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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메리 Nov 15. 2018

[대신 읽어드립니다] 이방인 (카뮈) (2)

바쁜 당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신개념 독서대행 써-비스




뫼르소는 살인죄로 체포되어 구치소에 수감된다. 처음에 그는 변호사조차 선임하지 않는다. 이 사건에 대해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없고, 법정에서 거짓말을 할 마음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이것도 절차의 일부라며 굳이 국선 변호사를 붙여준다. 그는 재판 과정에 이렇게 자질구레한 것까지 정해져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며 순순히 그 결정에 따른다. 그날부터 이따금씩 변호사와 면담을 하거나 예심 판사의 심문을 받으며 이어지는 수감 생활이 시작된다.


답답한 죄수의 일상에 한 줄기 빛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마리의 존재이다. 그녀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단 한 번만 허락된 면회에 찾아와서 그를 다독이고, 정당방위로 석방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전한다. 자유의 몸이 되면 바로 결혼하자는 말과 함께. 뫼르소는 청혼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차마 마음을 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면담과 심문이 계속될수록 그는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낀다. 무엇보다 국선 변호사가 입수했다며 들려준 법원의 조사 기록은 그를 매우 당황시킨다. 변호사는 법원 측에서 살인범의 평소 행실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원을 파견하여 그의 사생활을 파악했다며, 그 과정에서 그가 어머니를 제대로 부양하지 않아 양로원에서 쓸쓸히 돌아가시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장례를 치르던 당일에도 시신 앞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시시덕거렸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말한다. “듣기 거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재판에서는 분명히 여기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이고, 거기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없다면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갈 거예요.”


뫼르소는 그의 설명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은 아랍인을 살해한 죄로 체포되었는데, 여기서 어머니의 장례 얘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게다가 시시덕거렸다니? 나는 상대가 권하는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딱 한 대 피웠을 뿐인데? 그러나 변호사는 살인사건 자체보다 장례식 날의 상황에 훨씬 관심이 많은 듯, 뫼르소가 볼 때는 본질과 아무 상관도 없을 뿐 아니라 거의 장난처럼 느껴지는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당신은 어머니를 사랑했습니까?”, “장례식에서 슬픈 기분이 들었습니까?” 뫼르소는 자신이 남들만큼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스스로의 감정에 일일이 신경 쓰는 편이기 아니기 때문에 장례식에서 얼만큼 슬펐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솔직히 대답한다. 변호사는 그의 대답에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법정에서는 절대 그런 얘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얼마 후 이어진 예심 판사와의 심문 또한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된다. 판사는 그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형식적인 확인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원한다. 당신은 어머니를 사랑했습니까?(아 쫌;;)” “자신의 죄를 십자가 앞에 회개할 마음이 있습니까?” 뫼르소는 모든 질문에 최대한 성실히 대답한다. 자신은 어머니를 사랑했다. 하지만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딱히 십자가 앞에 회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번에도 그의 대답은 상대방을 매우 언짢게 만든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변호사와 판사가 자신에게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두 법률 전문가는 멍청하고 비협조적인 피고인을 한쪽에 멀뚱히 앉혀놓은 채 자기들끼리만 토론을 진행하며 사건의 성격을 착착 규정해나간다. 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주인공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보 같은 질문을 받거나 상대의 짜증을 받아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나름 편하다고 느낀다. 판사는 이따금씩 심문을 마치고 감방으로 향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야릇한 목소리로 말한다. “잘 가시오, 적그리스도 양반.”


어느새 계절이 한 바퀴를 돌고, 한여름에 체포되었던 뫼르소는 이듬해 첫 더위가 찾아올 무렵 정식 재판을 받게 된다. 호송 마차로 재판소까지 이송된 그는 방청석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의 당황한 기색을 눈치 챈 간수는 이 사건이 신문에 꽤 크게 보도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고 설명해준다. 살면서 주목을 받아본 적이라곤 없는 주인공은 자신이 이 난리법석의 원인이라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하다. 하지만 그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법관복을 입은 판사가 입장하고, 곧바로 아랍인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다.


