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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메리 Oct 04. 2019

넷만 있다면 죽여주게 즐거워

<나와 작은 아씨들> 출간 전 연재



“머리는 태워먹고 낡은 드레스에 장갑은 한 짝씩 나눠 꼈지만, 바보 같이 꽉 끼는 구두를 신었다가 발목을 삐었지만, 어떤 숙녀들도 우리만큼 즐겁진 않았을 거야.”


“I don't believe fine young ladies enjoy themselves a bit more than we do, in spite of our burned hair, old gowns, one glove apiece and tight slippers that sprain our ankles when we are silly enough to wear them.”


-『작은 아씨들』 중에서





조는 어린 시절 에이미를 석탄 통에 떨어뜨렸다. 에이미는 자신을 극장에 데려가지 않은 앙갚음으로 조가 몇 년 동안 써 모은 원고를 태워버렸다. 조는 호수의 얼음이 녹아서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에이미가 스케이트 타는 것을 말리지 않아 큰 사고를 냈다. 에이미는 의도치 않았지만 조의 평생소원이었던 유학 기회를 가로챘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네 자매 중에서도 유달리 다른 두 사람.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소녀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 조예쁘고 우아한 것을 좋아하고 어릴 때부터 숙녀가 되길 염원했던 에이미. 톰과 제리 같은 두 사람은 정말 뻔질나게 부딪친다. 메사추세츠 교외의 한적한 마을에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살아가는 마치 가족이지만, 털털한 둘째 딸과 새침한 넷째 딸이 한 자리에 모이면 어김없이 옥신각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집이 너무 엉망진창이야!” 덤벙대다가 잉크병을 엎지른 조가 제풀에 짜증을 내면 에이미가 낼름 끼어들어 화를 돋운다. “근데 거기에 제일 일조하는 사람이 언니거든?” 그렇다고 해서 이 금발머리의 도도한 막내가 혼자서 얄미운 역할을 독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철자법에 약한 동생이 단어 실수를 할 때마다 귀신같이 잡아내서 상대가 폭발할 때까지 놀려대는 것은 오직 조만이 하는 짓이니까.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서로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펭귄 클래식 버전으로 약 800 페이지에 달하는 『작은 아씨들』 속에서 조와 에이미가 서로에게 드러내놓고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은 거의 없지만, 이 둘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어째서일까?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조와 에이미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 자매이기 때문이다.


동생들에게 충고를 할 때에도 결코 다정한 태도를 잃지 않는 메그와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 평화주의자 베스는 보는 이의 입가에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사랑스러운 소녀들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언니나 여동생과 한 지붕 아래 살아본 사람이라면, 실제로 자매 사이에 이런 관계가 거의 성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마음 같아선 ‘절대 성립할 수 없다’고 하고 싶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할 수 있으니까).


자매란 모름지기 다투고, 울고, 서로의 존재를 징글징글하게 여기며 자라기 마련이다. 학창시절, 친구들끼리 만난 자리에서 언니나 여동생의 험담이 화제에 오르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언니들은 왜 그렇게 동생 옷을 훔쳐 입고 외출을 하는지. 동생들은 왜 또 그렇게 언니 물건을 몰래 갖다 쓰는지. 하지만 신나게 험담을 하다가도, 친구들이 공감해준답시고 “그러게, 너희 언니(동생) 진짜 이상하다.”라는 맞장구를 쳐주면 우리는 문득 잊고 있었던 그녀의 좋은 점을 떠올리곤 했다. 자매에 대한 뒷담화가 대개 “근데 우리 언니(동생)도 착하긴 착해…” 라는 모질지 못한 결론으로 이어진 것은,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표현 이면에 상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말랑말랑한 본심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매는 본질적으로 다른 듯 닮은 존재이다. 남매와 달리 성별이 같다는 점 또한 언니와 여동생을 특별한 관계로 이어준다.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서로에게 자극을 준다. 우리가 그렇게 아옹다옹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것은, 어쩌면 상대방에게서 지우고 싶은 내 모습가지고 싶은 내 모습을 동시에 발견하는 탓일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생이 지닌 짙은 쌍꺼풀과 가느다란 손가락, 부드러운 머리칼을 동경했다. 다른 많은 곳이 닮았는데도, 그 몇 가지 차이는 동생을 나보다 훨씬 더 서구적인 미인형 외모로 만들어주었다. 성격 면에서도 내 눈에 비친 동생은 언제나 쿨하고 당당한 소녀였고, 낯선 인간관계 앞에서 움츠러드는 소심한 나와 달리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모두에게 사랑받는 행운아였다.


내가 동생에게 이런 부러움을 처음으로 표현한 것은 우리 둘 다 성인이 되어 함께 맥주잔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을 때였다. 생맥주 두 잔에 취해 주절주절 늘어놓는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동생은 비슷하게 취기가 오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신은 항상 내 큰 키를 부러워했고, 책을 좋아하는 취미나 조직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 나가는 모습을 동경해왔다고.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어느 새 서른을 넘긴 나와 곧 서른이 되는 동생은 이제  어린 시절만큼 다투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셀 수 없는 싸움을 통해 서로의 성향을 파악했고, 사는 곳이 달라지면서 자주 볼 수 없다는 애틋함을 품게 되었으며, 냉혹한 사회생활을 겪으며 얼마 없는 ‘내 편’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끼고 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메그와 베스보다는 조와 에이미에 더 가까운 자매이다. 핑크색 소품과 치렁치렁한 레이스를 좋아하는 동생의 취향은 백번을 봐도 이해가 안 된다. 동생은 동생대로 정체불명의 시커먼 기름때가 묻은 운동화를 아무렇지 않게 신고 다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언니 서울에서 글 쓴다더니, 사실은 주유소에서 일하는 거 아냐?”). 하지만 조와 에이미가 그러하듯이,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서로를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여행을 다녀오면서 핑크색 벚꽃 문양이 찍힌 냉장고 자석을 사 왔다. 내 눈에는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물건을 발견한 순간 내 지갑은 망설이지 않고 열렸다. 바로 그 색과 바로 그 무늬가 내 동생을 웃게 하리라는 사실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2019년 10월 16일부터 전국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나와 작은 아씨들> 단행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작가 인스타그램: @seo_merry

작가 유튜브: 서메리Merry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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