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당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신개념 독서대행 써-비스
악마와 인간 사이의 계약을 노래한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 영혼을 담보로 한 이 무시무시한 계약의 출발점이 의외로 지상도 지옥도 아닌 천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밝은 빛과 대천사들의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퍼지는 천국에 갑자기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난다. 성큼성큼 신 앞에 나선 그는 인간들에 대해 쌓였던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틈만 나면 짐승 같은 짓을 일삼는 천박한 존재이다. 그 어리석은 것들이 알아서 파멸을 자초하는 통에 괴롭힐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다는 악마의 푸념을 묵묵히 듣던 신은 온화하게 대답한다. “비록 어두운 충동에 쫓길지라도, 선량한 인간은 결코 올바른 길을 잊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악마는 자격도 없는 존재가 신의 사랑을 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던 그는 결국 신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본성은 선량하지만 충동 앞에 흔들리는 인간을 한 명 골라잡아 달콤한 유혹으로 꼬드긴 뒤, 그가 타락하는지 어떤지 한번 지켜보자는 것이다. 신은 흔쾌히 악마의 제안에 응한다. 두 존재가 내기의 대상으로 선택한 인간은 똑똑하면서도 가진 지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진리를 원하면서도 신앙심이 부족한, 한 마디로 말해서 ‘아직 좀 애매한’ 인간인 파우스트 박사이다. 악마는 내기에서 이기면 그의 영혼을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신의 약속에 콧노래를 부르며 지상으로 내려간다.
이제 작품의 시선은 자신이 신과 악마의 내기에 휘말린지도 모르는 가련한 인간 파우스트의 서재를 비춘다. 파우스트는 철학부터 법학, 의학, 신학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학문을 섭렵하고 심지어 마법까지 부릴 줄 아는(모쏠인듯) 뛰어난 학자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제자는 스승을 신처럼 떠받든다. 하지만 정작 파우스트 본인은 아무리 공부해도 진리를 깨우칠 수 없다는 괴로움에 휩싸여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제자와 함께 산책을 나선 그는 수상한 기운을 풍기는 검은 개가 자신들을 졸졸 따라온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내공이 부족한 제자의 눈에는 그저 훈련을 잘 받은 푸들로 보일 뿐이지만, 파우스트는 한 눈에 그 개가 평범한 짐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보고 자신의 서재로 데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조그맣던 푸들은 이내 털을 뻣뻣하게 세우고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마침내 사람의 형상으로 변한다. 나약한 인간 파우스트와 비열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처음으로 대면한 순간이다.
파우스트는 내심 당황하면서도 능숙한 마법사답게 침착한 태도로 상대의 정체를 묻는다. ‘항상 악을 원하면서도 항상 선을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애매하게 자신을 소개한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가 수십 년의 노력으로도 이뤄내지 못한 경지의 마법을 선보이며 자신에게 지옥의 힘이 있음을 암시한 뒤, 그에게 유혹적인 계약을 제안한다. 계약 조건은 매우 간단하다. 파우스트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악마는 그의 종이 되어 모든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모든 욕망을 이룬 뒤 죽음을 맞이하면 주인과 종의 위치가 뒤바뀌고, 파우스트는 영원히 지옥에서 악마를 섬겨야 한다. 곰곰이 뜯어보면 섬뜩하기 그지없는 내용이지만, 당장 죽을 정도로 진리와 경험에 목말라 있던 파우스트는 앞뒤 생각할 것 없이 상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입에서 "순간이여,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말이 나오면 모든 욕망을 이룬 것으로 치고 영혼을 넘겨야 한다는 조건에 동의한다. 그 순간 서로 다른 두 존재의 아슬아슬한 계약이 성립된다.
죽은 후에 지옥에서 어떤 운명을 맞을지언정, 이제 파우스트는 악마의 주인이 되었다. 그가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그토록 꿈꿔 왔던,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알려달라’는 소원이다. 하지만 진리는 신의 소관이지 악마의 소관이 아니기에, 제아무리 메피스토펠레스라도 이런 요구는 들어줄 수가 없다. (이후에도 여러 번 나오지만, 작품 속 악마는 생각보다 전지전능하지 않으며 주인의 무리한 요구에 쩔쩔 매는 귀여운(?) 모습을 꽤나 자주 보인다) 자신의 능력으로 들어줄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생각보다 훨씬 깨끗한 파우스트의 요구에 당황한 악마는 온갖 감언이설을 동원하여 주인의 생각을 보다 세속적인 관심사로 유도한다. “진리니 뭐니 하는 따분한 것에 매달려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소? 어차피 인간의 영역도 아닌 그런 욕구만 포기한다면, 내가 당장 젊음과 부, 명예를 선물해주겠소.” 한동안 갈등하던 파우스트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살아생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인생의 즐거움을 누려보기로 결심한다.
