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핫플말고 진짜 로컬

by Merrychloemas
로컬이란, 물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 장소, 공간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개성 있고 특별한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여행의 경험이 쌓일수록 누구나 다 아는 ‘관광 명소’ 보다는 ‘로컬‘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게 됐다. 특히 여행을 가는 이유가 새로운 경험뿐만 아니라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로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져갔다. 로컬이야말로 누군가의 개성과 관점이 두드러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 최대한 로컬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을 찾아다녔고, 그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고 몰랐던 내 취향을 발견할 때마다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즐거웠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더욱 로컬을 갈망했다. 아직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보물 같은 장소와 공간들을 찾고 싶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된 곳들은 이름을 들으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정해져 있어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유명한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었고 물론 관광명소에서도 감동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가능하다면 최대한 나만의 시선으로 순수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도장 깨기 하는 듯한 여행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로컬을 발견했을 때가 훨씬 더 짜릿하게 느껴졌다.


어떤 면에서 로컬은 나에게 애증의 대상이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그저 더욱더 마음껏 누리고 싶은 매력적인 경험들이다. 나처럼 로컬을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조금은 신선한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만나게 된 진짜 로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여행에 정답이 없듯이 로컬에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로컬은 비교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길보다는 모험과 고난이 따르는 경우가 많아서 혹시라도 망설이는 이들이 있다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나의 경험을 나눠보려고 한다.




사실 처음부터 로컬에 가치를 두었던 건 아니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저 무지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2019년 ‘로컬브랜드매니저’라는 타이틀을 얻고 열심히 지역들을 탐구하면서 로컬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다. 아마도 이때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이상한 정의로움(?)과 특별해지고 싶은 관종의 끼가 합쳐져 로컬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싶을 정도로 푹 빠져 살았던 것 같다. 특히 로컬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어쩌다 한 번 가는 여행보다 훨씬 더 로컬을 접할 일이 많아졌고, 다른 사람들이 평생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울릉도를 몇 번이나 오가며 로컬뽕에 흠뻑 취해 있었다. '나 이렇게 로컬에 푹 빠진 사람이야. 울릉도만 갈 수 있다면 그깟 뱃멀미는 언제든 이겨낼 수 있어.'라며 출장 가는 것을 자진하는 정도였다.


한동안은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지역이나 공간 등 특별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성취감을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왜? 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좋아하는 나는, 그토록 애정하는 로컬이 대중에게 먹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부터는 한동안은 로컬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마 당시에는 로컬을 비즈니스와 연결시키는데 혈안이 돼서 조급했고 본질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로컬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다. 여전히 로컬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꾸리고 운영해야 한다면 잘 모르겠다. 철저히 로컬을 즐기고 누리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니 내가 왜 푹 빠졌었는지 그 매력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특히 로컬과 잠시 거리를 두는 동안, 핫플의 중심에서 일을 하며 잊고 있던 가치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트렌드를 리딩하는 기업들, 그중에서도 리더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면서 수많은 브랜드의 공간들을 찾아다녔다. 최신의 트렌드와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누구보다 발 빠르게 핫플을 섭렵해야만 했다. 특히 사무실이 성수동이라 수시로 생기고 사라지는 팝업들을 보면서 조금씩 피로감을 느끼게 됐다. 시류에 편승해 고민 없이 만들어진 공간들은 매력은커녕 불쾌함을 주기도 했다. 직장인들의 허기짐을 따뜻하게 채워주던 동네 맛집들은 자꾸만 사라지고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본 것 같은 복사 붙여 넣기 한 팝업들로 가득 찬 성수동 거리를 보며 다시 로컬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그러니까 내가 로컬을 처음 알고 좋아하게 것도 일을 통해서였고, 실증을 느꼈던 것도 일 때문이었고,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일 때문이다.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는 편이었고, 주위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 번 일에 빠지면 굉장히 몰입하는 편인데 그 일이 바로 '로컬'을 다루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 때는 내가 로컬에 대해서 되게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오히려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잘 아는 로컬을 잘 팔리게 만들 수 있어야 진짜 로컬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라는 착각을 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결국은 난 로컬에서 핫플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감각이 살아나는 로컬 여행


그렇게 일에 치여 한동안은 로컬을 멀리했지만, 온전하게 여행자의 입장으로 돌아오니 다시 로컬이 좋아졌다. 기회가 될 때마다 로컬을 찾았고,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됐다. 이전에는 평소에 하기 어려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여행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로컬로 깊게 파고들수록 여행의 다른 매력들을 알게 됐는데,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로컬 여행의 가장 큰 가치는 취향에 대한 감각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로컬 여행은 알려진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좀 더 예측하기 어렵고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그 과정에서 매번 새롭게 깨닫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음식에 대한 취향은 여행을 갈 때마다 업데이트가 된다. 최근 동남아 여행을 다녀오며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두리안은 맛있고, 한국에서는 입에도 안 대던 코코넛이 너무나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평소에 가리는 외국 음식이 있다면, 현지에서 꼭 한 번 시도해 보는 편인데, 보통 현지에서는 더 맛있는 편이라 여행을 통해 편견이 깨지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 글부터는 여러 도시와 동네의 로컬 여행에서 경험한 것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영어도 통하지 않는 대도시의 식당에서 음식 주문하기, 로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가성비와 가심비 여행, 그리고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열정적인 기념사진의 추억까지. 로컬이라서 가능했던 감각적인 여행기를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