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들숨 날숨
어여쁜 너를 기다리던 나는, ‘엄마’란 말이 그토록 갖고 싶었다. 너를 간절히 기다린다고, 너를 만나게 해달라고 해님에 달님에 별님에 빌었지. 뜨거운 여름이 가을바람에 슬쩍 꼬리를 감출 즈음 너는 내 속에서 첫 들숨과 날숨으로 다음 해 5월을 기약했다.
까마득한 옛날 스물하나의 어린 내 엄마는 첫딸을 안았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무 어려서 겁이 났을까 첫딸이라 서운했을까 마냥 사랑스러웠을까. 마흔에 너를 안은 엄마는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는데. 그 행복은 세상의 그 어떤 색깔로도 말할 수 없었고 크기를 잴 수도 없었으며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뫼비우스의 띠를 걷는 기쁨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10년을 지나는 시간 동안, 그 설레고 눈물겨울 만큼 행복했던 마음은 화석이 되어 박물관으로 가 버렸을까. 나는 자꾸 네게 삶의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영어를 들이밀고 수학 문제집을 한 권 두 권 네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방패는 몇 개쯤 있어야 하니 영어는 기본이고 중국어도 배워두어야 한다고 일장 연설한다. 학년 추천 도서 목록을 책상 앞에 붙여놓고 너를 닦달한다. 훗날 엄마 아빠 품을 떠날 때, 너의 인생 길잡이로 필요할 거라고, 필수조건의 목록을 나열하고 점검한다. 네가 만날 그날이 마치 전쟁터라도 될 듯 지금부터 비상식량도 챙겨야 하니 놀지 말고 공부하라고 다그친다.
너는 축복이고 내 숨구멍이고 세상 유일한 존재인데 엄마는 자꾸만 노파심으로 너를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구나. 그 옛날 내 엄마가 내게 해주지 못한, 내 엄마의 속을 아리게 했던, 물질적 아쉬움을 느끼지 않도록, 네가 하고 싶은 그림 그리는 일로 밥벌이할 수 있는 인생을 살게 하는 게 내 소명 같아서, 나는 너를 재촉하고 만다. 그러지 말자. 너는 세상 소중하고 내게 웃음과 행복을 준 나의 첫 번째 아이인데.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그렇지만 말이야, 딸아.’ 또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 욕심을 슬쩍 내밀고 만다.
나의 조급한 마음은 갈피를 못 잡는다. 인생의 시련에 맞서고 견딜 힘을 가지길 바라면서 고난은 없었으면 한다. 힘든 밤 튼튼한 마음으로 스스로 위로 할 수 있길 바라면서 애초 눈물 흘릴 일 없는 평온한 청춘이길 바란다. 앞으로 네가 만날 미래가 물 흘러가듯이, 늘 순풍이 부는 파도 잔잔한 바다를 ‘모험’하는 신나는 여행이길 바란다. 너의 작은 친구들도 너처럼 고만고만한 순한 아이들이길 바라고 선생님의 이쁨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또 욕심낸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상처 자리에 새살이 돋는 걸 알면서도 그 상처가 깊지 않고 금방 낫길 바란다. 엄마의 숙명이라고 또 나를 위로한다. 네 속에 ‘해피바이러스’가 살아서 행복하고, 함께 즐거워할 줄 아는 아이란 걸 알면서도 엄마는 또 동동거린다.
세상에 엄마가 될 준비 리스트가 있으면 좋겠다. 몇 점짜리 엄마인지 알 수 있는 시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다른 엄마들의 고민과 한숨과 눈물에 다 똑같구나, 위안받을 뿐이다. 엄마의 갱년기 활화산을 네가 보게 되는 게 속상하고 멋쩍기도 하지만 어쩌겠니, 세상에서 우리가 너무 늦게 만난걸. 세상 가장 행복한 외동딸에게 뜻하지 않은 동생은 엄마의 선물이니까 사랑해주길 바라. 그래도 엄마보다 누나와 놀 때 더 크게 깔깔거리며 좋아하잖니. 한때의 유행어처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누굴 돌보고 마음 헤아리는 게 교과서적이라 네겐 미안하지만 어쩌겠니, 엄마는 그래도 최선 중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