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여행한다
“만약 내가 더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한 번이라도 공항에 데려가 줬다면 조금은 지금과 다른 모습일까.”
글로벌 기업에서 경력을 쌓으며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해본 친구의 말이다. 내가 난생처음으로 인천 국제공항을 간 건 스무 살 넘어 중국 어학연수를 가던 날이다. 여러 인종의 수많은 사람이 모인 공항은 그때까지 배우고 경험한 세계를 벗어나는 듯 두렵고도 신비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넓고 넓은 우주를 혼자 힘으로 선 기분.
누구에게나 다양한 경험의 기회가 열린 시대인데 그 후 11년, 직장생활 7년 만에 간 두 번째 여행은 결혼 전 마지막이 됐다. 20대에 여러 나라를 여행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였다. 학창 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졸업 후엔 일 때문에, 아이 둘을 키우는 지금은 다시 돈이 없어서 마음대로 여행할 수가 없다.
아이들을 낳고는 두 번 큰 결심을 하고 먼 여행을 떠났다. 첫째 율이를 낳고 8개월 만인 2016년 6월, 왕복 28시간이 걸린 미국과 캐나다 여행은 내 일생 최고의 고생이었지만 가장 멋진 추억이다.
테러에 민감한 미국 공항이라 아기 분유를 몰수당하고 남편은 강제 몸수색까지 받는 수모를 겪었다. 뉴욕 한복판에서 부부싸움을 해 각자 다른 길을 간 날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여행을 사랑했다. 나이아가라 폭포, 센트럴파크와 타임스스퀘어 광장, 특별한 기록의 한 페이지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였다는 사실, 낯선 풍경을 보며 즐거워하던 아이의 모든 순간은 우리 삶의 명장면이다.
작년에는 둘째 솔이가 생후 8개월이 돼서 제주도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나와 남편 둘 다 처음 가보는 제주도였다.
제주도 여행은 우리에게 보물 같은 추억이다. 첫날 간 모래사장에서 율이는 꽃게를 발견하자 “와! 꽃게 안녕!”이라고 소리쳤다. 당시에는 ‘꽃게’나 ‘안녕’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모습이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 꽃게를 지켜보던 율이는 내가 다가가자 말했다.
“엄마, 꽃게 아파. 만지지 마. 가자.”
내 손을 잡아 강제로 일으켜 세우는 아이에게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가 감탄의 환성을 질렀다.
“율아! 우리 아기!”
그 가슴 뭉클했던 순간을 말로 쉽게 표현할 수가 없다. 놀라운 일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계속됐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는 하루에 수십 번씩 “꽃게가 아파요.” “슬퍼요.” 등의 말을 했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가 그 뜻을 알아차리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이집에서는 ‘미소게’라는 이름의 꽃게를 키웠다. 선생님이 보내준 사진에는 종종 아이들이 꽃게를 관찰하던 모습이 있었다.
‘그 미소게가 아픈 건가.’
다음날 선생님께 “미소게가 아픈가요?”라고 물었을 때 꽃게가 말라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꽃게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거짓말했고 이미 1년이 지난 일인데 율이가 기억하고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왜 1년 전 사소했던 일을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을까. 비록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 간직했던 걸까. 여행을 통해 찾은 아이의 추억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이에게 화낸 일, 부부 싸움하는 모습을 보여준 일, 우는 아이를 방치한 일. 지난 아픈 순간들이 떠올라 후회됐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 선물이다.
아이는 여행을 통해 성장했다. “불가사리, 안녕!” “토끼, 안녕!”
평소와 다른 특별한 말을 하고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더 잘 표현하는 아이가 정말 신기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행복한 경험은 정서 발달과 성격 형성에 작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을 확신했다.
우리는 또 하루하루 여행했다. 유목 가족처럼 놀이터, 키즈카페, 서촌, 북촌 등을 찾아다니며 아이에게는 일상의 사물이 감동이고 의미임을 깨달았다. 호기심 가득한 말과 행동은 사랑스러움을 넘어 경이로움이다.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소중하지 뜻밖의 장소가 필요한 건 아니다.
육아와 여행의 공통점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현실의 삶에 집중한다는 것. 통장은 마이너스 인생이라도 다시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이유다. 물론 오늘도 우리는 여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