악마는 주인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당장 마녀의 부엌으로 그를 데려간다. 마녀는 악마의 명령에 따라 젊음의 약을 내어주고, 그 약을 마시자마자 파우스트의 늙고 주름진 육신은 싱그러운 청년의 모습으로 바뀐다. 사실 이 약에는 마신 사람의 눈에 세상 모든 이성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간사한 악마는 주인에게 그 부분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파우스트는 젊어진 몸이 가져다준 활기와 자신감만을 가진 채 마을로 내려가고, 처음 마주친 평범한 소녀 그레트헨에게서 그리스 여신에 버금가는 미모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약의 강력한 부작용 때문인지, 아니면 세속적 욕망을 등한시하고 살아 왔던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파우스트는 (제 눈에만) 아름다운 그레트헨을 향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정욕을 느낀다. 그는 젊고 준수해진 외모와 악마를 부려 만들어낸 보석, 화려한 언변을 동원하여 결국 그녀의 몸을 손에 넣는다. 하지만 애초에 선하고 순수한 소녀였던 그레트헨의 헌신적인 사랑은 육체적 관계만을 추구하던 파우스트의 마음을 서서히 녹이고, 어느새 그는 연인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보수적인 시골 마을에 결혼도 안 한 처녀와 뜨내기 총각 사이의 지저분한 염문이 퍼진다. 소문을 듣고 분노한 그레트헨의 오빠 발렌틴은 집 앞을 지키고 있다가 동생을 만나러 온 파우스트를 향해 다짜고짜 결투를 신청한다. 군인 출신의 발렌틴이 휘두른 예리한 칼날이 파우스트의 몸을 꿰뚫으려는 찰나, 메피스토펠레스는 저주로 상대의 몸을 마비시킨 뒤 살고 싶다면 그를 죽일 수밖에 없다고 주인을 충동질한다. 파우스트는 두려움에 못 이겨 살인을 저지르고, 악마의 손에 이끌려 일단 자리를 피한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충격에 빠졌을 그레트헨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그는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는 무슨 생각인지 마을로 돌아가는 대신 주인을 데리고 ‘발푸르기스의 밤’이라고 불리는 악마들의 축제에 참석한다. 처음에는 수심이 가득하던 파우스트였지만, 얼마 안 가 젖가슴을 드러낸 마녀들과 신화 속에 나오는 정령들, 온갖 종류의 요정과 악마, 엉덩이망상가(...) 등이 참여한 화려하고 음탕한 축제에 정신을 빼앗겨 연인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현실을 잊고 쾌락에 빠져 지내던 파우스트는 한참 후에야 마을로 돌아오고, 그레트헨이 오빠는 물론 어머니까지 잃은 뒤 아버지 없는 아이를 낳아 우물에 버린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악마를 원망하고 자신을 탓했지만, 이미 그의 연인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뒤다. 그는 포기하라는 악마를 윽박질러 그레트헨을 데리고 도망갈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정작 감옥에서 만난 그레트헨은 거의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도 탈옥을 완강히 거부한다. 죗값을 치르고 싶다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두고 허탈하게 감옥을 나서는 파우스트 곁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즐겁다는 듯이 외친다. “저 여자는 심판받았다!” 그러나 그 순간 하늘에서 장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여자는 구원받았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요정들의 힘을 빌려 죄의식에 쇠약해진 파우스트의 생명력을 회복시킨다. 그리고는 무능한 황제가 통치하는 어느 나라의 궁전으로 그를 데려간다. 그 나라는 사치와 향락에 빠진 지도자 때문에 거의 무너지기 직전의 상황에 있다. 빈곤과 부패, 범죄에 노출된 백성들의 원성은 나날이 높아져 가지만, 황제와 가신들은 폭동을 두려워하면서도 여전히 술과 파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1막에서 파우스트에게 젊음과 쾌락을 선사했던 메피스토펠레스의 이번 임무는 그에게 황제의 신임을 얻어다주는 것이다. 악마는 황제의 가장 큰 걱정이 국가의 재정난이라는 사실을 알고, 우선 어릿광대로 변장하여 그의 관심을 끈 뒤 자신에게 며칠만 말미를 주면 모든 국민들을 부유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솔깃한 제의를 한다. 꼼수의 달인인 악마가 떠올린 방법은 새로운 지폐를 엄청나게 찍어서 나라 전체에 뿌린다는, 너무 단순해서 무서울 정도의 사이비 경제 대책이다. 그는 황제에게 술을 진탕 먹이고 파우스트의 현란한 마법쇼로 정신을 쏙 빼놓은 뒤 지폐 발행 허가증에 은근슬쩍 서명을 받아낸다. 황제의 서명이 들어간 허가증은 술이 깨기도 전에 효력을 발휘하고, 다음 날부터 온 나라에 지폐가 발에 치이도록 넘쳐난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미봉책이지만, 어쨌든 당장 가진 돈이 많아진 백성들은 빚을 갚고 식량과 옷가지를 구입하면서 부질없는 풍요를 즐긴다.
