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여행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요즘 가장 보편적인 기준은 아마도 MBTI가 아닐까 싶다. 누구는 J라서 분초 단위로 계획을 세워 여행하는 반면, 누군가는 P라서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한다는 식이다. 물론 그런 타고난 성향도 나의 여행 스타일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여행지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관점이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포인트가 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했다. 나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이걸 어떻게든 글로 남겨보면 좋겠다는 것이 <로컬 애니웨이, 해외여행편>의 시작이었다.
주로 내가 여행하는 이유는 '로컬'이다.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관광지보다는 이름 없는 골목길을 더 좋아한다. 최근 방콕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유명한 사원이 아닌 로컬 시장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자연스럽게 세월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매력을 뿜어내는 곳들이 좋다. 눈길을 끄는 화려함보다는 오감을 깨우는 진짜를 경험하는 것이 좋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보다는 내 마음에 쏙 드는 하나를 발견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로컬 여행이다.
로컬을 만끽하는 나만의 팁이 있다면 여행을 가면 그게 어디든 최대한 현지인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만 아는 지름길이 있는 것처럼 일반적인 루트가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다니는 편이다. 감사하게도 길눈이 타고난 덕분에 이런 여행 방식이 가능했던 것도 있다. 아무래도 타고나길 로컬 여행에 최적화된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현지인들이 보기엔 누가 봐도 나는 여행자이겠지만, 여행지를 대하는 마음자체가 다르다면 그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조금 더 다양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최대한 현지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렇게 나에게 익숙하고 편한 것보다는 현지에 초점을 맞춰 여행을 하다 보니 낯설고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여행들이 많다. 에피소드로 따로 다루진 않았지만, 달랏에서 호치민으로 이동할 때 탔던 슬리핑 버스 역시 현지를 느낄 수 있는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달랏 터미널까지는 슬리핑 버스 회사에서 픽업 차량을 운영한다고 해서 숙소에서 고지된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숙소 직원들과 몇 번이고 작별인사를 건네고 심지어 직원들이 퇴근할 때가 되어서도 픽업차량은 오지 않았다. 1시간도 넘게 지나서 온 픽업 차량은 우리를 시작으로 달랏 시내 곳곳을 들러 좌석을 꽉 채운 후에야 달랏 터미널로 이동했다. 가는 내내 이러다 버스 시간에 늦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훨씬 먼저 와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우리가 탈 슬리핑버스는 또 한참이나 지나서야 터미널에 들어왔다. 이게 바로 베트남 타임이구나 싶었다.
드디어 슬리핑버스에 올라타 긴장을 풀고 잠을 청해 보려 했지만, 또 다른 고행의 시작이었다. 밤새 춤을 추는 듯이 흔들리는 버스에서 베트남의 경사진 비포장 도로를 온몸으로 느끼느라 잠은 사치였다. 그렇게 쉼 없이 달린 덕분에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호치민에 도착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큰일이다 싶었는데, 버스에 내려 마주한 호치민의 풍경은 예상과 달랐다. 한밤중처럼 깜깜한 새벽인데도 이미 하루를 시작한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곳곳에는 영업 중인 식당들도 보였다. 또 다른 베트남 타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베트남은 낮에 너무 더워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고. 그럴만했던 게 정말 낮에는 건물 밖을 나가면 1분 만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내 생에 첫 슬리핑 버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상과 달랐고 꽤나 힘든 일정이었지만, 베트남 여행 전체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가장 베트남 스러웠던 경험이기도 하다.
로컬 여행을 계속해서 추천하고 싶은 또 다른 큰 이유는 '나만의 취향'을 찾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컬 여행에서는 좀 더 다양하고 개성이 넘치는 것들을 만날 수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것보다는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숨겨진 보석 같은 것들을 찾는 여정이 바로 로컬 여행이 아닐까 싶다. 그 안에서 점점 더 선명해지는, 감동을 주는 것들을 알아가다 보면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누군가 삶이 지루해 떠난 여행조차도 지루해졌다고 말한다면, 그때는 꼭 로컬 여행을 떠나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난 8월부터 약 두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연재해 온 <로컬 애니웨이, 해외여행편>이 포르투갈 아베이루를 끝으로 에피소드는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방콕을 시작으로 베트남과 포르투갈의 도시들을 거쳐 온 로컬 여행의 여정을 함께 해주신 모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잠시의 휴식 시간을 가진 후, <로컬 애니웨이, 국내여행편>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