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찜찜함도 배워야 할 감정
얼굴에 자꾸만 번지는 하얀점. 백반증이 의심되어 지난 주 동네 병원에서 진료 받았다. 겉보기엔 하얀 점이 도드라지지만, 우드등 검사를 하명 형광색이 안 보여서 애매하단다. 하지만 백반증이라면 1~3년은 레이저 치료를 주2회 해야하고, 그마저도 회복율이 70%(어느 정도의 흔적은 남을 수 있음)라 해서 마음이 착잡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주2회마다 병원 이동, 주차, 대기, 치료라는 긴 시간의 소요는 8살 아이를 저녁에 혼자 돌보는 내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더 슬픈 건 예린이의 일이었다면 내가 정말 어떤 일정이든 포기해서라도, 반드시 주2회(5회도 가능)를 모두 채워서 고쳐 놓을텐데, 정작 내 자신을 위해서는 그만큼의 열정(?)이 치솟지 않는다. 슬프다. 자식을 위한 사랑은 이렇게도 맹목적인 것이고, 어린 자식을 품을 부모에게는 내 자신이란 언제든 내려놓는 첫 번째 카드이다. (나는…)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투명하게 보이는 내 속내는 그렇다.
더 정확한 진단을 해줄 의사를 찾다가 대도시에 백반증으로 유명한 병원을 어렵게 예약하여 오늘 다녀왔다. 단박에 진단해줄 명의라 철썩 같이 믿고 갔는데, 그분의 진단도 백반증이라기엔 형광색이 안 보이고, 겉보기엔 백반증이 의심된다는 애매모호한 답변이었다. 만약 백반증이라면 1~2달 경과하면 더 분명해질테니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래. 찜찜하지만 이게 정답이다. 그저 가슴 시원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확실한 답을 원했던 내가 미련하다.(뭐든 명확한 걸 선호하는 성격)
애매모호한 대답이라도 백반증이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 것에 그저 감사감사 했어야 할 일 아닌가. 이 찜찜함이 진짜 감사해야 할 감정이라는 게 신기하다. 그리고 또 내가 성장했단 생각이 든다.
아직은 백반증이 아니어서 감사합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부모의 맹목적 사랑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 사랑을 발끝만이라도 느끼게 되어 또 감사합니다.
# 승패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아버님이 뿌리 깊은 바둑 매니아셔서 딸 호두(가명)가 할아버지 아직 정정하실 때 함께 교감하며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바둑 학원을 등록했다. 가족들이 모두 성격이 강한데, 호두는 유순하니 아버님이 호두와 대화하는 걸 마음 편안해 하시고, 손주 사랑이 지극하시다. 그래서인지 호두도 할아버지를 매우 좋아한다. 바둑까지 공유하면 서로를 더 이해하고 얼마나 신이 날까. 어미 입장에서는 아이가 자기 편이라 생각하는 어른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다.
오늘 첫 날이었는데, 호두가 재밌어 한다. 평소 체스를 즐겨 하는 아이의 성향을 알기에 놀랍지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의 오랜 고민으로 시작한 학원인데, 마음에 들어 다행이다.
예전에 미생 드라마를 보았을 때 복기라는 바둑 용어를 알게 됐다. 바둑의 복기 문화(그동안 둔 수를 되돌아 보며 고칠 점을 찾아가는)는 얼마나 삶의 방식에 유용한 것인가. 호두도 삶에서 되돌리고 싶은 지점을 많이 겪게 되겠지. 그럴 때마다 복기라는 방법을 쓰면 실수를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수많은 선택지 앞에 선다. 한정적인 아이의 시간 자원을 어떤 배움으로 채워나갈 것인지는 꽤 중요한 문제이다. 선택에 있어서 부모의 지혜와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
바둑을 두는 마음으로 한 수, 한 수 고민하고 선택하며, 때론 실패로 다음 수를 고치고, 성공으로 또 그 다음 수를 발전시키며 호두라는 이 바둑판을 정교한 수로 채워주고 싶다.