하지만 망조가 들었던 나라를 (일시적으로나마) 안정시킨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지, 욕심쟁이 황제는 파우스트와 악마에게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억지 부탁을 한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다고 전해지는, 그 미모 때문에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왕비 헬레네가 보고 싶으니 그녀의 유령을 불러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리스의 이교도들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곤란해 하지만, 황제의 신뢰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파우스트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고대의 유령을 소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마침내 황제와 귀족들 앞에 지상 최대의 미녀를 선보이기로 한 연회 날이 다가온다. 파우스트는 죽을 고생을 해가며 메피스토펠레스가 알려준 조건을 그대로 수행하고, 가까스로 헬레네의 환영을 불러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헬레네의 아름다움은 파우스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만다. 그는 안 된다고 외치는 악마의 절박한 비명도 무시한 채 유령의 몸에 손을 대고, 그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유령은 연기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기절한 파우스트를 둘러매고 욕설을 퍼부으며 허공으로 사라진다.
악마가 순간이동으로 도착한 곳은 맨 처음 둘의 계약이 시작되었던 파우스트의 서재이다. 그는 주인의 상태를 찬찬히 살피지만, 헬레네 유령에게 혼을 빼앗긴 파우스트는 열에 들떠 의식을 되찾지 못한다. 이리저리 대책을 강구하던 메피스토펠레스는 결국 파우스트의 욕망을 이뤄주는(결과적으로 그의 영혼을 빼앗는) 유일한 방법이 고대 그리스로 날아가서 헬레네를 만나게 해주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지옥에서 편히 지낼 걸 그랬다고 씩씩대면서도, 충직한 악마는 주인을 위해 페네이오스 강이 흐르는 신화 속 세계로 향한다.
어딘가에서 실려 오는 헬레네의 향기를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내내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파우스트는 신비로운 존재들이 가득한 고대 그리스 땅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뜨고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상사병에 단단히 걸린 그는 겁도 없이 거대한 스핑크스에게 질문을 던지고 반인반마 켄타우로스를 잡아타는 등 갖은 모험 끝에 헬레네의 소재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다.
파우스트가 도착한 시점에 헬레네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과 결혼하여 왕비로 지내고 있다. 그러나 메피스토펠레스는 이번에도 주인이 원하는 것을 가로챌 묘안을 짜낸다. 그는 우선 궁전의 시녀로 변신한 다음, 전쟁터에 나간 왕으로부터 제물을 바치라는 전갈이 왔다며 헬레네가 보는 앞에서 제단을 설치한다. 날카로운 도끼와 제물을 태워 공양할 불씨까지 전부 마련한 악마는 별안간 헬레네를 돌아보며 말한다. 사실 왕께서 바치라고 명령한 제물은 왕비님, 바로 당신이었노라고. 헬레네는 공포에 하얗게 질리고, 노련한 악마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속삭인다. “왕비님께서 목숨을 건질 유일한 방법은 북쪽의 땅으로 도망가서 그곳의 영주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것뿐이에요.”
헬레네는 살기 위해 그녀(?)의 조언에 따른다. 시녀가 안내한 북쪽 땅에는 과연 견고한 성이 우뚝 서 있고, 안으로 들어가니 파우스트가 궁중 예복 차림으로 우아하게 그녀를 맞이한다(물론 이 성은 악마가 재주를 부려 만들어낸 허상이다). 파우스트는 온갖 찬사와 선물로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아내를 되찾기 위해 허겁지겁 쫓아온 스파르타 왕의 군대마저 손쉽게 격퇴한다. 헬레네는 늠름하고 강인한 이국의 성주에게 마음을 홀딱 뺏긴다. 두 사람은 정식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 뒤 낙원 같은 땅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그 사이 파우스트와 헬레네는 총명한 아들 오이포리온까지 낳고 꿈처럼 달콤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아들이 장성한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이 그림 같은 가정에 한 가지 불안이 싹튼다. 혈기왕성한 오이포리온이 안락하고 평화롭기만 한 낙원에서의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국경의 전쟁터로 나가 나라를 위해 싸우고 싶다는 꿈을 꾸고, 결국 만류하는 부모님을 뿌리치고 날개를 펼쳤다가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헬레네 또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내던진다. 완벽한 삶을 얻은 것 같았던 파우스트의 여정은 이번에도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악마와 함께 고대 그리스를 떠나 현실로 돌아온다. 부와 권력, 사랑과 쾌락을 모두 거머쥐었지만 끝내 행복해지지 못한 파우스트. 그는 마침내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어떤 결론에 도달한다. ‘자신만을 위한 노력으로는 결코 온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는 권력욕과 명예욕을 모두 내려놓은 채 타인을 위해 일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그 방법으로 바다를 메워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농사지을 땅을 마련해주는 간척사업을 선택한다. 하지만 간척사업을 하려면 우선 본인 소유의 해안선을 손에 넣어야 하지 않겠는가. 늘 그랬듯, 바다를 갖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주인 때문에 머리털이 빠지도록 고민하는 것은 메피스토펠레스의 몫이다. (이쯤 되면 악마가 자못 가련해 보일 지경이다)
