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나도 사람인데.
가끔 자신의 감정 관리에 유연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때면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동경'이었다가 '호기심'이었다가 '희망'이 되기도 하고 어느샌가 '체념'이 되어있기도 하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감정은 돌덩이와 같았다. 그리고 나는 고여있으면 썩는, 그래서 흘러가야만하는 물이라 느껴진다.
어제도 산책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집 앞에는 산책로가 아주 잘 조성되어 있는데, 그 곳에는 천이 흐른다. 물만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 곳에는 물의 진로를 방해하는 돌덩이들이 아주 많다. 사람이 건너기 편하도록 설치해놓은 징검다리도 물의 입장에서는 크나 큰 장애물일테다.
한동안 물과 바위에 집중하다가 문득 바위 곁에서 물결이 이는 것을 보았다. 마치 파도가 치듯, 시냇가에도 작은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물이 바위에 부딪힌 순간 그 곳에는 흰색 움직임이 일었다. 예뻤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흐르는 물이 바위를 만나면 바위를 넘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옆으로 빗겨 흐른다.
나는 물이다.
흘러가고 싶은 물이다.
물이 바위를 만나, 바위에게 시선을 빼앗겼다면, 그래서 결코 저 바위를 올라 넘어갈 수 없는 자신의 현실에 집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물은 고여서 썩기 시작했을 것이다. 물이 높은 바위를 올라 그것을 뛰어 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테니 말이다.길고 긴 시간이 지나 바위가 넘어지거나 깎이거나, 혹은 홍수에 물이 불어나 그것을 넘어갈 수 있을만큼이 되면 모를까.
그런데 어제의 시냇물은 바위를 만나도 그저 갈 길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히려 돌을 치고 흐르는 물결이 자연의 멋을 한층 깊게 하고 있었다.
그러게, 물이 흐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그저 돌아가면 될 뿐이다.
가끔 나는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돌덩이들과 마주한다. 흘러 내려오던 관성이 있어 작은 돌덩이들은 가볍게 위로 올라타 지나치고는 한다. 그러면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다.
하지만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큰 바위를 만날 때면 '아, 나는 한낱 물에 불과했지. 내가 바위를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산건가.'라는 현실자각타임에 빠진다. 그래서 내가 옆으로 흐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일쑤다.
나는 완벽할 수 없어. 나는 사람이니까.
가끔은 힘들고 무너지고 감정에 빠져 버리기도 해.
잘하다가도 못할 때가 있고, 다 그런거잖아.
그래서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해.
라는 나의 말에, 오빠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오, 아주 완벽하네.
아주 완벽한 사람의 모습을 찾았네.
그게 곧 사람의 완벽함이 아닐까?
살아가다 가끔은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고 '신의 완벽함' 곧 '무결함'에 도달하려고 할 때가 있다.
나는 바위를 타고 넘어갈 수 있을 경지에 올라야만, 어떠한 장애물이 나와도 그것을 뚫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만 완벽한 존재가 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자면 내 인생에 바위가 없어야 완벽할 수 있다고 믿었을테지..
하지만 물의 완벽함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히 흐를 수 있다는 데에서 온다. 시원하게 뻥뻥 뚫려 직진으로 흐르고, 가끔은 돌아서도 흐르고, 그렇게 소용돌이를 돌다가 잠시 멈춘 듯 그 자리에 머물러 흐르기도 한다.
결국 물의 완벽함은, '흐르는'데에서 온다.
사람의 완벽함은 ‘감정’에서 나온다.
감정의 곁을 흐를 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