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만 하더라도 내 나이가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많다-하지도 않았지만, 늦지 않게 어떻게 잘 가는구나 하는 분위기였달까. 다행스럽고 감사하게도 나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인지 덜 떨어진 시대감에 괴로워해 본 적은 없다. 그렇다. 나는 완전히 나의 의지와 선택으로 결혼을 했다. 왜 했을까?(응?;;)
사실 나는 결혼이 하기 싫은 사람이었다. 비혼 주의까지는 아니었지만 ‘꼭 해야 해?’라는 생각을 달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30대 언저리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문화가 아니던가. 아마 ‘결혼, 꼭 해야 해?’라는 생각은 ‘안 해도 된다고 말해줘, 제발’이 아니었을까.
언급했듯이 우리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내게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신 적이 없었다. 오히려 서른둘에 깜짝 결혼 발표를 했을 때, 더 있다 하라고 반대하셨을 정도.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인데도 내 마음 한 켠에는 ‘결혼 = 언젠가는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사는 세계는 아빠 엄마의 울타리 안이 아니므로. 성인이 되고 어느 정도 지나 독립을 하고 나서부터는 아빠 엄마를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보다도 다른 어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때때론 그것들이 나의 태도를 결정해 나가기도 한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성 또는 융통성 같은 이름으로.
결혼이 하기 싫은 이유는 너무 많았다. 일단, 이 사람이 나의 영원한 배필이 될 마지막 사람인지, 그다음 사람이 더 있을 운명인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다. 먼저 결혼한 친구는 만나기만 하면 온갖 에피소드를 쏟아내는데 아니 이건 ‘사랑과 전쟁’인가 ‘동치미’인가, 내 친구를 섭외해 가야 한다고 본다. 다들 태어날 때부터 억을 물고 나는지 집값도 억 이라지, 애 하나를 키우는데도 억 이라지, 듣다 보면 정말 내가 억억웩할 지경이다.
‘결혼하면 당신도 출산휴가를 쓸 생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남자를 보면 한숨부터 나오지만, 단번에 응!이라고 대답을 듣는다 해도 속이 후련하지 않다. 결혼에 관해 오만 걱정을 다 하면서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내 마음 나도 몰라다.
그래, 그것은 잘 생각해보면 내 마음의 문제이다.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되어있다.
돈이? 집이?
NO.
내 마음이.
이런 상태에서 당시 나와 연애를 하고 있던 구 남친(현 남편)이 만난 지 몇 개월 만에 ‘결혼’이란 것을 하자고 했을 때, 나는 단번에 거절했다. 그땐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내가 아직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어서.’ ‘취업한 지 얼마 안돼서’라는 핑계들을 늘어놓았다. 이기적으로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을 하기 싫어서 이 연애를 놓아야 하나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내가 독신주의자도 아니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의 일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을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 더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는 연애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한 해 몇 개월 더 지났을까,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자는 그의 말에 또 거절하다가 큰 소리로 싸움이 나게 되었고,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이별을 입 밖으로 꺼냈다. 연남동 어느 벤치, 길 따라 조용히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글썽거리는 눈물에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번져나가던- 숨이 멎을 것만 같던- 그 여름밤의 공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결혼, 얘기하지 않을게. 나는 너랑 결혼하려고 만나는 것 아니야. 좋아하고 사랑해서 같이 있고 싶어서 널 만나는 거야.
그때, 그가 이렇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 여기서 잠깐.
너무 로맨틱하게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렇게 말해주는 남자라면 결혼하겠다, 뭐 이런 감정적인 결정도 삼갔으면 좋겠다. 후일담이지만, 본인은 잘 기억하지도 못하고, 내가 거절을 했더라도 언젠가는 본인과 결혼하게 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거지, 결혼 자체를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자신감, 어디서 나오는 건지 참 궁금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내가 심어주지 않았겠나 싶다. 내가많이 사랑했나 보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기 싫다던 결혼을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