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봄'이다
해마다 다시 청춘인 듯 곱고 화려한 봄꽃을 손차양하고 올려다본다. 봄꽃이 어지럽다. 나풀나풀 아련히 떨어지는 희미한 점들. 노안이다. 미세먼지도 황사도 없는 고마운 날 어지러이 흩날리는 꽃잎들은 노안의 슬픔이다. 먼 나라에서 불어오는 누런 불청객처럼 나의 ‘봄’에 노안이 들이닥친 거다. 노화의 전조증상이 하필 눈으로 먼저 왔나.
내 부모의 주름살이 마주 앉지 않아도 선명하고 머리 위에 내린 새치가 확연하기에 아직 내 ‘봄’은 걱정거리가 아니었는데. 그 주름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고, 새치를 셀 수 없었던 걸 눈치채지 못했다. 괜찮다 괜찮다 손사래를 치는 부모의 약봉지 알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더는 감당하기 버거워 청산한 텅 빈 축사가 허전하다. 돌볼 소들이 없는 만큼 그 시간을 봄놀이하며 보내면 좋으련만, 평생 농사꾼인 부모의 봄은 남아도는 논과 밭이 애타서 해뜨기 전에 포슬포슬해진 흙을 밟는다. 올해도 나는 배추, 무, 마늘, 토마토를 사 먹지 않아도 되는구나. 내 부모의 노고로 얻는 쌀 20kg을 라면 한 상자와 과자 한 상자로 물물교환해야지. 그나마 내 노안의 불편이 아직은 부모의 병원 동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 ‘봄’은 슬프다. 안경을 빌리지 않고 볼 수 있는 봄은 ‘봄’ 중에 ‘봄’이시다.
봄은 만물이 움트고 금방금방 자라는 계절이다. 아이들도 나의 감시망을 피하는 듯, 한 뼘 두 뼘 한 해를 훅훅 건너뛰는 듯 커간다. 마흔의 5월과 마흔여덟의 9월에 와준 내 숨구멍들. 혼자서도 세상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나의 세상에 따뜻하게 불어 들어온 봄바람. 세상에 들이대는 나의 뾰족한 혀끝이 부드러워지고, 두세 겹 그어놓은 경계선을 침범하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었던 나를 무방비로 만들어버린 외계인들. 이 외계 생명체들이 준 행복은 어이가 없다. 새벽녘에 깬 내 걱정거리에도 아랑곳없이 새근새근 숨소리로 깊은 근심을 잠재우고, 손목 발목 위로 생뚱맞게 훅 딸려 올라간 겨우 한 계절 입어본 옷자락에도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한다.
쉰의 경계선을 넘으며 아직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갱년기가 내 방문을 두드릴 때 딸아이의 손님도 슬며시 방문을 넘는다. 누가 이기나? 사춘기가 와봐라 갱년기를 이기나. 선전 포고하고 뒤돌아선 속마음은 내 조그마한 딸아이에게 사춘기가 오다니. 조그마한 나의 아이에게. 무슨 소리. 이미 내 눈이 아이와 수평선을 이루고 있는데. 그 수평선 아래엔 이제 막 40개월을 넘은 아들놈이 젤리를 외치고 있다. 아들놈의 달콤한 봄은 종종거리고 종횡무진에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내 심장은 헉헉대며 쫓아다니기 바쁘다. 달콤한 젤리는 회유책이고 엄마의 걸음에 맞추라는 각고의 노력이다.
봄 산에 가야겠다. 나뭇가지에 오르는 앙증맞고 새침하게 입술 내미는 연초록 연분홍 봄아이들도 보고, 튼튼한 다리를 만들고 굳건한 심장을 키워야지. 머지않은 그날을 위해 내 늙어가는 부모의 손발이 되어주어야지. 자라고 있는 내 아이들이 언젠가는 스스로 봄을 가질 수 있도록 ‘봄준비’도 시켜야지. 올해 봄은 바쁘게 살겠다는 출사표를 던진다. 겨울 동안 뭉쳐있던 근육을 풀고 봄 산책을 해야지. 뭉그적거리며 미뤄두었던 묵은 이불 빨래를 시작으로 바쁜 봄을 맞이해야지. 김밥 도시락 싸서 아이들 손잡고 봄나들이도 좋겠다. 나의 봄은 바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