 회사들의 소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전달해 듣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겪는 경영의 어려움과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각자의 발버둥, 처절한 경험들이 공유되고 나눠지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 내밀한 속사정이 가끔 올라오기는 해도, 그조차 어느정도 필터링 된 것이다.


나만해도 이 과정속에서 배운것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지금 막 회사를 창업한 대표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한둘이 아니다. 이 어마어마한 경험들을 공유하고 나눈다면, 정말 모두에게 유익이 되겠지만, 그런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간혹 모든것을 속시원하게 공유하고 조언을 구하고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투자사와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대표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카톡방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투자사에게 피투자사의 속 사정을 다 말할 수 없거니와 다른 회사들도 모두 보고 있는 공식 대화방이기 때문이다.


후속 투자를 성공리에 받은 대표님의 노하우라도 공유를 받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후속 투자를 받고 싶어도, 회사의 성장 지표가 후속 투자를 받을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투자자를 만나러 갈 수가 없다. 새로운 솔루션, 피봇팅을 할 해결책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 일을 실행할 인력과 자금이 필요하다. 그 순간에 자금이 떨어지고, 정부 과제라도 선정이 안되면 대출을 받거나 문을 닫아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어려움을 다들 어떻게 해처 나가고 있는지, 어디서든 속시원이 나눌 곳이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러 회사의 대단한 성장 소식을 듣고 있다보면 성장 피로증(?) 같은 것이 생기게 되었다. 어느 대표님이 100억 이상의 후속 투자 소식을 나누고 나면, 10억 투자는 별것도 아닌것 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보니 어쩌다 운이 좋게 투자 받은 몇 억, 몇 천만원은 껌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파르게 성장하는 다른 회사들 소식에 정말 마음을 담아 진심 어리게 축하를 하고 있다보면, 느려터지게, 혹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우리 회사 상황이 떠올라 조급해진다. 해결책을 찾던 머릿속이 심란해지고 마비가 되는것 같다. 다들 잘 하는데, 나만 잘 못하는것 같다. 과연 얼마나 많은 대표님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까? 


그러던 어느날 핸드폰에 용량이 꽉 차서, 카톡 대화방의 내용을 지우고 더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는 방은 나가고 정리를 했다. 그러자 카톡이 덩달아 조용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투자사의 카톡방이 보이지 않는것을 깨달았다. 아차! 내가 실수로 그 방을 나온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마음에도 조금 평화가 온 것을. 다른 회사들의 눈부신 성장과 대단한 활약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자, 나만의 길을 생각하는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내 속도를, 내 페이스를 찾아가게 되었다.



1986년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차보고서에서, 워런 버핏은 CEO로 보낸 첫 25년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배운 가장 중요하고도 놀라운 교훈에 대해 언급했다. 그것은 십대 또래집단의 압력 같은 것으로, 업계에서도 CEO들이 다른 경쟁자들을 모방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는 이상한 기운이 있다는 것이었다. 버핏은 곳곳에서 출몰하는 이 강력한 기운을 '제도가 가하는 압박'이라고 이름 붙이고, 유능한 CEO가 되기 위해서는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 현금의 재발견 P35


나는 투자사 카톡방에서, 워런 버핏이 명명한 '제도가 가하는 압박'을 경험했다. 그리고, 우연히 실수로 그 카톡방을 나오자 거기서 벗어났다. 아주 손쉽게. 지금도 그 카톡방에서 수 많은 압박을 받을 대표님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우연히 실수로 그곳을 나올 수 있는 축복을 경험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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