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rrychloemas Apr 21. 2023

우린 너무 달라. 그래서 다행이야.

4월의 어느 날, 오래간만에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이라 날씨를 만끽하러 근교 카페에 놀러 갔다. 너무 예쁜 카페였는데, 메뉴의 금액이 꽤 비쌌다. 남편은 소비를 할 때 가성비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는 경험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음료도 디저트도 가격대가 있다 보니 역시나 남편은 고민하는 눈치. 그런데 나는 이미 눈이 돌아간 상태. 가격 따윈 고려하지 않고 가장 만족스러울만한 메뉴를 고르려고 한다. 남편은 고민 없이 아메리카노를 골랐다. 그리고 ‘난 이거랑 이거 중에 고민 중이야.‘ 라며 디저트 메뉴를 구경하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고민 중인 메뉴의 가격들을 확인하고는 ’아, 난 안 먹을래.‘라며 디저트 진열대 앞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심사숙고 끝에 가장 비싼 디저트를 골랐다. 그리고 우린 그 디저트를 정확하게 반 나눠서 먹었다. 처음엔 남편이 딱 한 입만 먹어보겠다고 했지만, 난 정확하게 반을 잘라서 남편에게 줬다. 남편은 결국 반쪽을 모두 먹었다.




남편과 나는 이렇게나 정말 다르다. 다르면 많이 싸우냐고? 당연하다.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린 싸운다기보단 각자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강렬한 대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싸우는 게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편. 그래서 갈등의 상황이 생기면 피하기보다는 부딪히는 편이다. 물론, 때로는 쿨링타임(너무 열받아서 막말하지 않도록 식히는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 무조건 한쪽의 의견을 따르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으려는 편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고 생각의 시야가 넓어지기도 하고, 물론 ‘아, 왜 저래.’하고 답답해하기도 한다. 전자는 매우 바람직한 생각이지만,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보통은 후자의 생각을 한다. 그래도 최대한 우리는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 존중해 보려고 노력한다.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평생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인데, 비슷하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이 아닐까. 각자의 생활환경이 달랐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 정말 아주 사소한 습관에서부터 큰 가치관까지 모든 게 다르다고 보는 게 속편하다. 조금이라도 헛된 희망을 가지면 그때부터는 진짜로 싸울 수 있다. 여기서 말한 '헛된' 희망이란, 상대방이 나와 같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얘기한다. 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간혹 나랑 입맛이 비슷하거나, 영화 보는 취향이 비슷하다고 해서 나랑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존경이란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다.

- 미움받을 용기 2 중에서 발췌-


존경 혹은 존중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결혼하면서 가져야 할 가장 첫 번째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연애할 때와 다르게 나와 다른 존재와 한 공간 안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 상대방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못한다면 일상이 지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연애할 때 초반에 정말 많이 싸웠다. 우리에게는 여행을 좋아한다는 그리고 유럽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던 독특한 공통점이 있어서 짧은 시간 안에 굉장히 큰 유대감을 느꼈지만, 그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수많은 결정들이 필요한데, 그때마다 나침반이 되는 주요한 가치관들이 너무도 달랐다. 예를 들면, '연락'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달랐다. 남편은 서로 함께 하지 않을 때는 자주 연락하길 바랐다. 만약 친구와 약속이 있다면, 친구랑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연락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의였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존중해서라도 핸드폰을 붙들고 있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통 약속이 있는 경우는 일정이 끝날 때까지 정말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 핸드폰을 안 보는 편이었다. '연락'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은 우리를 자주 싸우게 만들었고, 한 동안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했고, 내 생각을 이해해주지 않는 상대방에 서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여러 차례의 대화 끝에 우리 만의 타협점을 찾았다. 최소한 크게 자리를 옮길 때만이라도 연락을 해주기로. 결혼을 하니 이 약속은 더 중요해졌다. 동거인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걱정돼서 남아 있는 사람이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는 안전과 모두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정해 놓은 최소한의 연락 빈도는 잘 지키고 있다.


이렇게 연락에 대해서 우리만의 규칙을 정하고 몇 년 동안 지켜오다 보니, 오히려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처음엔 연락이 조금만 뜸해져도 걱정했었지만, 막상 연락에 규칙이 생기니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한다. 아마 남편에게는 예측가능성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오히려 이제는 남편이 나가서 연락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다ㅎㅎㅎ 나 같은 경우는 약속이 있을 때는 핸드폰을 잘 안 보니 자연스레 시계도 확인을 못했고, 그래서 자꾸 귀가 시간이 늦어지곤 했었다. 하지만 규칙이 생기고 나서 틈틈이 시간을 확인하게 됐고, 상황에 몸을 맡기던 사람에서 시간을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너무도 다르지만, 많은 시간 대화와 시도를 해보면서 우리만의 방법을 찾았고, 그래서 오히려 전보다 삶이 더 만족스러워졌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이런 식으로 변화한 것들이 참 많다. 물론 여전히 싸우고 있는 부분들도 많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서로를 통해 좀 더 바람직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다르지만, 참 다행이다.



결혼한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보다는 존중이 아닐까.



카페에서처럼 우리는 결혼 후 시시각각 많은 상황에서 서로 다름을 느낀다. 양말을 벗어 놓는 것부터 설거지하는 방법, 빨래 너는 방법, 청소를 하는 순서, 전기를 아끼는 방법 등 일상이 부딪힐 일 투성이다. 그럼에도 100%는 아니지만, 우리는 꽤 높은 성공률로 많은 부분에서 타협점을 잘 찾아왔다. 바로 서로가 다른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존중 때문이 아닐까. 강요하지 않고, 존중하기. 우리 부부가 험난하지만 아름다운 결혼 생활이 가능한 이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결혼한 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