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의 상대성이론

모녀의 상대성이론

by 김민희

엄마의 쉰은 복장이 터졌다. 서른을 훌쩍 넘은 맏딸이 하던 일도 망하고, 맞선마저 족족 퇴짜를 놓거나 맞고 있었으니. 자식 결혼이 무슨 천명이라도 되나. 하긴 엄마의 시대는 스물에 집안 어른의 엄명으로 결혼을 하기도 했다니.


20세기의 삶을 21세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엄마는 엄마의 시대로 나를 맞선에 내보냈다. 그런 엄마 앞에 맏딸은 차마 독신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건 불효보다 더한 대역죄 같은 거였으니. 지금에 와서 엄마는 ‘그리 닦달하지 말걸’하고 말한다. 다들 쉽게 다는 시집을, 엄마의 자랑이었던 맏딸이 서른이 넘어서도 못 간다고 욕한 것을 후회했다. 서른다섯은 많은 것도 아니라고. 세상이 변하긴 많이 변한 모양이다.

맏딸의 쉰은 여전히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여전히 바느질도 못 하고 김치도 못 담근다. 김장철마다 내년에는 절대 담가주질 않을 테니, 다들 직접 김장하라고 엄포를 놓는다(다섯 남매의 가족이 모두 모여서 함께 김장한다). 요즘 옷은 웬만해선 단추가 떨어질 리 없고, 양말도 어지간해서 구멍 날 일이 없으니 꿰맬 일도 없다. 정 아쉬우면 세탁소에 맡기면 되는 세상이다. 엄마와 나의 시간 차이는 20년일 뿐인데, 백 살 부모의 눈에 팔십 살 자식은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다섯 살인가 보다.


내 딸아이의 쉰을 눈감고 상상해 본다. 너무 아득해서 가늠할 수가 없다. 마치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일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는 망백(백을 바라본다는 아흔한 살을 말한다)이 되어 있을 테니, 생소한 나이만큼 아이의 쉰은 낯선 일이다. 오지 않은 그 날에 아이들 곁에 내가 없을 수도 있다니, 훗날 내 곁에 엄마가 없을 수 있다는 것만큼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만. 그날을 그리기에 아이들 육아는 전투 준비만큼 다급하고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니. 기운 빼지 말자.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나와 아이들의 하루는 다르게 흘러간다. 아이들은 봄볕을 담뿍 머금은 어린나무처럼 쑥쑥 자란다. 딸아이에겐 2차 성징이 자연의 순리대로 찾아왔지만, 여전히 손톱 정리며 방 청소며 사소한 일에도 지청구를 늘어놓아야 하니, 얼른 크라고 목놓아 외친다. 아들아이는 여전히 엄마 없이는 잠을 잘 수 없고, 혼자서 옷을 입고 양말을 신는 일의 마무리를 도와야 한다. 가끔 물리적 힘에 부칠 때면 못내 서글프다가 기운이 없어 놀아주지 못하고 ‘누나’를 부를 때는 미안하다. 그 미안함이 멋쩍어서 너희들이 엄마의 노화를 받아들이라고 되려 소리친다. 엄마는 쉰 둘이 되었다고.


내 나무의 나이테 한 줄이 늘어날 때마다 서글퍼진다. 건강식품을 챙겨 먹어야 하나, 의학의 힘으로 주름살을 옅게 만들어야 하나. 애타는 마음으로 저무는 해에 고리를 걸어 묶어두려고 용을 쓴다. 그러다 친정집 뒤로 저무는 저녁노을에 울컥, 목울대가 저릿해진다. 엄마의 거친 손바닥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며 괜찮다고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주고 싶었는데, 멋있게 사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엄마의 자랑으로 어깨에 힘 들어가게 해주고 싶었는데.


병원에 가거나 먼 길 가는 일에 엄마에게는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낯설 것이다. 하지만 50년을 살아도 여전히 불협화음인 남편과 다섯 자식 중 누구 하나 대동하면 되니, 복되시다. 그 옛날 딸 넷에 당당한 척해도 속상했을까, 마지막에 얻은 아들에 자신의 의무는 다했다 큰 돌덩이 내려놓았을까. 엄마는 엄마의 시대를 지나며 무슨 배짱으로 버티었을까. 엄마의 생활력은 강해서 애잔하다. 온 식구가 믿고 의지하는 버팀목이었지만 때론 서글픈 칭송 같은 것일 텐데. 시커먼 농군의 얼굴이지만 서울 한복판에서도 위풍당당한 ‘전 여사(女史)’다. 내 엄마, 우리 엄마다.

작가의 이전글이앓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