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숙소 바로 옆 아쇼카 레스토랑에서 벌겋게 덜 익은 닭고기를 먹은 게 화근이었을까.
그 화근이 시작된 시간은 우리 일행이 박수 나트에 있다는 뭔가 미스터리하고 소문만 흉흉한 미지의 카페로 걸음을 옮기는 중에 일어났다.
다행인 건 마을을 얼마 지나지 않아 걸음을 돌릴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때 배에 신호가 왔다는 것.
그날부터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배앓이를 시작했다.
이미 한국의 지사제는 듣지도 않을 정도로 지독한 인도의 물갈이에 대해 익히 들어왔던 터라
내려오는 길에 약국에서 약을 지어왔다.
약사와 의사소통의 문제였을까.. 약을 먹고 나서 조짐만 보이던 배앓이는 고삐를 풀어버렸다.
맥간에서 우리는 방값을 아끼겠다며, 큰 방 하나를 빌려 5명이 같이 사용했는데, 화장실은 하나였다.
그리고 맥간은 산속에 있어서 아주 안타깝게도 검고 큰 물탱크에 물을 저장해놓고 사용했던 때라,
물이 항상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우리 5명 모두 물갈이를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아주 열악한 맥간의 화장실은 우리를 감당해내지 못했다.
호텔 주인이 자기 몸통의 두배에 달하는 고무통에 물을 가득 받아다 줬지만, 5명의 변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우리는 각자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못 참겠을 때 한 번씩 가기로 했다.
한차례씩 갔다 오고 내 차례가 왔을 무렵 직감적으로 고삐가 풀리는 순간 어마 무시한 산사태 소리가 날 것임을 직감했다. 나는 화장실 앞 티브이의 볼륨을 최대한으로 올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한참을 산사태가 일어나는 길고 긴 다튜멘터리 한 편을 찍고, 모든 체력을 소진한 뒤,
기어 나오는데 역시나 영혼을 흘려보내고 널브러져 있는 일행 한 명이 그나마 남은 힘을 짜내 건넨 한마디..
oo아.. 다 들려. 시끄러우니까 티브이 꺼.
인도의 물갈이를 해본 적이 있는가.
인도의 물갈이는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100% 찾아왔다. 짧게든 길게든.
혹시나 여행 중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한국에 돌아가서도 찾아오는 아주 지독한 놈이었다.
내 동생 같이 심한 경우에는 여행 내내 함께해서 그렇게 원하던 다이어트를 강제로 하고,
영혼이 빠져나오기 직전에 살기 위해 조기 귀국을 했다.
너무 더러운 얘기라 하고 싶진 않지만,
정말 사람의 몸에서 어떻게 이렇게 석탄 같이 새카만 변이 나올 수 있는지에 한번 놀라고,
사람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괄약근을 무장해제시켜버린 채 유전에서 터진 석유처럼 나오는 것에 두 번 놀라며,
나의 장길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지치지 않고 끝도 없이 나오는 것에 세 번 놀라게 된다.
하루를 쫄딱 굶고 좀 잦아든 것 같길래 일식 레스토랑에서 아주 조금 된장 국물을 마셨다.
그리고 나는 머리가 파래지며, 인도의 시바신을 잠시 만난듯하다.
인도의 시바신께서 감히 음식을 손에 댔다는 이유로 아주 호되게 혼이 나는..
갑자기 배가 꿀룩거리기 시작하더니 산사태의 신호가 다시 오기 시작했다.
이제 더 나올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작은 일식당에 화장실은 없었고,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뒤도 안 돌아보고 숙소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달릴 수도 없었다. 달릴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이 아수라 백작처럼 한 발로는 뛰고, 한 발로는 걷듯이 엉거주춤 걸어가는데 괄약근이 더 이상은 인도의 신이 내린 벌을 이겨낼 수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눈물이 그렁한 채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의 발뒤꿈치가 왜 존재하는지를.
괄약근이 문지기 역할을 해내지 못했을 때,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나는 터미네이터의 명장면처럼 주저앉아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리고 물갈이님이 내 몸을 떠나실 때까지 조용히 금식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