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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여도 괜찮을까요?

빛과 그림자

by 메리힐데
무엇보다 네 자신에게 정직하라


나는 누구인가?

한 사람의 인격을 정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에게 가장 깊고 강렬하게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갖게 하는 특정한 정신적 또는 도덕적 태도를 찾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순간!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뜨거워진 그 순간, '이게 진정한 나다!'라고 외치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위니콧의 심리학 이론에서 그는 '참 자기'와 '거짓 자기'를 구별한다. 그에 따르면 참된 자기는 근본적이고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펼쳐지는 내면의 감정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참 자기는 개인의 감정적 진실, 진정한 느낌, 사물에 대해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근거한다. 우리가 '그렇게 느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감정적 실재에 뿌리를 둔다. 반면 거짓 자기는 유년기에 발생한다. 자신의 진짜 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두려움과 부모나 가족 또는 사회가 실제 자신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으로 인해서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끼게 되면 결과적으로 우리는 가면을 개발한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바람에 맞추어 순응하고, 그들의 인정을 얻거나 그들의 거부를 피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길을 따르는 것'과 '자신의 길을 찾는 것' 사이의 긴장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거룩함을 모방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아무리 고귀하고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의 소명은 거룩함을 향한 우리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여야 하고, 우리 자신으로 행하여야 한다.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아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대신 우리의 불완전성을 포용하고 수용하여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약함과 한계를 넘어 정의와 선행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려는 열망을 지녀야 한다. 언뜻 보기에는 불완전함을 수용하는 것자기 초월을 열망하는 두 개념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이 둘 간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참 나'로 살아갈 수 있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감정적 불편함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선한 인간의 이상향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지 않는 실제 우리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자신의 자아 이상향에 부합하지 않는 우리의 어떤 측면을 '그림자'라고 불렀다. 그림자가 반드시 나쁘거나 죄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내적 경험의 어떤 차원은 더 어두울 수 있고, 우리가 바라는 자기의 유형과 쉽게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의 그림자는 대개 분노, 섹스, 개인적인 감정적 욕구와 관련된 생각과 느낌에 연결된 것일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적절한 분노의 감정에도 극단적 죄책감을 느끼는데, 분노가 자신은 늘 자애로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상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성적 감정과 욕구 또한 죄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긴장을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자 하는 정상적인 인간의 욕구도 너그럽고 이타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기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물론 그림자가 무분별하고 폭력적으로 발휘된다면 위험하다. 무분별하게 표현된 분노는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성적 감정으로 인한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행위 또한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너무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은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그러므로 우리의 그림자를 다룰 때는 분별력 있는 태도와 자제, 그리고 상식이 요구된다.


그러나 위험한 측면이 있는 우리의 그림자가 곧 우리 자신의 인격적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의 그림자를 부인하고 억압할 때, 반대급부로 결국 과도하게 집중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그림자를 가졌다는 사실을 방어적으로 부인하게 될 때, 우리는 심리적 정직을 잃는다. 정직을 잃기로 하는 선택이 계속되면 우리는 거짓된 삶으로 걸어간다.


너무 방어적이고, 자신을 너무 억제하려 들고, 항상 너무 착하려고 하는 것. 진정한 감정을 느끼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 감정이 품은 생명력에서 나를 단절시키는 행동이다. 우리가 분노와 성적 열망 등 자연스러운 감정에서 단절될 때, 인간다움을 잃어간다. 생명력을 잃어 간다.



우리의 그림자를 받아들여야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타인에게 그것을 투사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끄러워하고 보기 싫어하는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해 비난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그림자가 있다. 참 다행이다.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옆 사람도, 부모님도, 자식들도, 연인도, 친구들도, 단골가게 사장님도,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친 행인에게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림자가 있다. 이제는 그림자를 인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며 세상에 나아가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마치 알몸으로 세상에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나 오히려 어려워서 해낼 맛이 난다. 그것은 진정 의미 있는 다짐이다. 누구보다 나 자신의 열등한 그림자를 잘 아는 내가, 그럼에도 빛과 그림자를 모두 사랑하며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 기쁘게 살아내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약점을 겸손하게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약점을 드러내 보이며 불완전한 자신을 돌보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역설적이게도 타인을 더 성숙하게 사랑할 수 있게 해 준다. 그 사랑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자유로워진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샘이 많아 사람들을 꽤나 부러워하기도 하고요. 생각보다 쿨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상처를 받으면 며칠씩 마음에 담아 두기도 하고요. 사람을 좋아하지만 소심해서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생각보다 유행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하는 줄임말이나 요즘 인기 많은 아이돌도 잘 모릅니다. 고집이 매우 세요. 그래서 사람들의 조언을 비난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귀도 얇아요. 선택을 잘 못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유부단해요.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가 사실 없어요. 오해받는 것, 미움받는 것이 제게는 가장 힘듭니다. 이것 외에도 저는 그림자가 참 많은 불완전한 사람입니다.


이런 나여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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