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예술같이
평소처럼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런데 몸이 이상했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단순히 피로로 인한 묵직함이 아니었다. 지난 몇 주 동안 목에 통증이 심했는데 뭐가 잘못된 걸까. 벽을 짚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꿈인가.’
꼼짝달싹할 수 없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남편을 불러서 등을 받쳐달라고 해봤다. 비명이 나올 만큼 아픈 고통이 몸 구석구석에 번졌다.
남편을 의지해 병원으로 갔다. 촬영 결과 다행히 디스크는 아니지만 목뼈가 오른쪽으로 심하게 휜 상태였다. 3개월 전 율이에게 생일선물로 사준 작은 어린이 침대에서 매일 밤 같이 잠든 게 원인이었던 듯하다.
두 번의 물리치료와 세 번의 침 치료를 받고 나서 일주일 만에 다시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끔찍했던 일주일이다.
집안일이 쌓여 쓰레기 더미에서 자고 하루에 수십 번씩 “엄마, 엄마!”를 찾는 아이들에게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아이 둘에 어른 하나의 수발을 드는 남편을 5분마다 불렀다.
“여보, 목이 말라!”
“화장실이 가고 싶어!”
“여보, 잠깐만 와줘!”
순간 돌아서는 남편에게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참고 참던 눈물이 쏟아졌다.
“내 기분이 지금 어떤지 알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애인들 마음이 이해돼. 옷 하나 직접 벗고 입지 못하는 게 얼마나 수치심 드는지, 죽고 싶은 심정으로 너만 의지하는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는 아파서 몸도 돌리지 못하고 벽을 본 채로 누워 등 뒤에 선 남편에게 쏘아댔다.
눈앞의 미래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불의의 교통사고나 병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상상을 했다. 죽음도 무섭지 않던 나인데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빨리 지났으면 하던 고통도 돌아보면 인생의 역사고 사건이다. 묵묵히 견뎌준 남편과, 울던 내 등을 토닥여주던 아이의 손. 내일은 더 나은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들은 얼마나 의미 없이 흘러갔던가.
유난히 피곤해 침대에 어떻게 누웠는지 기억도 안나는 어젯밤, 울음소리를 들으며 깨보니 율이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고 시간은 새벽 두 시였다.
아이는 어른들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자꾸만 “조금만 기다려. 나중에 해줄게.”라고 말하게 된다. 지금이 아니라도 우리에게는 많은 날이 남았다는 핑계로 아이와의 시간은 미뤄진다. 부모의 시간은 긴 세월의 작은 일부분이지만 아이에게는 매 순간이 중요한데.
우리가 쌓는 추억이 늘어날수록 순간순간의 소중함도 커진다. 며칠 전 아침 율이는 갑작스럽게 핑크색 패딩이 아니라며 옷 입기를 거부했다. 출근시간은 다가오는데 고함을 지르며 우는 아이 때문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결국은 영하 날씨에 겉옷도 못 입히고 어린이집을 보냈다. 하필 저녁에는 외부 미팅이 있어서 퇴근 후 옷을 사러 갈 시간도 없었다.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안 잡혀서 하는 수 없이 점심시간 광화문과 명동 일대를 뒤져 20만 원이나 내고 핑크색 패딩을 샀다. 나를 보고 후배가 말했다.
“애를 왜 그렇게 키워요.”
결혼 전 누구보다 쿨하게 아이를 키우겠다고 자신하던 나인데 어쩌다 이런 딸바보 엄마가 됐을까.
어린 시절의 엄마가 생각난다. 우리 남매에게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을 주던 엄마. 결혼 전 엄마와 둘이서 여행하는 게 꿈이라던 내 말은 어느새 아이 둘을 키우며 지키기 힘든 약속이 돼버렸다.
“인생을 예술같이 살아라.”
결혼식 전날 아빠가 보낸 10장의 편지 중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구절이다.
“내가 범석이를 상면하지도 않고 허락한 것은 네 선택을 신뢰한다는 뜻도 있지만 너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길 바라는 의미였다.
사랑의 속성은 아낌없이 주는 것, 주는 만큼 받는 것은 상거래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왜 상대방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될까.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장 사랑하는 자식에게 주는 것은 아깝지 않다. 부디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진정한 사랑을 나누기 바란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선 너희 두 사람이 함께 ‘성공의 길’로 들어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예술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가꾸어가길 바란다.”
아빠의 글처럼 인생을 예술로 사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예술이 그렇듯 고난이 없는 삶도 없다. 좌충우돌 워킹맘으로 실패 투성이던 지난 시간도 ‘나의 인생’이라는 작품에서 성장한 과정이다.
보다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삶이 훗날 아이들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수료식을 앞두고 키즈노트 공지사항에 올라온 담임교사의 글이 앞으로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해줬다.
“정든 교실과 선생님, 친구들. 함께했던 시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만남을 준비할 때가 왔습니다. 친구들과 격려의 인사를 나누도록 지도해주세요. 한 학년을 끝까지 열심히 생활한 스스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도록 지지해주세요.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의 얼굴을 잊겠지만 선생님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멋지게 자라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