절차에 따라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기소장 낭독과 관계자들의 선서, 사실 확인을 위한 각종 질문들은 그렇지 않아도 얼떨떨하던 뫼르소의 혼을 쏙 빼놓는다. 그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것은 재판장의 입에서 증인이라는 말과 함께 마리와 레몽를 비롯한 낯익은 이름들이 호명되었을 때이다. 판사는 ‘겉으로는 이 사건과 큰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심의하기 위해서 증인들을 호출했다고 말하며, 검사에게 그들을 심문할 권한을 준다. 뫼르소가 검사의 모습을 제대로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다. 붉은 법관복에 코안경을 쓴 그 호리호리한 남자는 억센 목소리와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증인을 한 명씩 불러내어 (뫼르소가 봤을 때) 지극히 편협한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그는 증인석에 선 마리에게 피고와의 관계를 물어 연인 사이라는 답변을 받아낸 뒤, 두 사람이 만나기 시작한 날이 언제였는지 대답하라고 요구한다. 마리는 뫼르소와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만나 영화를 보러간 날의 날짜를 말한다. 검사는 그날이 바로 피고인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날이었다고 지적하며, 마리에게 그날 함께 본 영화의 제목이 무엇인지, 성관계가 있었는지 여부를 캐묻는다. 그녀는 그 부분이 개인의 사생활이며 밝히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하지만, 결국에는 검사의 강압에 못 이겨 모든 사실을 구체적으로 털어놓는다. 원하는 진술을 확보한 검사는 판사와 배심원들을 돌아보며 피고가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날 태연하게 여자와 수영을 하고, 코미디 영화를 보고, 부정한 육체관계를 맺은 냉혈한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마리는 자신의 대답이 사랑하는 사람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생각에 울음을 터뜨린다.


뒤이어 불려 나온 레몽은 뫼르소와 죽은 아랍인 사이에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었으며, 두 사람이 사건 장소에서 마주친 것이나 하필 그때 주인공이 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검사는 살인의 동기가 단순한 우연이었다는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며 반박한 뒤, 그런 식이라면 레몽이 피해자의 여동생에게 보낼 편지를 대필해준 사건이나 그녀가 구타당하던 자리에 있었던 것도 모두 우연이냐고 따진다. (진짜 우연인데...) 그는 레몽의 증언을 기각한 뒤, 오히려 매춘 업소의 포주라는 그의 평판을 끄집어내며 피고인이 평소에 불량한 인간과 어울리고 다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양로원의 문지기 노인은 뫼르소가 장례식장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 것은 사실이지만, 커피를 권한 것은 자신이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하지만 검사는 ‘고인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은 무엇을 마셔도 상관없지만, 그 아들이라면 마땅히 상대의 권유를 거절했어야 했다’는 논리로 피고인이 얼마나 비정한 아들이었는지 강조한다.


뫼르소는 자신을 괴물처럼 대하는 검사의 태도에 울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당사자 입장에서 뭐라도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입을 열지만, 그때마다 변호사는 손을 들어 그의 행동을 제지한다. “가만히 계세요. 그래야 모든 게 잘 됩니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변명할 틈조차 주지 않는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점점 낯설고 외로운 기분을 느낀다. 이 재판은 그를 냉혹한 살인마인 동시에 끼어들 자격이 없는 이방인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검사는 원하는 방향으로 잘 오려붙인 증인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이번 사건이 사이코패스 범죄자치밀한 계획살인라고 결론 내린다. “피고인은 품행이 좋지 못한 사내와 결탁하여 한 여인을 구타하였고, 그 가련한 여자의 오빠이자 이 사건의 피해자가 항의를 하러 찾아오자 먼저 시비를 걸어 폭력 사태를 일으켰습니다. 그 이후에는 피해자를 살해할 생각으로 레몽에게 권총을 받아 사건 장소로 되돌아갔으며, 계획적이고 고의적으로 한 사람을 쏘아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윤리적으로 살해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의 냉정함과 잔인함을 고려했을 때, 이번 사건은 언젠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았을 예정된 비극입니다.”


