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날리에서 우리는 또 다른 여행자를 만났다.
새카만 뱅 앞머리를 하고, 웃을 때 보조개가 들어가는 단아하고 예쁜 까만 피부를 가진.
언니 역시 티베트를 여행하고 왔다고 했다.
티베트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다 특이한 걸까?
아님 특이한 사람들만 티베트를 여행하는 걸까?
정상인 것 같아 보이는 이 단아한 언니의 방에 놀러 갔을 때 가히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니는 정말 대단한 맥시멀 리스트였다.
우선 히말라야 브랜드에서 나오는 모든 종류의 화장품이 간이 화장대를 튀어나와 낮은 서랍장 위에까지 진열되어 있었다.(스킨, 로션, 수분크림, 아이크림,립밤,팩 등등) 히말라야 브랜드에서 그렇게 많은 종류의 화장품이 나오는지 처음 알았다. 내가 아는 히말라야 브랜드는 고작 230원짜리 립밤이 전부였으니까.
스마트폰은 없었던 때지만 MP3가 분명 존재하던 시기였는데 CD플레이어와 함께 책 한 권 두께 정도가 되는 컬렉션 CD를 들고 다녔으며, 파울로 코엘료의 영문서적을 보일 때마다 수집해서 7,8권 정도가 들어있는 파울로 코엘료 전용 백이 따로 있었다. (한창 '연금술사'책의 인기로 파울로 코엘료의 영문판 서적을 하나씩 모으는 여행자들이 많았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영문 서적을 쉽게 구하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만난 맥간의 어느 세컨핸즈 샵에서 한 권을 더 추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아마도 피사체가 된 티벳탄들에게 나눠준다는 이유로- 티베트에서 찍은 사인을 굳이 인화해서 한 뭉텅이의 짐을 늘렸으며, 티베트와 인도 북부에서 산 두터운 담요 역시 기본 2장은 있어줘야 했다. 내가 언니의 방에서 파악한 짐은 겨우 이 정도. 이동을 위해 숙소에서 펼쳐져있던 짐들을 챙겨 나왔을 때 정말 나는 언니가 짐에 파묻히는 줄 알았다. 양손에 발목에서 무릎까지 가득가득 찬 쇼핑백 여러 개를 양손에 들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올 법한 커다랗고 통통한 애벌레를 등 뒤에 업고 있었다.
아니 저걸 어떻게 이고 지고 여행을 다니는 거지? 보기만 해도 내 허리가 아파오는 느낌이다.
아직 여행 초짜인 나도 쓸모없는 집이 한가득이었는데, 예를 들면 헤라클레스나 썼을 법한 두께의 쇠사슬이라던가, 혹시나 무서운 인도인들을 내리칠 때 사용할 수도 있는 쇳덩이로 된 자물쇠 여러 개라든가)
그 날 가장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600페이지에 달하는 <와인의 역사> 책을 미련 없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