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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mpo Primo Aug 23. 2019

나에게는 찬란한 초록 불빛, 너에게는 평범한 풍경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2013년에 씀


몇 년 전부터 이어진 스크린 셀러의 열풍에 <위대한 개츠비>가 뛰어 들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읽었던 책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차에 영화를 보기 전 다시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싶었다. 지난 번에는 민음사에서 나온 책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문학동네에서 나온 판본을 선택했다. 김영하 작가의 번역이 궁금하기도 했고, 영화의 자막에도 김영하 작가의 번역이 많이 반영됐다고 하여 선택했다.


일부 부분을 원서와 비교해 가며 보았을 때, 의역은 많았지만 그만큼 읽기에 매끄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의 문장이 한국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 인물 간의 대화 부분의 어투를 대폭 수정했는데, 그런 점에서는 훨씬 현실감이 살았던 것 같다. 다만 의역이 조금 많다 보니 원서의 뉘앙스는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웠는데, 그런 점에서 있어서는 민음사의 도서가 번역이 잘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일 때 이 글을 처음 읽었지만, 그때는 애송이였으니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모든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가 복잡하게만 느껴졌다. 그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뿐이었으며, 그래서 글을 읽고 나서도 크게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 읽어 보니 그때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개츠비는 ‘순수한(?) 사랑’을 의미하는 인물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다시 만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 개츠비가 사랑하는 여인인 데이지는 ‘탐욕’으로 대변된다. 가난한 군인인 개츠비 대신 부잣집 남자와 결혼을 선택하며, 끝끝내 개츠비에게로 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개츠비의 부와 명예는 모두 허구이기 때문이다. 데이지를 위해 매일 화려한 파티를 열면서도 그 파티에 참여하지 못하고 늘 집 안에 숨어 그 풍경을 바라본다. 그가 가진 부와 명예에 쉽사리 동화되지 못하는 모습은 그 사실을 나타내는 암시이다. 화려한 불꽃놀이도,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여인들도, 내로라하는 인사들도 개츠비에게는 모두 ‘창 밖’의 것들일 뿐이다. (영화에서는 불꽃이 터질 때 창 안의 개츠비와 창에 비친 불꽃놀이 광경을 오버랩해서 보여 주는 기법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데이지를 향한 데이지의 사랑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의 것이 아닌 거품과도 같은 것이다.


또, 언젠가는 데이지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반대편 만에 마련한 집에서도 개츠비의 비극을 암시한다. 바로 선착장의 초록 불빛이다. 개츠비의 집에서는 늘 데이지의 저택에서 빛나는 초록 불빛을 볼 수 있다. 그 불빛은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이자, 그 사랑이 이루어질 것 이라는 개츠비의 믿음이다. 하지만 개츠비가 데이지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선착장에서 초록 불빛이 반짝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데이지는 개츠비를 기억 속 어딘가에 담아 두고 어디에 두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초록 불빛은 개츠비의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사실 현실적인 시작에서 본다면 개츠비의 행동은 도덕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옳지 않다. 이미 가정을 이룬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한 가정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런 개츠비조차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소설의 힘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사랑을 위해 무모하게, 자기 자신조차 속여 가며 부와 명예를 좇은 것이 개츠비의 죄라고 한다면, 그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이 소설을 단 한 줄로 요약해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이라고. 


김영하 작가의 말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난 후에도 머리 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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