아이의 인생은 성공과 실패로 판가름나는 승부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믿는다. 성공이나 실패가 아닌 예술작품을 만들기까지의 가족간의 고민과 노력, 부모의 정성, 아이의 고군분투…. 모든 것의 총합이 만들어 낸 예술작품을 통해 아이와 연관된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닐까. 난 내 아이가 선한 영향력을 주는 예술품이었으면 좋겠고, 그런 삶을 통해 아이가 상호작용 속에서 충분히 행복했으면 싶다.
이 여름, 바깥보다 뜨거운 아이들의 바둑 승부를 슬쩍 엿보며 아이의 이번 여름이 무척 뜨겁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항상 응원하고 기도하고 사랑해, 우리 호두. 그리고 너라는 우주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이 삶은 참 축복받았다 생각해.
# 그 녀석들의 탑골 공원
우리 동네에는 공공 실내놀이터가 있다. 시원하고 아이들을 지켜보는 안전 돌봄이도 있어서 내가 매우 선호하는 장소이다.
우스개소리로 “여긴 아이들의 탑골공원(?)이야!”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한다. 이유인즉슨, 실내놀이터는 90분 간격, 인원은 30명 제한으로 하루 중 1회만 이용 가능한데, 어느 타임에 누가 들어올지는 알 수 없다. 누가 들어올지 모른다는 건 누구와도 친해져야하는 생존 기술을 탑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얼마나 심장이 쫄깃거리는 일인가. 어른들이라면 죽어도 안 갈 거 같은데,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그저 천국이니 불편해도 가보는 것이다.
아쉽게도 호두는 그런 기술이 탑재되어 있지 않다. 낯을 많이 가리고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걸 꺼려 한다. 그래서 더욱 이런 기회들에 노출되어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문제를 풀어봐야 유형에 익숙해져 문제 풀이법 자체를 체화시키니까. 삶이 그렇지 않은가. 우린 자주 모르는 타인들 속에 들어가고, 그 안에서 억지로라도 짧게든 길게든 버텨야 한다. (생각해보면 어른들도 꼭 실내놀이터가 아니라 해도 이런 상황에 자주 봉착하는 것 같다.)
대신 항상 도망갈 뒷문을 열어둔다.
“호두야, 들어가봐. 일단 친해지려 도전이나 해보자. 안되면 나와. 엄마랑 집에 가자.”
호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간다.
승률은 50. 어떤 날은 5분도 안되어 나오고, 어떤 날은 끝났는데도 아쉬워하며 나온다.
오늘은 친구 사귀기 성공이었나보다. 들어가기 전까지는 싫은 표정이더니 나올 때는 “엄마, 나 너무 재밌었어.”라며 나온다.
아이에게도 친한 동네 친구들이 여럿 있다. 일부러 그 아이들과 약속을 맞추어 가지 않는 이유는 새로운 친구를 자꾸만 사귀는 상황을 겪었으면 해서이다. 사람은 완벽한 것이 아니니 아이가 가급적 정서적 관계를 한 곳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사람과 나누어서 가졌으면 좋겠어서.
오늘은 기분이 좋으나 실패하는 날은 아이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으며 돌아와야 한다. 그래도 안타를 연습하는 야구선수의 마음으로 또 실내놀이터에 가본다. 지금은 반반의 승률 같아 보이는 녀석의 대인관계 능력이 개미만큼이라도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실패해도 엄마라는 탈출구가 있으니 언제든 도망가는 법이 있다는 것도 배우며.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흐르겠지. 내가 삶의 기술을 아이에게 전수해줄 날은 얼마나 남았을까?(사춘기가 되면 내 말에 점점 귀를 막을 거 같다.) 아이가 엄마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내 차가 녀석의 발이 되는 이 시간 동안 나는 열심히 삶의 치트키를 전수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