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by 김민희

타닥타닥. 뙤약볕에 공기가 타는 소리를 들었다면 거짓말이라고 할까, 허풍쟁이라고 비웃을까. 아스팔트 위에 달걀을 깨트리면 익어버린다는 도시의 유명한 여름. 30여 전 그해 여름은 더욱 뜨거웠지 않았나 기억은 말한다.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턱턱 숨통을 막는 듯한 더운 공기의 질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여전히 후텁지근한 도시의 한여름을 피해 지하철을 탈 때마다 아버지가 떠오른다.


자글자글 타던 한여름 지하철 1호선 공사를 하던 오후 2시 경이었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들고나와서 벤치에 앉았다.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던 도시의 무더위에 기진맥진 상태였다. 눈앞 강철빔 위로 아지랑이가 어른거렸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달구어진 강철에 손이 데일 것만 같았다. 순간 강철 사이로 오고 가는 인부들. 갑자기 눈이 뜨거워지더니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목구멍에 걸렸다. 아버지도 저러했겠구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촌부가 할 수 있는 건 몸뚱이 하나로 여섯 식구의 의식주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원양어선을 탔던 아버지는 3년마다 우리에게 왔다. 그러하기에 아버지보다 고생하는 엄마가 각인된 유년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없는 아버지여서, 아버지가 어떻게 30대를 지나왔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함께 살았으니 아버지는 낯선 아버지였다. ‘아빠’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

가난한 집안의 맏이라 결혼조차 하지 못할 줄 알았다는 남자에게 첫 딸이라니. 어땠을까. 맞선에서 첫눈에 반한 스무 살 여자는 억척같은 아내가 되었다. 그 억척스러움과 바다 위에서 목숨 걸고 벌어온 돈으로 논도 사고 밭도 샀다. 부자가 되지 못했지만, 땅문서는 고생한 보람이었다. 하지만 그 고단한 삶이 어디 쉽게 끝날 수 있었겠나.


자식들이 하나둘 크면서 그 무게는 더해졌을 테다. 대학생이 하나, 고등학생이 하나, 중학생이 하나, 초등학생이 하나 그리고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막둥이. 고단했을 삶을 천명인 듯 받아들이는 아버지 시대의 철학으로 버티었을까. 당연한 삶의 책무를, 당연히 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운 세대여서 불만 따위는 생각조차 못 했을까. 결혼 후, 잔소리를 빌미로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술 좀 그만 드시라고, 엄마를 그리 사랑하는데 왜 ‘마누라’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하시냐고. 아내에 대한 애정이 술에 대한 애정을 이기지 못하다니, 창수씨를 어쩌면 좋을까.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편에게로 향했다. 돈을 벌어서, 결혼했다는 이유로, 아내의 통장으로 꼬박꼬박 입금하면서 남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작 남편은 당연한 일에 나 혼자 의문을 가진 것일까. 돈을 번다는 일이 아니꼬운 일도, 치사한 꼴도 꾹 참고 웃어야 하는 일인데. 이제 내 남편도 아비 노릇을 하는구나. 기약이 없는 아내의 책은 늘 현재진행 중이다. 세상에 집안일이 제일 적성에 안 맞다 칭얼대는 아내에게 큰 소리 안 내는 남편이다. 놀면서 바쁘겠다는 아내의 말에 무조건 찬성이니 고맙다.

그렇지만 임아! 냉장고 문은 열지 말아주오. 그건 예의가 아니야. 거긴 내 영역이니 잔소리는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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