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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ry Dec 19. 2022

나이 먹기 힘들어

9살, 인생 고백

“나이 먹기 힘들어”

9살 꽃하은이 말했다.

“숙제도 많고, 엄마는 맨날 혼내고, 다시 아기로 돌아가고 싶어”

130cm, 30kg 거대한 아기가 잔뜩 웅크리며 티셔츠 속을 파고든다. 다시 뱃속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보다


2019년 12월 노원구 중계동으로 이사했다. 을지초 초품아이자 강북 대표 학군. 은행사거리 바로 앞 청구아파트를 계약했다. 퇴사 후 분가하며 7살이 된 아이를 처음으로 내 손으로 키워야 했다. 의욕이 넘쳤다. 학군? 당연히 봐야지. 이사 전부터 영어유치원 설명회를 휩쓸고 April, SLP, 폴리 7i 테스트 날짜까지 받았다.


“미친년아!! 중계동에서 숲유치원이 뭐야!!”

두둥. 그렇다. 미친년 소리를 어마어마하게 들었다. 이사 직전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는 책을 읽고 멍해졌다. 급히 노선을 바꿨다. 입학 전 가장 중요한 7살에 꽃하은은 숲유치원으로 등원했다.


코로나 1년 차 숨 막히는 한 해 동안 하은이는 숲에서 뛰어놀고, 개울에서 올챙이 잡고, 겨울눈을 관찰했다. 나뭇잎 냄새만 맡아도 나무 이름을 알아맞혔으며(아직까지 신기하다) 하원 후 놀이터에서 기본 2시간을 놀았다. 중계 청구 3차와 바로 옆 건영을 합해 약 1,730세대 중 숲유치원을 가는 아이는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7세는 4명뿐이었다.


하은아 이제 집에 가자


이 동네 애들이 이상하다. 처음 이사 왔을 때도 느꼈지만, 역시 이상하다. 중․고등학생들이 걸어 다니며 책을 본다. 신호등 기다리며 보고, 걸어 다니며 본다. 앞을 보지 않고 걷는다. 목 디스크 다 터지겠다.


내가 무지한 건지

아이들이 무리하는 건지.


시윤이는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오늘 컨디션은 어떤지, 운동은 재밌는지, 통증은 나아졌는지. 8평 남짓 개인룸에 내 목소리만 민망하게 울렸다. 목소리 듣기만큼 시선 맞추기도 어렵다. 바스락바스락 어머님 속 타서 재 날리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송도 국제학교 채드윅 K grade(Kinder)에 내국인으로 입학할 때 경쟁이 피터졌다고 했다. 준비하며 아이는 머리가 엄마는 속이 터졌다. 시윤이 목에는 티파니앤코 하트 열쇠 팬던트가 늘 반짝거렸다. Grade1이 시작되는 8살 생일에 선물하셨단다. 아직 짧은 쇄골이 긴 팬턴트에 부딪혀 어딘가 늘 빨갰다. Grade5, 12살 그동안 몸도 마음도 잠겨버린 걸까.


체지방률이 높고 거북목, 굽은 등이 심했다. 목, 허리, 무릎까지. 그리고 손가락까지 신경이 눌려 통증이 있고, 좌우 체형도 상당히 틀어져있었다. X자 다리에 무릎도 뒤로 밀렸다. 12살이다.


체형만으로도 어떻게 생활할지 눈에 보인다. 의자에 눕듯 기대어 앉아 왼 손으로 이마를 괴고 책상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쳐다보나 보다.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는 것 같다.


무엇보다 말을 하지 않았다. 좋다. 싫다.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 혹은 하고 싶다. 의견을 표현한 적이 없다. 그저 짧게 사라질 듯 “네”가 전부였다. 12살인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7살 투정은 적응하느라 그런 줄 알았다. 8살 짜증은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어 그런 줄 알았다. 9살부터 조용해지기에 잘 다니는 줄 알았다. 10살엔 고요했고, 11살엔 적막했다. 명문 학교지만 누구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어머님은 필라테스로 체형을 상담으로 멘탈을 케어했다. 본인 욕심으로 아이가 망가질까 봐 좋다는 것들을 새벽 내내 검색하고 오후 내내 라이딩했다. 잡고 있는 끈은 차마 놓기 어렵고, 나아지고는 싶었으리라.


