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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Sep 17. 2017

직장맘의 어린이집 하원시간

  오늘로 출산 2주째, 출산휴가 3주째에 접어들었다. 밤낮으로 울어대는 갓난아이에 첫째아이까지 돌보느라 전쟁 같은 날들을 보내는 중에도 큰 행복을 느낀 일이 있다.


  전업주부가 되며 가장 달라진 건 평일 아침 늦잠도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것도 아닌, 큰아이의 어린이집 하원길을 함께하고 놀이터에서 뛰노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평범한 엄마'의 일상 자체였다.



  우리나라는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육아 지원정책이 잘돼 있다. 세계 최고의 복지선진국로 꼽히는 북유럽에서도 어린이집 무상보육을 실시하지 않지만 한국의 아기들은 생후 3개월만 지나도 가정어린이집 같은 보육시설을 갈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의 보육비 지원서비스를 받는다.


  문제는 보육기관이 부모의 육아 공백을 100%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 보통 어린이집의 보육시간은 아침 7시30분부터 저녁 7시30분까지로 평범한 회사원이 정시 출퇴근한다는 가정 하에 완전한 보조양육이 가능하다.

  맞벌이부부라도 둘 중 한 사람만 제시간에 퇴근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이 야근이나 불규칙한 퇴근시간으로 제2의 보조양육자에게 의지하고 추가적인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어린이집 교사의 퇴근시간인 7시30분까지 아이를 맡기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 있다.

  우리 부부의 경우 먼저 일을 마친 사람이 100m 달리기를 하듯 퇴근해 아이를 데리러 가도 어린이집에 남아있는 반친구는 한명이나 두명뿐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나 베이비시터, 조부모의 도움을 받아 오후 3~4시경 하원한다.

  전업맘의 경우 정부가 보육비를 지원하는 시간이 오후 3시까지로 차별을 두고 맞벌이부부라도 아이를 하루 12시간 내내 어린이집에 맡기면 아이의 정서불안 등이 우려돼서다.


  우리 아이만 봐도 평소보다 늦게 데리러 간 날은 엄마를 보자마자 품으로 달려들어 울거나 떼를 써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직 말을 못하는데도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라며 원망하는 말처럼 들려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또 자식을 낳아 키우다 보니 다른 집 아이라도 자기 엄마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실망하는 표정을 보면 같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전업맘이 되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은 다름 아닌 매일 오후 3시 어린이집에 간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이었다. 하원길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함께 놀이터를 가고 손수 저녁밥을 차려주는 평범한 엄마의 일상이 기다려졌다.


 

  일과 가정의 균형이 잘 지켜지는 나라들을 보면 정부의 금전적인 지원보다 기업의 유연근무제 등이 더 활성화돼있다. 맞벌이부부 중 한 사람만 유연근무가 가능하면 출퇴근시간을 앞당겨 자녀 하교시간에 맞춰 퇴근하되 근무시간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는 대기업들이 생겼다.


  정부가 저출산문제를 해결하려고 한해 평균 10조원의 예산을 쓴다고 한다. 하지만 맞벌이육아를 직접 해본 입장에서 더 실질적인 도움은 이런 육아 공백을 채워주는 사회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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