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그거 너무 무서워하지는 마.’라고 하고 싶었던 건데, ‘결혼? 그거 되게 간단한 건데.’라고 받아들여졌을까 봐 아차 싶은 나는 그에 사족을 더 붙였다.
“그렇지만 치약 같은 사소한 문제들이 아주 아주 많아요, 실제로. 없을 수가 없어요. 어느 집은 치약이 문제고, 어느 집은 양말이 문제일 뿐. 그런 사소한 충돌 수백 가지, 수천 가지를 두 사람이 같이 조정해 나가는 게 결혼생활 같아요. 쉴 수가 없지요.”
연애를 몇 번씩, 또는 깊고 오랜 연애를 한두 번 정도 해본 20대 후반, 30대 초중반 남녀불문의 친구들이 30대 중반의 언덕을 막 넘은- 기껏 결혼 4년 차 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결혼생활에 대한 질문을 참 많이 한다. 더 갭이 큰 세대의 인생 선배들에게 묻기에는 부모님한테 들을법한 조언과 충고, 또는 잔소리를 듣게 될까 봐 주저하고, 아이가 있는 선배들에게 묻기에는 ‘출산’과 ‘육아’는 산 넘어 산 같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편하지 않고, 1,2년 차 따끈한 신혼부부는 비현실적인 핑크빛 기류 속에 겉치레 같은 질문과 대답만 오고 갈 것 같은 등의 이유로 나 같이 어중간한(?) 결혼 생활인의 이야기가 현실감이 있어 보이나 보다.
그런 친구들에게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결혼생활의 현실을 너무 커다란 미화 없이 들려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가끔은 얘기하다 보면 너무 솔직한 지옥 현실을 들려주어 안 그래도 겁먹은 미혼 또는 비혼 친구들에게 더 깊은 선입견을 심어주는 게 아닐까 싶어 멈칫할 때도 있지만. 이렇듯 결혼생활 이야기는 단편적으로 얘기할 수도 없고, 그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도 없어서 어려운 이야기 같다.
얼마 전, 내가 참 애정 하는 임경선 작가님의 신간 ‘평범한 결혼생활’ 발간 기념 북 토크에 다녀왔다. 참 공감되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음에도, 결혼 20년 차 작가님이 그 날, 가장 많이 하셨던 말씀은 중간중간에 내뱉으시던 “아... 모르겠어요.”였다. 이렇게 단단한 내공을 가진 분께도 결혼생활이란 한 마디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책 한 권을 쓰셨겠지, 그러고도 모자라셨겠지 싶었다.
무튼 봄바람이 살랑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긴소매로 한낮을 보내려면 슬쩍 나는 겨땀이 의식될 정도로 햇볕이 뜨거워졌다. 어젯밤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더니, 슬쩍 나는 여름밤 냄새에 깜짝 놀랐지 뭔가. 감성충은 또 그런 데서 설렜더랬다. 그 설렌 가슴 껴안고 들어와서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랑말랑한 목소리로 그동안 미루고 미루었던 내 새치 좀 뽑아달라고 말해본다. 단번에 귀찮다며 미용실에 가라고 답하는 짜증 나는 이 남자는- 엊그제는 아무 날도 아닌데 꽃다발을 내밀던 스윗한 남자였다.결혼이란 이런 걸까.
4년간의 연애를 종지부 찍고 결혼이란 것을 마음먹었던 그때도 이쯤이었다. 그동안 등 돌리고 모른 척 해왔던 결혼이란 것을 하자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는 것을 이 사람에게는 비밀로 한다. 결혼은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만, 남녀의 사랑 그 이상으로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도 전제되어야 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애 또한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지만 결혼은 두 사람만의 세계, 그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새로운 차원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