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밑반찬이 싫었던 이유

냉장고 속 그리움

by 혜윰

이 글은 내가 왜 냉장고 속 밑반찬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엄마와의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음식이 기억이 되고, 기억이 감정이 되는 과정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보내지 말라니까 왜 자꾸 보내는 거야? 나 진짜 안 먹는다니까!”
“반찬 해 먹기 힘들잖아. 엄마가 이거라도 보내야 마음이 편해서 그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는 늘 애틋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어릴 적 마음이 여렸던 아빠는 보증을 자주 섰고, 집안 형편은 점점 기울어졌다.
결국 엄마는 아빠와 갈라섰고, 나와 동생은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그날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돈 많이 벌면 데리러 올게. 그때까지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

엄마는 멸치볶음, 진미채무침, 콩자반, 장조림 같은 밑반찬을 잔뜩 만들어 냉장고에 채워두고 떠났다.
그리고 반찬이 떨어질 즈음 다시 와서 또 채워 넣고는 돌아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냉장고 문을 열지 않았다.
냉장고 안에 갇힌 밑반찬들이, 엄마를 기한 없이 기다리는 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을 여는 대신 라면을 끓여 먹으며 엄마가 채워주지 못한 허기를 삼켰다.

엄마가 돌아올 때면 반찬들은 상해서 버려지기 일쑤였다.
엄마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올 때마다 또 채워 넣었다.
나는 그 모든 걸 외면했다.

몇 달이 지나 엄마 옷자락을 붙잡고 말했다.
“엄마, 나 따라가면 안 돼? 말썽 안 피우고 공부 열심히 할게.”
엄마는 나를 보지 못한 채 말했다.
“…나중에.”

그 말 하나로 나는 몇 년을 버텼다.
동생과 함께 마을 기차역 앞에서,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엄마를 기다렸다.
기대는 점점 커졌고, 실망도 함께 커졌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엄마는 더 이상 반찬을 만들러 오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우리보다 바로 만든 반찬을 먹이며 신경 써야 할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걸.

그 뒤로 나는 엄마를 기다리지 않았다.
생각하지도 않았다.
감정도 모두 털어냈다고 믿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했고, 나에게도 가족이 생겼다.
엄마 없이 오래 살다 보니 웬만한 음식은 뚝딱 만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냉장고에 들어갔던 음식을 가족에게 먹이지 않았다.
힘들어도 삼시세끼 바로 만들어 먹였다.

가족에게 나처럼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가끔 말했다.
“자기야, 힘들면 냉장고 반찬 먹어도 돼.”
“아니. 나는 그렇게 주기도, 먹기도 싫어.”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밑반찬이 무엇을 떠오르게 하는지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 5년쯤 지났을 때, 십 년 넘게 연락 없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혼자가 된 것 같았다.

얼마 뒤 택배가 도착했다.
엄마가 만든 밑반찬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알았다.
나는 아직도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나 밑반찬 안 먹어. 보내지 마.”
“부담 갖지 말고 먹어. 반찬 떨어지면 또 보내줄게.”

며칠 뒤, 엄마는 직접 찾아왔다.
양손 가득 반찬을 들고.

“엄마, 내가 그랬잖아. 안 먹는다고.”
꾹 눌러왔던 말들이 터져 나왔다.

그날 밤, 처음으로 엄마와 술을 마셨다.
나는 몇십 년 만에 털어놓았다.
냉장고 속 반찬을 볼 때마다 엄마를 기다리는 나 같아서 손대기 싫었다는 걸.

엄마는 한참을 듣다가 말했다.
“미안해.”

다음 날 아침, 주방에서 엄마가 움직이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미역국, 봄동겉절이, 조기구이가 놓여 있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미역국을 한 술 떠먹었다.
그제야 처음으로,
어린 시절의 나를 제대로 위로할 수 있었다.

나는 일상의 사소한 음식과 장면을 통해
가족과 감정을 기록하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