변호사는 검사의 주장에 반대 의견을 펼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변론 능력은 상대에 비해 한참 모자라 보인다. 뫼르소는 우연의 장난에 이끌려 여기까지 끌려온 자신의 운명이 또 다시 검사와 변호사의 실력 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지켜본다. 그 때 재판장이 갑자기 그의 이름을 부르더니 피고로서 마지막 의견을 말하라고 한다. 마음의 준비는커녕 자신에게 발언권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던 그는 느닷없는 요구에 당황하여 두서없이 말을 꺼낸다. “어… 제가 사람을 죽인 것은 결코 고의가 아니었고…” 하지만 판사는 그의 대답을 끊으며, 고의니 뭐니 하는 의견 말고 살인을 저지르게 된 구체적 동기를 말하라고 요구한다. 뫼르소는 자신이 바보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른 유일한 진실을 우물우물 털어놓는다. 그것은태양 때문이었습니다.”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오고, 그의 최후 변론 기회는 그렇게 종료된다.


마침내 모든 재판 절차가 끝나고 선고를 기다리는 시간이 왔다. 변호사는 (무슨 자신감에선지)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확신하며, 혹시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항소의 기회가 있으니 걱정 말라고 그를 안심시킨다. 두 사람은 1시간 가까운 기다림 끝에 다시 재판장으로 불려 들어간다. 뫼르소는 마리가 방청석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찾아보지는 못한다. 판사의 입에서 피고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될 것이라는 이상스런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한 순간에 사형수 신분이 된다. 피고인으로서 심문을 받던 구치소에서 사형수들이 머무는 감방으로 이송된 그는 형무소 소속 신부의 면회 신청도 연거푸 거절한 채 멍하니 생각에 빠져 지낸다. 처음에는 현실을 최대한 부정하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온갖 가능성들을 떠올린다. 지금껏 사형 집행이 취소된 사례가 있었을까? 어쩌면 탈옥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처형장으로 향하는 도중에 경찰의 눈을 피해 사라지는 거야! 이런 생각에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후에는 자신에게 사형을 언도한 재판 절차의 모순을 파헤치는 데 몰두한다. 판결을 내리는 자들은 무슨 권리로 같은 인간에게 죽음을 명령한단 말인가? ‘프랑스 국민이라는 모호한 개념에는 또 무슨 힘이 있길래 그들의 이름으로 내 목을 자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가 어떤 대단한 모순을 찾아낸다 한들, 한 번 확정된 판결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효력을 지니고 있다. 어느 정도의 현실 도피 기간이 지나자, 뫼르소는 언제나 먼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존재하던 죽음이 갑자기 확정된 사실로 돌변하여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커피를 마시고, 마리를 만나 수영을 하고, 레몽과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고… 이 모든 우연이 한데 모여 공개 처형이라는 무시무시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시작된다. 사형 집행인들이 새벽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매일 밤 자정부터 동이 틀 때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며 복도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헐떡이는 개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작은 바스락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다보면 어느새 아침이 찾아오고, 그는 다시 24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선잠에 빠진다.


물론 그에게는 항소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실제로 처형 집행에 대한 두려움이 덜한 낮 시간 동안 뫼르소는 대부분 항소 생각을 하면서 보낸다. 하지만 일단 사형을 선고받은 죄수로서, 그는 언제나 최악의 가능성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항소가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받아들여진다 해도 다시 같은 형이 나올 확률이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무죄로 석방될지도 모른다는 짜릿하면서도 부질없는 상상을 하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항소가 기각될지도 모른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불안감이 찾아온다. 그는 모든 인간이 언젠가 죽는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먼저 죽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예순 살에 죽든 서른 살에 죽든 무슨 대단한 차이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자신에게 수십 년의 생이 더 주어졌을 때 할 수 있을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오르고, 또 다시 삶을 향한 끝없는 갈망이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면회를 네 번이나 거절했던 신부가 그를 불쑥 찾아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다. 불청객의 신분을 확인한 뫼르소는 그가 사형 집행 전 마지막 기도를 하러 왔다는 예감을 느끼고 공포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파랗게 질린 그의 안색을 눈치 챈 신부는 그에게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오늘은 그저 친구로서 방문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감방의 침상 위에 걸터앉더니 어째서 지금껏 자신의 면회를 거절했냐고 묻는다. 뫼르소는 하느님을 믿지 않기에 그랬다고 대답한다. 신부는 사람들의 확신은 때로 틀린 경우가 있다며, 지금 당신이 신을 거부하는 것은 단지 절망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제껏 사형을 선고받았던 이들 중에서 끝까지 하느님을 외면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뫼르소는 다른 사형수들이 어떤 선택을 했던 그것은 그들 사정이고, 자신은 신에게 관심이 없으며 도움을 받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고 답한다.


