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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 충격적일 만큼 무신경한 독백은 문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 하나로 꼽히는 <이방인>의 첫 줄이자 단조로운 삶에 마비되어 모든 것에 무뎌진 인물의 성격을 단 한 번에 보여주는 천재 작가의 천재적인 장치이다. 이 읊조림을 시작으로 1인칭 시점에서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뫼르소는 알제리에 사는 프랑스인이자 해운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사무직원이다. 학창 시절에는 남들만큼 야심만만했던 그였지만,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하던 순간부터는 인생에 어떠한 기대도 걸지 않은 채 적은 봉급과 지루한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 바로 그 적은 봉급 때문에 도저히 부양할 수가 없어 국가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에 맡겨야 했던 어머니의 사망 전보가 날아왔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이 짧은 문장만으로는 어머니가 정확히 언제 돌아가셨는지 알 길이 없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내일이 장례식이고, 유일한 혈육인 그가 직접 상주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갑작스런 휴가 통보에 언짢은 기색이 분명한 사장의 얼굴을 모른 척하며 회사를 나선 뒤, 친구에게 검은 양복과 넥타이를 빌려서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간다.
약 80km를 달려 도착한 양로원은 뫼르소에게 묘하게 불편한 느낌을 자아낸다. 온통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분위기도 그렇고, 그의 경제 사정을 뻔히 알면서 어머니를 부양하지 않은 것을 은근슬쩍 책망하는 원장의 태도도 껄끄럽다. 그는 어쩐지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볼 마음이 들지 않고, 관을 열어 시신을 확인시켜주겠다는 원장과 문지기 노인의 제안을 거절한다. 자신의 의무를 다한 원장은 사무적으로 자리를 떠나지만, 문지기 노인은 모처럼 온 외지인이 반가운지 커피까지 건네며 기다렸다는 듯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던 뫼르소는 입 속에 퍼지는 커피의 맛에 반사적으로 흡연 욕구를 느낀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담배를 피워도 될지 잠깐 고민하지만, 결국은 문지기에게도 한 대를 권한 뒤 함께 피우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시신이 담긴 널빤지 상자보다 그의 관심을 더 잡아끄는 것은 이렇게 소소한 삶의 단편들이다. 달콤한 커피와 담배,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오후의 햇살,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그윽한 꽃내음 같은 것들. 그는 현재를 이루는 다양한 감각들을 느끼며 밤새 장례를 치르고, 다음날 오전에는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과 영구차의 말똥 냄새, 녹아내린 아스팔트의 끈적임 속에서 관을 운구하여 땅 속에 묻는다.
장례식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온 뫼르소는 문득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장이 이틀의 휴가 통보를 그렇게까지 언짢아했던 이유는 그가 얌체같이 주말을 붙여서 나흘을 내리 쉬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이다. 자기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괜히 찝찝한 기분을 느낀 그는 기분 전환 겸 근처 바다에 수영을 하러 가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도착한 항구의 해수욕장에서, 그는 마리와 마주친다.
마리는 한때 그와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여직원이다.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둘은 우연한 재회를 기뻐하며 밝은 햇살 아래 수영과 일광욕을 하고, 날이 저문 뒤에는 함께 영화를 보러 간다. 마리가 고른 코미디 영화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뫼르소는 그녀가 자신에게 다리를 기대고 앉았다는 사실에 설렌다. 상영 시간이 끝나갈 무렵 키스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남녀는 그대로 뫼르소의 집으로 가서 밤을 보낸다. 언제나 우울하게 혼자 보냈던, 이번에는 특히나 더 괴로울 뻔했던 주말은 미소가 아름다운 여인과 그녀가 침대에 남긴 소금기 밴 머리카락의 향기 덕분에 나름대로 괜찮게 지나간다.
그렇게 장례식도 주말도 무난하게 보낸 뫼르소가 다시 단조로운 일상에 익숙해지려는 찰나, 또 다른 인물 하나가 그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자신이 상대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도 모른 채 주인공에게 접근한 장본인은 그의 이웃집에 사는 남자, 레몽 생테스이다. 작고 다부진 체격을 가진 이 사내는 매춘 업소의 포주라는 소문 때문에 동네 주민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 하지만 뫼르소는 소문에 신경을 쓰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가끔씩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이 살가운 이웃과 나름대로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첫 월요일답게 쌓인 업무에 시달리다 퇴근한 뫼르소는 아파트 앞에서 우연히 레몽과 마주치고, 자기 집에서 함께 저녁을 들지 않겠냐는 그의 청에 별 생각 없이 응한다. 두 남자가 마주앉은 단촐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레몽은 헤어진 애인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는 최근까지 한 여자와 만나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경제력이 없었기 때문에 아파트 방세며 생활비를 대신 내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몽은 자신이 빌려준 애인의 방에서 고가의 팔찌를 담보로 돈을 빌렸다는 전당포 영수증을 발견했다. 그녀에게 그런 물건을 살 돈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던 그는 애인을 다그쳤고, 결국 그 동안 바람을 피워 왔다는 고백을 받아냈다.
