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열일곱
봄꽃 설레는 3월은 내 세계가 바뀌는 계절이었다. 열일곱의 봄은 생애 처음 가족을 떠나 낯선 곳에서 시작되었다. 집을 떠난 열일곱 살에게 자취는 처음으로 혼자 겪어내야 할 자유이자 엄마의 손을 놓친 듯한 두려운 세계였다.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손수 지어 먹고 아침 자율학습 전까지 교실에 앉아 있어야 했다. 오롯이 혼자여서 자유로웠고 혼자여서 겁이 났다.
차츰 학교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도대체 왜 어떤 이유로 풍물 동아리에 가입했는지 기억이 없다. 분명 기타를 배우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같은 반 친구의 ‘이런 동아리가 생겼대’라는 말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는 거침이 없었다.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규칙은 지켜야 한다는 나에게 친구는 난공불락 같았다. 어떻게 지각을 할 수 있으며 대학을 가야 하는데 공부를 안 할 수가 있는 거지? 우린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인데 말이다. 하지만 우린 어디서 무엇에 서로 홀렸던 건지 의기투합한 의형제처럼 잘 통했다.
우리의 교집합은 신해철이었다. 내 작은 자취방에서 밤새워 신해철과 그의 음악을 평했다. 지금으로선 귀엽기까지 한 학업 스트레스를 오빠의 음악으로 위로했다. 지금 ‘해철오빠’는 영원한 별로 우리를 떠났고(지금의 우리보다 젊었을 때), 쉰을 넘은 우리는 1년에 한두 번 보면서도 즐겁다. 마당발에 각종 SNS를 열심히 하고 사람 좋아하는 친구 덕분에 건너 건너 이름 정도 아는 선후배가 어찌 사는지도 1년에 한 번씩 소식을 듣는다.
서른 즈음이던가. 삶에 지쳐 있었던 나는 친구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친구는 내 앞에서 새로 시작한 일에 신나서 가슴 벅찬 듯 즐거워했다. 그런 친구에게 내 속을 말하지도, 친구의 즐거움에 호응하지도 못하고 혼자 서운해하다가 몇 년을 절연해 버렸다. 가장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말하지 않아도 내 아픔을 당연히 알고 있겠지, 생각했다. 그냥 위로를 바랐는데 하필 그날 친구는 뭐가 그리 신나있었는지.
몇 년이 지나 백화점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는 내 결혼에 놀라고 나는 미안했다. 내 결혼식에 네가 없었구나. 물론 친구는 당연히 내가 멋진 독신으로 화려한 연애 이력을 쌓고 있을 거라고 믿었기에 그 놀라움은 갑절이었을 테다. 친구에게 토라져 말하지 않고 몇 년을 살았으니, 내 옹졸함에 창피했다. 친구는 그날 이후 연락을 받지 않았던 내 행보에 자신이 신났던 게 섭섭했었나 하고 짐작했단다. 자신도 나를 살피기에는 새로운 일에 너무 도취 되어 있었다고 그날을 기억했다.
친구의 딸이 대학을 가고 졸업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부터 본 아기였는데 월급 받는 날 엄마와 카페에 갔다니. 기특하고 신기하다. 우리가 만난 열일곱보다 딸은 더 어른이다. 내 딸아이는 이제 사춘기 문을 열고, 아들 녀석은 혼자 오줌 누고 칭찬을 받는다. 열일곱이 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우리에게 아이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열일곱의 시간을 기억하고 공유하지만, 그때의 얼굴은 지금과 별다르지 않은 듯 기억의 오류를 겪고 있으니 다행이다. 끼리끼리 친구가 되는 법칙이나 있는 듯 하나같이 사진 찍기를 무슨 천형쯤으로 여긴다. 핸드폰이 생기고 의무감으로 만날 때마다 찍자 해놓고 서로 모른척한다. 보송보송했겠지.
가끔 버스 정류장에 삼삼오오 모여 까르르대는 여고생들을 보면 나와 친구도 저러했겠구나. 어여뻤겠구나. 찬란했구나. 너희들도 우리처럼 그리울 거라고. 짧은 봄은 아쉬워서 소중한 거라고. 그러니 많이 웃어라. 해사한 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