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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청년 Mar 16. 2018

세월호 리본

한 달이 지나면 4월 16일이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 4년이 지나려고 한다. 


올해 4월 16일에 나는 한국에 있지 않으므로 미리 적는다.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나는 백팩에 세월호 리본 두 개를 달고 다닌다(사진 참조). 

하나만 달고 다닐 때 자주 잃어버려서 마지막으로 남은 두 개는 1년 전쯤 함께 달았다. 

하나가 떨어져 나가더라도 남은 하나가 계속 내 시선에 머물러 주길 바라면서. 


이 리본들은 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 집회를 열심히 쫓아다닌 친구가(지금 그녀는 육아 중) 

광화문에 있는 세월호 부스에서 나눠준 걸 받아서 내게 선물했다. 


나는 일하는 과정에 승선이 필수인 일을 한다. 

바닷물을 떠서 그 안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 농도를 재고,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일을 한다. 

한 번 바다에 나가면 한 달 이상 배에서 지낸다(올해 4월은 인도양 한가운데서 보내게 됐다). 


배에서 출항 전 안전교육을 받는다.  

일항사께서 안전 슈트, 구명조끼, 구조선, 모임 장소, 탈선 명령 신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나는 앉아서 

'이 공간이 바닷물로 찬다면, 난 탈출하려는 노력을 할까?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게 무슨 의미지? 코와 폐에 물이 금방 차서 죽을 텐데. 안전 슈트 입고 구명조끼 걸치고 구조선까지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혼자 따로 한다. 

듣고 있던 연구원들과 승조원들이 죽음이 아니라 삶을 생각하는 그때, 

난 오히려 내게 부쩍 가까워진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그 공포를 4년 전 티브이로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보면서 알게됐다.  

난 지금도 희생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혼자 상상하면 오한이 몰려온다. 

차갑고 탁한 물, 어둠, 물소리, 그리고 결국 적막...


처음 친구가 세월호 리본을 줬을 때 나는 그 날을 잊지 않기 위해 가방에 달았다.  

밥벌이하느라 중요한 뭔가를 쉽게 잊고 사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강원도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은 나뿐이었는지

그동안 가방 보고 아무 말씀 없으시던 아버지께서 

"가방에 세월호 리본 좀 떼거라. 여기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너만 그거 달고 다닌다." 

라고 언짢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아빠, 나 여기서 좀 귀찮아요. 나중에 뗄게요."라고 얼버무렸다.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마음에 걸려 돌아와서 리본을 떼려고 타이밍만 찾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같이 일하는 동료가 

"언니, 오늘 아까 어떤 기사를 읽었는데요. 이 세월호 리본요. 유가족들이 지하철 같은 데서 사람들이 가방에 하고 있는 거 보면 힘이 나신데요. '시간이 흘렀는데도 우리 아이를 생각해주는 분들이 계시는구나' 하고. 마음이 뭉클해지신데요. " 

라고 말해준 덕분에 난 리본을 뗄 타이밍을 보기 좋게 놓쳤다. 


지금 나는 그 리본을 4월 16일을 잊지 않기 위해 가방에 메고 다니지 않는다. 

나 자신에게 심적 부담을 주기 위해 달고 다닌다. 

출근하려고 가방을 멜 때마다 퇴근하려고 가방을 멜 때마다  

저 두 개의 노란 리본을 볼 수밖에 없다. 

노란색 리본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리본이 내게 말을 건다. 


윗세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무사안일, 기강 해이, 근무 태만, 탁상공론, 상명 하달, 구태의연, 전시 행정, 면피 행정,  

관존민비, 권위주의, 전관예우, 부처 이기주의, 몸 사리기, 철밥통, 무책임,

남 탓, 발뺌, 변명, 무마, 묵살, 진상 은폐, 말 바꾸기, 떠넘기기, 관피아, 줄 서기, 낙하산, 

방만, 유착, 결탁, 은폐, 외압, 적폐'의 세상에 

아이들이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한 것이 세월호 참사다.   

너도 이제 어른이다. 

네가 함께 할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저런 세상을 물려줄 부끄러운 어른이 될 껀 아니지? 


지금의 5,60대보다는 최소한 나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리본을 볼 때마다 대충 하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는다. 

삶이 그래서 자발적으로 고되다. 


여전히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나의 뒷모습에 보내는 불편한 시선들이 있다.  

내가 고작 '진보 성향 과학자' 코스프레한다고 당신들이 넘겨짚는 거 안다. 

제발, 창의성 좀 발휘해 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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