씩씩대며 사정을 설명한 레몽은 아무리 생각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며, 작은 복수라도 해주지 않으면 끝내 후회가 남을 것 같다고 말한다. 뫼르소는 자신과 관계없는 상대의 이야기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애인에게 배신당하고 화를 내는 그의 심정에만은 공감할 수 있다. 상대방이 호응을 해준다고 느낀 레몽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소소한 보복 계획을 들려주며 뫼르소에게도 도움을 부탁한다. “내 이름으로 그년에게 편지를 써주지 않겠소? 그럴싸한 연애편지를 써서 불러낸 다음 낯짝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데, 짐작했다시피 나는 배운 게 없어서 그런 걸 쓸 줄 모르오. 당신은 꽤 공부를 한 사람 같으니 여자의 마음을 흔드는 편지 같은 것도 쓸 수 있을 것 같소만.” 뫼르소는 레몽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감 반, 자신의 일이 아니니 될 대로 되라는 귀찮음 반으로 그의 요청에 따라 연애편지를 써준다.
그 후로 일주일이 지난다. 뫼르소는 편지 대필 사건을 까맣게 잊었고, 그 사이 꽤 진지한 관계로 발전한 마리와 자신의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파트 복도에서 격렬하게 다투는 소리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 때다. 놀란 두 사람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간다. 그곳에는 이미 주민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고, 레몽이 욕설을 퍼부으며 아랍인인 듯한 여자를 때리고 있다. 곧이어 누군가 부른 경찰이 도착한다. 경찰관은 맞고 있던 여자를 보호하여 돌려보낸 뒤 레몽에게 경찰서 출두를 명령한다.
경찰의 중재로 사태가 겨우 일단락되고, 마리는 충격을 받아 식욕을 잃었다며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곧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혼자 남아 잠을 청하려던 뫼르소는 문득 문가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현관 밖에는 예상대로 레몽이 서 있다. 그는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냐고 물은 뒤, 뫼르소의 침대에 걸터앉아 지친 모습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는 여자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냈고, 계획대로 좋은 시간을 보내려는 척하다가 막판에 얼굴에 침을 뱉고 쫓아내버렸다. 그런데 모욕을 당한 여자가 먼저 따귀를 때리기에 순간 분노가 치밀어서 구타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예상치 못하게 심각해진 사태에 당황하고 있었고, 뫼르소에게 경찰서까지 함께 가서 자신이 먼저 사기를 당했다는 증언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주인공은 경찰과 엮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애초에 그 여자의 배신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사실이니 들은 대로 증언을 해준다.
며칠 후 레몽은 자신을 도와준 데 대한 답례를 겸하여 해변가에 있는 친구 부부의 별장으로 뫼르소와 마리를 초대한다. 주인공은 수영을 좋아하는 연인을 떠올리며 그의 초대를 받아들인다. 시간이 흘러 약속 날짜인 일요일 아침이 다가오고, 뫼르소는 레몽과 마리를 만나 함께 버스를 타고 그들을 초대한 친구의 별장으로 향한다. 사실 그날 주인공은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다. 주말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난 탓에 피로가 가시지 않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한여름의 태양 때문에 머리가 멍하다. 하지만 흰 옷을 입고 머리칼을 늘어뜨린 마리의 모습만큼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해변의 별장에서 그들을 맞이한 레몽의 친구 마송과 그의 아내는 매우 좋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수영을 하고 점심을 즐긴다. 마리와 마송의 부인은 식사 후 잠시 여자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남자들을 밖으로 내보낸다. 뫼르소와 레몽, 마송은 근처의 해변을 산책하러 나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패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레몽은 그 무리 중 한 명이 자신에게 구타당한 여자의 오빠라고 속삭인다. 세 사람은 그들이 레몽을 미행하여 여기까지 왔으며, 곧 시비를 걸어올 것임을 짐작한다. 잠시 팽팽한 긴장이 흐른 뒤, 서로를 노려보던 사내들 사이에 예상했던 싸움이 시작된다. 레몽은 전 애인의 오빠를 맡고, 마송과 뫼르소도 각각 한 명씩을 담당하여 치고 받는다. 싸움에 익숙한 레몽은 가장 먼저 자신의 상대를 때려눕히는 데 성공한다. 맥없이 쓰러진 상대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의기양양하게 친구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승리를 과시한다. 땅에 쓰러졌던 아랍인이 칼을 꺼내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그는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날카로운 단도로 레몽의 팔과 얼굴을 길게 그어버린 뒤 채 동료들을 데리고 황급히 도망친다.