주변 정세를 둘러본 악마는 마침 이웃 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바다가 포함된 영토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린다(공교롭게도, 반란의 불길에 휩싸인 곳은 예전에 악마와 파우스트가 지폐 발행으로 일시적인 풍요를 가져다주었던 그 무능한 황제의 나라이다). 악마는 파우스트를 지휘관으로 내세운 뒤 싸움꾼과 욕심쟁이, 자린고비라는 세 명의 무사를 붙여준다. ‘눈에 띄는 놈들의 턱을 전부 으스러뜨리는’ 싸움꾼과 ‘황제군의 마음에 전리품을 향한 탐욕을 불어넣는’ 욕심쟁이, 그리고 ‘한 번 움켜잡은 것은 번개가 내리쳐도 놓지 않는’ 자린고비의 도움을 받은 결과, 파우스트는 혁혁한 공을 세우며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반란 진압의 공을 인정받아 원하던 해안선 통치권을 하사받은 것은 물론이다.
이제 파우스트는 작은 해안 지방의 영주가 되어 간척사업을 시작한다. 사나운 파도와 싸워가며 바다를 흙으로 메우고, 그렇게 생겨난 땅에서 열심히 일하는 백성들과 자유로이 살아가는 것이 그의 마지막 소원이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버리지 못한 이기적 욕심이 조그맣게 남아 있다. 자신의 업적인 간척지가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전용 쉼터를 마련하기 위해, 예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던 노부부의 오두막을 철거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은 것이다. 하지만 소박한 성품의 노부부는 후한 값을 쳐준다는 제안에도 끝까지 땅을 팔지 않는다. 화가 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토지 협상 문제를 떠넘기고, 악마는 새삼 자신이 악마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용역깡패 불량배를 동원하여 노부부를 죽이고(!), 그들의 시체를 오두막과 함께 태워버린다(!!). 뒤늦게 악마의 소행을 알게 된 파우스트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지만, 그레트헨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자신의 선택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편, 노부부의 시신을 품은 채 타버린 오두막에서는 검은 연기와 함께 네 명의 여인이 홀연히 나타난다. 각각 ‘결핍’, ‘죄악’, ‘고난’, ‘근심’ 이라는 이름을 가진 잿빛의 여인들은 파우스트 영주의 성을 찾아가지만, 실체를 가진 결핍과 죄악, 고난은 닫힌 성문을 통과하지 못해 돌아간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근심만은 열쇠구멍을 스르르 통과하여 파우스트와 대면하고, 저주의 입김을 불어넣어 그의 시력을 앗아간다.
한때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던 악마의 주인은 그렇게 맹인이 된다. 그러나 육체의 눈이 먼 순간 마음의 눈이 뜨인 것일까?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을 좇을 수 없게 된 순간부터,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간척사업에 매진한다. 마침내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파우스트는 비로소 깊은 만족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다. 수많은 백성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준 지금, 그에게는 더 이상 이루고픈 욕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읊조린다. “순간아,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그 순간 그의 몸은 땅으로 쓰러지고, 영혼은 악마의 손아귀에 붙잡힌다.
악마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얻기 위해 지금까지 쏟은 노력을 음미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지옥의 문을 연다. 그의 왼편에서 소름끼치는 불구덩이가 입을 열고, 온갖 모양의 뿔을 단 사탄들이 가련한 영혼을 집어삼키기 위해 모여든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외친다. “양팔을 쭉 펼치고 손톱을 세워, 날개를 퍼덕이며 도망치는 것을 붙잡아라!”
그 순간 하늘에서 밝은 빛이 비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죄를 뉘우치고 희생하는 삶을 산 파우스트를 구원하기 위해 천사들이 내려온 것이다. 천사 무리의 뒤에서는 한때 그레트헨이라 불렸던 참회하는 여인이 새로운 천국의 일원을 환영하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흉악하게 깽알거리는 소리가 다 무엇이냐!” 악마는 부르짖지만, 파우스트의 영혼은 이미 그의 구속을 벗어난 지 오래다. 구원받은 불멸의 영혼은 그렇게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 위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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