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독(旅毒) 마저 고마운

by 따듯한 바람

아이가 4월에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제주항공을 타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4월의 수학여행과 제주항공으로 떠오르는 사건들을 입밖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에선 여러 생각이 오고 갔다. 즐겁게 잘 다녀오라 말하고 웃어주었지만, 걱정이 되었다.


그런 생각들이 무색하게 아이는 내가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사진을 찍었던 천지연 폭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왔다. 수학여행을 앞두고, 아이에게 용돈을 건네고 체크카드에도 충전을 해두었다. 아이는 외동이라 그런지, 남편과 나의 지인들이 종종 아이를 기억해 주고 선물을 주시곤 한다. 최근에도 제주도와 해외를 다녀온 지인들께서 아이를 떠올리며 과자를 사다 주셨다. 그래서 아이에게 말했다.


“오는 길에 면세점에서 초콜릿이라도 사 와서, 선물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이른 아침, 아이는 밥을 먹고 옷을 챙겨 입고 미리 싸둔 캐리어를 끌며 총총히 집을 나섰다. 헨젤과 그레텔이 남긴 빵 부스러기처럼, 아이는 체크카드 사용 알림을 나에게 남기고 있었다. 아, 지금은 김포공항에 도착했구나. 아, 지금은 제주 오설록에 있구나. 알림이 뜰 때마다 마치 아이가 걸어가는 길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편의점에서 음료수나 과자를 사 먹은 흔적을 지나, 오설록에서의 결제 내역은 선물을 샀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후로는 큰 결제는 없었으니, 선물은 거기서 다 골랐구나 싶었다.


오설록 차를 선물로 주겠구나 생각했는데,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어제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제주 황칠 오메기떡 한 박스, 오설록에서 산 차, 제주 땅콩과 감귤로 만든 과자, 제주 타르트, 바움쿠헨 그리고 귀여운 감귤 인형까지 들려 있었다. 아이는 말했다.


“우리 반에서 내가 선물을 제일 많이 산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정말 많은 선물들을 이고 지고 돌아왔다. 오메기떡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가방 정리까지 다 마치고 옷은 세탁기에 넣어두고 피곤한지 아이는 잠이 금방 들었다. 엄마가 충전해둔 체크카드는 첫날 쓰다가 둘째날부터는 아빠가 준 현금용돈으로 쓴 것 같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체크카드는 돌아오는 공항 편의점에서 사용하고 선물은 현금으로 샀다. 카드를 쓰면 현금은 남을텐데, 왜 카드를 안쓰고 현금을 썼는지 묻지는 않았다. 퇴근한 남편과 오메기떡을 먹으면서 너무 신기했다. 캐리어를 끌며 저 오메기떡 박스와 오설록에서 산 차와 동문시장에서 산 선물들을 이고 지고 온 마음이 고마웠다. 그중에 한라봉 오메기떡이 맛있어서 간식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다 먹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두었다. 자고 일어난 아이가 먹을 걸 남겨두라고 했다.


아침이 돼서 보니 아이는 한밤에 중간에 일어나 컵라면을 하나 먹고 다시 잠을 청한 것 같았다. 깨워서 점심 전에 잔치국수를 해먹이고 오후 일정이 있어서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니 자고 일어난 눈치였다. 계속 잠을 자고 열이 나는 것 같다고 해서 체온을 재보니 정상이었다.


" 여독(旅毒)인가 봐, 여행을 다녀와서 피곤해서 "


아무리 즐거운 여행길이어도 여행으로 인한 피로가 남아서 몸이 알림을 보내온다. 즐거웠는데 여독은 왜 생기는 걸까? 여행이 아무리 즐거워도 새로운 즉 낯선 곳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게 된다. 잠자는 환경, 먹는 밥,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다 새로운 즉 낯선 것이다. 특히나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자기 어려운 경우는 더 여독이 쌓일 수 있을 것 같다. 친한 친구여도 낯선 잠자리에서 같이 잠을 자게 되면 숙면이 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수면의 질이 떨어진 상태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 곳을 방문하며 활동을 하다 보니 신체 활동량이 늘어나서 몸이 뻐근하고 몸살 기운이 생겼을 수도 있다. 학교에서 짠 수학여행 일정에 따라 움직이며 친구들과 잘 어울리려고 애쓰는 마음은 어쩌면 긴장한 상태로 움직였을 수 있다. 여행 일정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약간의 긴장이 있어서 신체의 이런 상태를 잘 모를 수 있다.


아이는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놓고 파자마로 갈아입고 자기의 침대에 누운 순간에서야, 자신이 얼마나 피곤했는지 알게 되는 것 같다. 이제 좀 쉬자 하다가 바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보면서 드디어 아이가 정말로 여행을 다녀왔구나 싶었다. 여독을 풀기 위해 자는 잠을 자는 게 정말 여행의 마무리 같았다.


여행 같은 인생을 살면서도 그런 순간이 있다. 정말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지만, 그 일 뒤에 오는 피로함. 마치 여독처럼 긴장으로 인한 몸의 피곤함이 말을 걸 때 귀를 기울인다. 쉬엄쉬엄하자고. 이제 좀 쉬고 싶다고. 즐거운 여행동안 쌓여있는 피로가 독이 되지 않도록 여독을 잘 풀어주듯이 하루 하루를 잘 보낸 피로를 잘 풀어주어 독이 되지 않게 쉬엄쉬엄 해야할 때가 있다.


제주항공을 타고 4월에 수학여행을 다녀온 아이가 여독을 푸느라 푹 자는 잠을 보며 생각한다.

이제야 여행이 마무리되고 있구나.

무사하게 잘 돌아왔구나!

당연할 것 같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지는 요즘.

여독마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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