신부는 그의 무신경한 대꾸에 약간 가 난 듯하지만, 죄 많은 어린양을 인도하기 위해 감정을 꾹 억누른다. 그는 자신이 뫼르소를 불쌍히 여기고 있으며, 찰나에 불과한 지상에서의 삶보다 죽은 이후에 영생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뫼르소가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이런 무의미한 실랑이에 낭비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는 제발 자신을 내버려두라고 부탁하지만, 신부는 그의 절박한 간청에도 끝까지 눈치 없이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설파한다. “당신들 중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도 감방의 차가운 돌벽에서 성스러운 얼굴을 발견하곤 합니다. 나의 아들이여, 오직 그 얼굴만이 당신의 구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애로운 말투로 내뱉은 신부의 이 발언은 예기치 않게 뫼르소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를 건드린다. 신부의 말마따나 그는 지금까지 감방의 차가운 돌벽에서 자신의 구원이 되어줄 얼굴을 찾아 해맸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얼굴이 아니라 태양의 빛을 지닌 인간의 얼굴, 바로 마리의 얼굴이었다. 현실에서 단 하루라도 자유롭게 살기를 갈망하는 자신에게 성스러운 존재 운운하며 천국을 위해 기도하라고 종용하는 인간들을 그는 알고 있다. 그들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죄로, 십자가 앞에 회개하지 않았다는 죄로 자신에게 목이 잘리는 형벌을 내렸다. 그런데 이 신부라는 작자는 얼마 남지 않은 사형수의 시간마저 끝내 빼앗으며 자신에게 죽음을 명령한 이들과 똑같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극도로 흥분한 뫼르소는 신부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지금껏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격한 감정을 표출한다.

 “당신은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모양이군!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신념이란 것은 대체 뭐지? 현실을 외면하고 천국에나 집착하는 당신의 삶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 그 따위 믿음은 내게 살아 있는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가치도 없다고! 당신 눈에는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죽음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이 부조리한 생애에서는 결국 누구나 사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나와 결혼하고 싶어 했던 마리도, 여자를 때린 레몽도, 그 레몽보다 성품이 좀 더 나은 다른 이들도 죽음 앞에서 가치를 따지면 결국 다를 것이 없어! 당신 또한 마찬가지잖아! 이 사형수야!


그의 격렬한 외침은 간수들이 달려와 그와 신부를 떼어놓을 때까지 계속된다. 신부는 슬픔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뒤를 돌아 나가버린다. 마침내 혼자 남은 뫼르소는 극심한 피로를 느끼며 침상에 쓰러져 잠에 빠진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것은 깊은 새벽이다. 창밖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별빛이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잠든 여름의 기묘한 평화를 느끼던 그는 문득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천국의 존재를 알려주기 위해 찾아온 신부가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확실히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운명은 인간에게 무관심하다. 운명의 본질조차 모르는 어리석은 검사는 비논리적이라고 우겼지만, 세상에는 우연이라는 지극히 부조리한 이유 때문에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우리는 누구나 사형수의 신분으로 태어나며, 아무리 착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해봤자 우연의 손짓 한 번이면 허무하게 죽어 없어진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는 이 삶의 부조리를 모른 척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고, 그 부조리한 생을 연장하기 위해 권력에 굴복하거나 거짓에 복종하는 것은 더더욱 바보 같은 짓이다.


모두가 외면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삶의 비밀을 받아들인 순간, 뫼르소는 두려움의 굴레에서 해방된다. 이제 그는 자신에게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권리와 십자가 앞에 회개하지 않을 권리가 있었음을 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만큼일지는 모르지만,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살다가 당당하게 끝을 맞이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은 눈앞에 있는 진리조차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향한 그의 반항이다. 이 모든 것의 완성을 위해 그가 바라는 마지막 소원은, 처형 집행일에 최대한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증오의 함성으로 그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뿐이다.



작가 인스타그램: @seo_m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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