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주말 새벽 6시.
엄마는 늘 자고 있는 나를 깨워 목욕탕에 데려가셨다.
어린 나이에 가기 싫다고 칭얼거리면 초코우유를 사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날 유혹했고 언제나 그 유혹에 넘어갔다. 갓 떠오른 해가 어둠에 덮힌 세상을 완전히 밝히지 못해 검푸른 빛이 감도는 새벽 거리.
한 손에는 목욕 바구니를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 엄마 손을 잡은 채 목욕탕으로 향했다.
" 어른 하나 아이 하나요 "
엄마가 입구에서 표를 끊는 동안 잡고 있던 엄마 손을 뿌리치고 혼자 여탕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여탕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카운터.
그곳에서는 때수건, 일회용 린스와 샴푸, 맥반석 계란 심지어 여성 옷도 팔고 있었다. 다양한 물건들 가운데 락커룸 키가 모여있는 바구니가 있었다. 엄마 손을 뿌리치고 먼저 뛰어들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엄마랑 나란히 락커룸을 쓰기 위해 연속된 번호를 열심히 찾았다. 뒤이어 엄마가 들어오면 미리 찾은 번호에 맞는 락커룸으로 가서 "엄마 여기야. 여기! " 하고 소리쳤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탕 안으로 들어갈 준비가 끝나고 나면 엄마는 약속한 대로 내게 초코우유를 사주셨다. 엄마는 박카스 나는 초코우유를 마시며 우리는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목욕을 하곤 했다.
성인이 되고 함께 목욕탕을 가는 지금도 엄마는 내게 초코우유를 사주신다.
이제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목욕탕만 가면 꼭 먹게 되는 초코우유.
어쩌면 초코우유를 통해 엄마와의 지나온 어린 시절을 붙잡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성인이 되고부터 뜨끈한 물로 가득 찬 탕 안에 함께 들어가 있는 동안에 우리는 모녀가 아닌 그냥 같은 여자였다. 한 번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가 몇 살에 시집왔다고 했지?"
"그때가 스물일곱 살 때였지"
"지금 내 나이에 시집을 온 거네.. 안 힘들었어?"
"힘들었지. 그때는 네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살았잖아. 시집살이가 말도 못 했어."
"결혼하고 그렇게 힘들면 어떻게 해..?"
"참고 살아야지. 그때는 다 참고 살았어. 정말 우리 엄마 생각하면서 참고 살았다."
"외할머니?"
"응. 네 외할머니가 엄마 시집보내고 항상 대문 앞에 나와계셨대. 성깔 있는 셋째 딸 못 살겠다며 짐 싸들고 돌아올까 봐. " 당시를 회상하듯 엄마는 잠시 멈추었다 다시 말씀하셨다.
"그 얘기 듣고 몇 번을 짐을 쌌다가도 우리 엄마 생각에 울면서 짐 풀고 그렇게 꾹 참고 살았어.
그렇게 살다 보니 지금까지 살고 있네. "
외할머니 얘기를 하는 엄마의 눈이 어느새 촉촉해졌다.
엄마의 모습이 마치 미래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언제 제일 보고 싶어?"
"우리 엄마? 항상 보고 싶지. 항상."
엄마에게서 듣는 "우리 엄마"라는 단어.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고 그 엄마에게 엄마는 너무 소중하고 귀한 딸이었다.
어쩌면 나처럼 엄마의 손을 잡고 쫄래쫄래 목욕탕을 따라왔을 어린 소녀.
언젠가 엄마가 아닌 딸의 손을 잡고 목욕탕에 오는 날이 오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을 것 같다.
만약 내 딸이 할머니가 언제 제일 보고 싶냐고 물으면 지금이라고 답할 것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엄마.
볼 수 없게 되면 더 보고싶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