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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Sep 26. 2022

나만 아줌마 아니야

<나의 아줌마 관찰기>

같은 수업을 듣는 17명의 학생들 중에서 나만 애 있는 아줌마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저도 아이가 있어요”


이 말 한마디를 주고받음과 동시에 우리는 금세 두 손을 맞잡았다. (진짜로 손) 겨우 두 번 만나 처음 말을 섞는 사이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수가 있지?


그럼 지금 애는 어디에 두고 왔어요. 지금은 누가 맡아주고 있어요. 어머 그럼 집에서 학교까지 얼마나 걸려요. 이전에 무슨 일 했어요. 질문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수업을 마치고 교문까지 내려오는 동안 쉴 새 없이 떠드는 것 보고 다른 학생들은 원래 우리가 아는 사이인가 보다 했다고.


그래 니맘 내가 알지. 응. 그럼 그럼. 무슨 고비를 넘기고 넘겨 여기 이 수업에 와서 앉아 있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다 알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내가 아줌마인 까닭이다.


같은 수업에 딱 한 명. 나 같은 사람 또 있네. 하는 사실 하나만으로 느껴지는 안도감. 안심. 여유. 휴!


같은 처지의 아줌마 학생과 못다 한 이야기는 나중에 마저 하자며 (응?) 헤어지고, 다른 학생들과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리가 났길래 멀리 가는 학생 앉으라고 얼른 자리를 내어주고 그녀 앞에 서서 목적지까지 간다.


찰캉찰캉 움직이며 이동하는 지하철, 후텁지근하게 꽉 찬 공기. 아직 초면이라 약간 어색한 틈새는 웅성거리는 소음이 메워주고 있는데,


앞에 앉은 20대의 학생이 대뜸.

“부러워요.”


응? 뭐가 부러워요. 물어보니,

본인은 기숙사에서 자취를 하는데, 자취방이 내 방도 아니고 언젠가는 이동해야 하는 장소라고 생각하니 집 같다고 여겨지지가 않는다고.


또 언니가 결혼해 먼저 아이를 낳았는데, 조카가 무지무지 귀엽고 사랑하지만 자기가 결혼해서 애를 키울 생각을 하면 벌써 막막하다고.


학비도 대출을 받아서 갚아나가고 있지만 이게 다 빚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고도 했다. 결혼한 분들은 남편이 내주거나 모아 둔 돈으로 낼 수 있다는 게 부럽다고 했다. 본인은 졸업 후에 취직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식사는 어떻게 하냐 물으니 기숙사에 공용 부엌이 없어서 식당에서 사 먹거나, 식사 시간을 못 맞춘 날에는 편의점에서 때운다고 했다.


가만가만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나의 이십대로 타임워프 하는 것 같았다. 곱게 가라앉아 있던 기억들이 찰캉찰캉 흔들리며 되살아 났다.


뭘 계속 바쁘게 하고 있으면서도 잡힐 듯 잡히지 않던 불안감. 부레옥잠처럼 수면 위에 부유하면서 물살 따라 이리로 갔다가 그다음 저리로 표류하고 있는 기분.


이야기를 서서 가만히 듣다가 몇 정거장 되지 않아 환승역에 내려야 했다. 가서 저녁 잘 챙겨 먹어요! 황급히 닫히는 문에 이 말만 꽂아 넣고.


역 밖으로 나오니 일교차가 심해 밖이 쌀쌀했다. 내 이럴 줄 알고 가방에 가디건 하나 챙겨 왔지. 집에 쏠랑 들어와서는 부엌으로 곧장 가 냄비 바닥에 남은 국을 팔팔 데워서 식은 밥 한 덩이 풍덩 빠뜨려 말아먹었다. 짜다.


아까 걔 반팔 차림이던데. 겉옷 챙겼나. 이 밤에 들어가면 뭐 먹을 게 있나. 아줌마의 오지랖이 뻗쳐 간다. 안다. 챙겨줄 것 아니면 암소리 말아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부엌 식탁에 앉아 국에 말은 짠 밥을 먹는 동안 나의 생각은 브레이크 없이 멀리까지 나아간다.


‘부러워 할거 전혀 없는데….’


여전히 나도 혼자를 기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밤과 낮의 날씨가 언제 어떻게 변하는지를 감지하고, 일부러 가방에 모자나 겉옷을 챙기는 일을.


애매하게 남아버린   그릇을 버리지 않고 옮겨 담아 하루쯤 남겨두는 일을, 식은 밥을 해결하는 방법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보살핌과 동시에 내가 내 앞가림 할 방법을 생각하기를 놓지 않고 있다.


아이의 하원 시간에 늦지 않을 수 있는, 거리와 보수와 노동량이 딱 맞는 밥벌이를 끝없이 찾는다. 남편과 나와 아이, 세 명이서 동시에 굴리고 있는 톱니의 모든 바퀴가 이격 없이 딱 딱 맞물려서 돌아가도록 부지런히 기름칠을 한다.


언젠가 별안간 톱니를 분리해야 할 날에 대해 떠올린다. 그런 날이 오더라도 내 톱니가 닳지 않고 굴러갈 수 있도록 나를 돌보고 돌본다.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할 일도 없고 너와 나의 시간을 비교할 필요도 없지 않나. 부럽다는 것도 아마 그냥 으레 하는 말이었겠지만.


밥공기에 물을 부어두고 씻으러 들어간다. 다음 주 수업 땐 고구마를 조금 싸가자. 오븐에 팍 구운 식은 고구마 쉬는 시간에 쪼개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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