꽃하은 8세에 을지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8세 폴리+영어도서관+에세이 문법 과외, 수학 과외+소마 프리미어 or CMS CP가 기본 방향이었다. 어디 가서 극성으로 지지 않는 엄마인지라 플래이팩토와 오르다를 종료하고 소마로 옮겼다. 할머니 사랑 속에 공부는 1도 해본 적 없는 하은이가 하교 > 놀이터 > 학원 > 숙제 > 독서를 내달리면 9시. 어느덧 취침 시간이었다. 시간이 부족해 저녁을 먹으며 책을 읽게 했다. April은 4학년쯤 청담어학원으로 넘어갈 것을 계획하고 seed2를 향해 달렸다.


네?


8세 9월, ‘푸와아아아아아아와왕!’ 하고 터졌다. 아이가 학원을 거부했다. 말수가 줄었다. 웃음이 사라졌다. 분명 우울해했다.

“하은아 힘들면 쉬어도 괜찮아.”

“엄마, 혜진이가 지금 seed1인데 내가 지금 쉬면 다음에 같은 반 해야 하잖아. 지금은 내가 더 높은데!!”

8살 하은이는 달리자니 죽을 것 같고 멈추자니 불안해했다. 나는 이런 순간마저도 딸의 욕심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진 엄마였다. 불쌍한 딸을 끌어안고 꽤 오랜 시간을 흘려보냈다. 소마는 아이가 즐거워해서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정리했다. 영어는 차마 놓을 수 없어 잠수네를 참고해 엄마표를 시작했다.


시윤이는 4개월이 지날쯤 아주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여전히 대답은 없지만 표정으로 충분했다. 볼, 보수, 점핑보드를 좋아하기에 50분 내내 뛰었더니 내 손에 마이쮸를 쥐어주고 갔다. 흐흐흐 4타임의 에너지를 갈아 넣어 마이쮸를 얻어냈다.


아직 성장기 아이라 운동 효과도 좋았다. 굽은 등, 측만, 무릎 정렬이 나아지며 키도 컸고 통증과 저림도 사라졌다. 그리고 집에서 수다가 늘었다고 한다. 수업 후 추노 같은 내 모습을 보신 어머님은 매 레슨마다 기프티콘을 쏘셨다.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져 감사히 바로 카페인을 수혈했다.


이제 곧 10살이 되는 하은이도 나아졌다. 우리는 학군지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이사했다. 학군과 숲 중에 인생일대의 고민을 하다 숲을 택했다. (더 이상의 이사는 거절한다.) 소마와 주 2회 영어도서관, 줄넘기, 기계체조가 전부다. 예전만큼 달려주지는 않지만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할 줄도 안다.


3학년을 앞두고 과학, 사회를 훑어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고민한다. 코딩을 시작해야 하나, 영어 문법을 돌아야 하나, 교과 수학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한다. 욕심인가 싶다가 SNS의 남의 자식들을 보면 조바심이 난다.


휘청이는 엄마와 상관없이 꽃하은은 매일 수학 1장, 국어 1장, 영어 듣기, 독서의 벽돌을 성실하게 쌓고 있다. 너는 참 성실하단다. 관찰력이 어마어마하고 글과 그림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하지. 그러나 뒷심은 부족하단다. ‘정리’라는 개념은 어디에 둔 거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인 것 같다. 아이가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알려주는 것. 더 달라고 하면 더 주고 잡아달라고 하면 잡아주는 것.


우리의 밀당은 앞으로 수백 번 반복되겠지만, 서로 어긋나지 말자. 엄마는 너의 3학년이, 너의 10대가 매우 기대되는구나. 앞으로 잘해보자 :)



사진출처 : istockpho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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