뫼르소와 마송은 레몽을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다행히 상처는 생각보다 깊지 않지만,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본 여자들은 패닉에 빠진다. 뫼르소는 부상당한 레몽을 간호하면서 한편으로는 눈물을 쏟아내는 여자들을 달래줘야 하는 상황에 피로감을 느낀다. 게다가 기분을 풀어주려는 친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레몽은 얼굴보다도 자존심에 입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분노에 휩싸여 길길이 날뛴다. 결국 그는 산책이라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겠다며 별장 밖으로 나가고, 다혈질인 이웃이 극단적인 짓이라도 저지를까봐 걱정이 된 뫼르소는 귀찮아하면서도 그의 뒤를 쫓아간다.
찍어 누르는 듯한 햇빛 아래서 한동안 말없이 걷던 두 사람은 마침내 해변의 끝자락에 위치한 커다란 바위에 이른다. 바위 뒤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과 바다를 향해 흐르는 조그만 샘가가 있고… 아까 레몽을 향해 칼을 휘둘렀던 그 아랍인이 푸른 작업복을 입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햇빛과 침묵, 졸졸 흐르는 물소리만 존재하던 그곳에 순간 긴장감이 감돈다. 레몽은 상대편에게 눈을 떼지 않으며 나직이 말한다. “사실 지금 내 주머니에 권총이 들어 있는데… 저 녀석을 쏴 버릴까?” 뫼르소는 그만두라는 말이 오히려 그를 자극할까 봐 최대한 침착한 말투로 그를 달랜다. 녀석이 먼저 칼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총을 쏜다면 정당방위도 성립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비겁한 놈이 될 거라고. 레몽은 화를 내면서도 그의 이성적인 조언을 받아들이고, 혹시 모르니 총을 넘겨달라는 말에도 순순히 응한다. 레몽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권총은 강렬한 태양빛을 반사하며 뫼르소의 손으로 넘어간다. 상대에게 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아랍인은 그대로 뒤를 돌아 멀리 도망친다.
레몽과 뫼르소는 갔던 길을 돌아 별장으로 향한다. 다행히 레몽은 기분이 좀 가라앉은 듯 보인다. 하지만 어느새 도착한 별장 문 앞에서, 주인공은 컨디션이 최악에 다다른 자신의 상태를 깨닫는다. 몇 시간 동안 남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극도로 피곤한데다 햇빛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이 와중에 수선을 피워댈 여자들을 또 달래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맥이 탁 풀린 것이다. 그는 레몽을 먼저 들여보낸 뒤 혼자서 다시 걷기 시작한다. 무더운 바람과 뜨거운 태양빛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그가 도착한 곳은 아까 레몽과 함께 갔던 바위 뒤 샘가이다. 아슬아슬한 상황도 종료되었고, 싸움의 상대도 가버렸으니, 그곳에서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냇물이 졸졸 흐르는 나무그늘에는 아까 그 아랍인이 다시 돌아와 먼저 자리를 잡고 있다.
피로와 더위에 지친 뫼르소는 거의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냥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등 뒤로 펼쳐진 뜨거운 모래사장을 다시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아랍인이 있는 시원한 그늘가로 한 걸음씩 발을 옮긴다. 그 순간 상대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든다. 칼날에 반사된 햇빛은 번쩍이며 주인공의 눈을 찌른다. 그와 동시에 지금껏 눈썹에 맺혀 있던 땀이 한꺼번에 눈으로 흘러내리면서 두터운 장막처럼 뫼르소의 시야를 차단한다. 그는 단도에서 뻗쳐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을 느끼고, 긴장한 상태에서 권총을 힘껏 움켜쥔다. 다음 순간,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와 같이 짤막하고 요란스러운 총성이 울린다. 뫼르소는 자신이 사람을 쏘았음을 깨닫는다.
작가 인스타그램: @seo_me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