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몰라요

너의 마음을 알고 싶어

by 노향

열다섯 살 안팎쯤 됐을까. 눈빛은 불안하고 말투나 몸짓이 한눈에 봐도 또래보다 낮은 수준임을 알았다. 평범한 학생이라면 배웠을 예의나 대인관계의 기술이 서툴렀고 아기처럼 친구와 먹을 것을 두고 다투기도 했다.



둘째 솔이를 임신했던 2017년 겨울, 취재를 위해 청소년 정신과를 찾은 적이 있다. 집단 따돌림이나 학교폭력, 가정폭력을 당한 피해 청소년들이 치료받는 병원이자 대안학교였다. 이곳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가정환경이라고 했다. 맞거나 학대를 당한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맞벌이 부모가 많다 보니 대외적으로는 문제없는 부모라도 학교생활의 고민을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마음의 병을 치유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담당의사는 아이들을 사회로 돌려보내려면 병원보다 부모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부모는 아이가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방임했다.

“내 아이는 문제없어요.” “치료까지 받을 정도는 아니니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내가 중학교 내내 왕따였던 경험을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고백한 건 남편이 남자친구일 때다. 점심시간이면 혼자서 밥을 먹는 게 두려워 걸어서 집으로 갔다. 만약 엄마와 더 친밀한 관계였다면, 내 고민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친구들과 만난 율이



유년시절 기억의 가장 큰 상처는 부모님의 부부싸움과 유일하게 의지하던 강아지와의 이별이다. 강아지는 외로울 때마다 기댈 수 있는 존재였지만 도시의 아파트로 이사한 후 아빠는 두 번이나 강아지들을 다른 집에 보냈다. 수십 년 전 일인데도 여전히 가슴에 남아 슬픈 추억이다.



독립한 후에는 혼자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다가 아기를 가졌다. 그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동물들 어떻게 할 거니?”였다.

유기견이었던 메리는 내게 반려동물 이상의 의미였다. 우리는 매일 함께 남산에 올라 우정을 쌓았고 외출 준비를 하면 폴짝대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그런 메리를 다른 집으로 보내라는 부모님에게 또 화가 났다.

지금은 죽어서 우리 곁을 떠났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날 만큼 메리를 많이 사랑했다. 그때 최선을 다했고 정말 행복했음을 기억하며 집안 곳곳에 남은 흔적들을 아이에게 설명할 때 우리가 함께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일곱 살 무렵부터 초등학교 시절에는 집에서 온종일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놓고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동요를 들었다.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건데.’라는 노랫말을 따라 부르다 울기도 했다.

결혼 후 평생을 전업주부로 산 친정엄마는 언제나 집에 있었고 형제가 없던 것도 아닌데 내 어린 시절의 외로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딸들에게 ‘어른들은 몰라요’를 불러주는 어른이 돼서 다시 생각했다.

부모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실천은 어려운 법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은 ‘나로선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합리화로 책임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수도 있다는 불안 속에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고민이 커진다.





율이가 올해 다섯 살이 되면서 부쩍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 깜짝 놀랐다.

“오늘 친구 때문에 속상했어. 율이가 장난감을 양보하려고 했는데 친구가 밀치니까 마음이 아팠어.”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꿈에 나온 것 같았어.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어.”



언어발달이 유독 느렸던 율이가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든 문장을 더듬거릴 때 어린이집 생활에 대한 걱정보다는 내게 속마음을 말해줬다는 사실이 기뻤다.

가끔은 단둘이 집 앞 카페에 가 율이가 좋아하는 딸기주스와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시켜놓고 도란도란 얘기하다 보면 시간의 속도가 정말 빠르다고 느낀다. 아이에게 평소와 다른 특별한 시간을 주면 더욱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이 육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하지만 이렇게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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