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는 강인함이 필요한 순간
어린이집 참여수업에 처음으로 간 건 율이가 입학한 지 한참이 지나서다. 등·하원은 물론 모든 학부모 참여수업에는 남편이 갔던 터라 기다리는 몇 주의 시간이 긴장도 되고 설렜다. 약 한 시간 동안 아이와 엄마가 함께 미술활동을 하면서 평소 어린이집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율이는 반에서 생일이 가장 늦은 10월 30일생이라 친구들에 비해 발달이 많이 늦은 편이다. 유난히 빠른 생일의 친구들이 모여서 절반 이상은 1~2월생, 나머지도 전부 다 7월 이전이었다.
율이의 키와 몸무게도 친구들의 3분의 2밖에 안됐고 언어발달은 거의 아기 수준인 채로 1년 반을 지냈다.
친구들이 “엄마, 오늘은 자동차 놀이했어요.” “친구와 다퉈서 선생님께 혼났어요.” 수준으로 표현하는 동안 율이는 여전히 “싫어.” “안돼.” 등의 말밖에 못 했다.
그래도 집에서는 늘 밝은 모습이어서 걱정하지 않았는데 첫 어린이집 행사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하는 미술활동은 오이와 당근을 잘라 물감을 묻히고 스케치북에 찍는 놀이였다. 책상 한가운데 색색의 물감이 있는 팔레트가 놓였는데 친구들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을 찍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엄마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친구와 사이좋게 나눠서 해야지.”라며 타일렀다.
그런데 율이는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고 내내 엄마 품에 안겨서 칭얼댔다. 손에 채소를 쥐여주고 “율이도 친구처럼 해보자.”라며 격려했지만 결국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못했다.
속상한 마음을 부여잡고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기다리는데 율이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책가방을 메고 왔다. 율이는 느닷없이 “엄마, 집에 가자!”라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막무가내로 우는 아이가 어리둥절한 한편 머릿속은 미칠 듯이 혼란스러웠다.
‘엄마에게 자신감 없는 모습을 들킨 것이 부끄러웠을까.’
선생님과 함께 달래 봐도 율이는 내 품에 안겨 한 시간 가량을 울었다. 친구들이 와서 “율아, 같이 놀자.”라고 하면 더 큰소리로 울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완벽히 적응했다고, 선생님과 친구들을 좋아한다고, 애써 외면하고 싶던 아이의 현실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떼쓸 때는 “나도 너 때문에 힘들다.”며 원망했는데 너는 나름대로 힘든 사회생활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구나.
시간이 많이 흘러 율이도 이제는 누구보다 어린이집을 좋아하게 됐다. 친구들과의 놀이에서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나도 차츰 적응해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어린이집 참여수업은 절반만 참석했다. 반 친구 엄마들과 친해져서 내 아이를 자기 아이처럼 챙겨주는 지원군이 있고 엄마 없이도 씩씩하게 행동하는 율이가 믿음직스러웠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뜻밖에 다른 이유로 속상한 일이 생겼다. 설을 앞두고 만두 빚기 참여수업이 있었는데 우리만 빼놓고 다른 집 부모님들이 다 참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이다. 율이 혼자 엄마가 없었지만 주눅 들지 않고 씩씩했다는 말을 다른 엄마에게 전해 들어 대견한 마음에 울컥했다가 하원길 한마디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율이만 엄마가 안 와서 속상했어.”
아이는 내가 모르는 사이 훌쩍 자랐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아이의 모든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부모로서의 최선은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세심하게 살피고 교감하며 지지해주는 것이다. 율이는 이날 평소 좋아하던 키즈카페도 마다하며 직접 만든 만두를 엄마가 꼭 먹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집에 와서 만두를 먹는 내내 내게 “율이 만두 맛있어?”를 수십 번 물어봤다.
아이들은 부모의 걱정보다 강하다. 부모보다 훨씬 큰 잠재력을 가졌다. 부모가 가르치고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10조각짜리 퍼즐도 못 맞추던 아이가 일주일 새 70조각을 혼자서 맞추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지난 고민들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말을 잘 못해도, 기저귀를 늦게 떼도, 어차피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인 건 똑같은데.
누군가 그때 ‘지금 잘하고 있다.’고, ‘아이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아가야, 우리 지금 행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