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니카 Jan 04. 2022

최소 4만 원짜리 푸른색 에펠탑 사진

1월 2일(현지시각) 쌀이 똑 떨어져서 파리 15구에 위치한 한인 마트에 갔다. 온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오후 5시쯤 집을 나섰다. 파리 15구와 16구를 잊는 그흐넬 다리(Pont de Grenelle)를 한참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엄마! 에펠탑이 파란색이야!"라고 외쳤다. 설마 파란색일까 싶어서 고개를 돌려 에펠탑을 보니 정말로 파란색이었다. 한인 마트에서 쌀 10kg, 고추장, 간장, 미역, 떡국떡 등을 담았다. 오늘처럼 쌀이 갑자기 떨어질 날을 대비해서 미리 이것저것 구매하니 총 97유로가 나왔다. 지갑을 탈탈 털으니 98유로. 아슬아슬하게 구매 했다. 


집으로 바로 가려다가, 푸른빛 에펠탑을 놓칠 수 없지란 생각에 핸들을 꺾어 트로카데로(Trocadéro)로 향했다. 에펠탑을 가장 예쁘게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 파리 16구에 위치한 트로카데로. 저녁 6시, 이미 해는 떨어져서 사방이 어둑어둑했다. 트로카데로 광장에는 파란 에펠탑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모형 에펠탑과 장난감, 열쇠고리 등을 바닥에 펼쳐놓고 팔고 있는 상인들로 가득했다. 


(좌) 트로카데로에 각종 기념품을 팔고 있는 상인들과 에펠탑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우) 수많은 자물쇠가 걸려있는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푸른빛 에펠탑


1월 1일부터 일주일 동안 에펠탑은 푸른색을 띨 예정이다. 에펠탑 정면 아래에는 12개의 큰 별이 원을 그리며 강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이는 올해 1월 1일부터 6개월간 프랑스가 유럽연합 의장직을 맡게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에펠탑, 개선문, 앵발리드 등 파리 각 주요 건축물이 푸르게 변한 것이다.  


유럽기는 청색 바탕에 12개 황금색 별이 원으로 수놓아진 깃발이다. 청색 바탕은 유럽 대륙과 하늘을, 12개 별은 유럽 시민의 단결과 연대감 및 조화를 상징한다. 별은 왜 12개일까? 회원국 수인가 싶었는데 회원국 수와는 관계가 없다. 2021년 1월 1일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했고,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은 총 27개국이다.  

2008년 사르코지 대통령 당시, 프랑스가 의장직을 맡은 이후로 13년 만에 돌아온 기회이다. 프랑스도 한국과 대선 시계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올해 4월에 있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마크롱 대통령에게 이번 의장직은 기회라는 의견이 다수다. 반면, 선거운동에 도움 되기에 대선을 앞두고 유리한 기회를 잡은 마크롱에 대한 비판론도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9일, 유럽연합 의장직을 앞두고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완전한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선택이 자유롭고,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는 유럽을 향해 나아가겠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진한 청색 위에서 강력한 빛을 내뿜고 있는 황금색 별이 마치 새해를 맞이한 마크롱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와 함께 푸른색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얼른 트로카데로 앞에 주차해 둔 차로 뛰어갔다. 차 안에 있던 신랑은 조금 전에 경찰차가 번호판을 사진 찍어 갔다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놀래서 흥분하며 "아니, 단 5분 정도 보고 왔는데 그 사이에 단속했단 말이야? 사람이 차에 앉아 있는데도?"라고 말했다. 


마트에서 집으로 곧장 갈걸 괜히 이곳에 와서 에펠탑 보겠다며 30~50유로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정확히 벌금이 얼마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최소 30유로에서 많게는 75유로 이상도 나올 수 있다. 장소가 어디인지, 차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상황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주차 방식이 어떠했는지 등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는 것 같다. 아까 마트에서 아이가 먹고 싶다던 과자를 안 사준 게 사뭇 마음에 걸렸다. 


일요일은 대게 길거리 주차는 무료인데, 이런 주요 관광지는 예외인가 보다.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일요일 길거리 주차는 무료지만 주요 관광지는 요금을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조금 복잡할 수 있다'는 글을 보았다. 주요 관광지 기준이 모호하다. 불법 주차 기준도 모호하다.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 시장은 친환경 파리를 만들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중에서 자동차 및 오토바이 이용을 줄이고, 주정차된 자동차를 길거리에서 없애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나도 친환경 프로젝트에 동의한다. 기후 변화가 심각하고, 환경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가 없다면, 저녁에 야경을 보러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까? 파리 근교에 살고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은 사실상 저녁에 대중교통을 타고 파리 시내에 오기 쉽지 않다. 에펠탑에 불을 밝힌 것은 시민들에게 멋진 야경을 보러 오라는 것이고, 함께 축하하자는 취지다. 


보러 오라고 해놓고 보러 가는게 불편하다면 이것은 또 하나의 모순이 아닐까? 물론 근처 주차장에 돈 내고 주차하면 되지 않냐는 의견도 나올 수 있다. 검색해보니 트로카데로 근처에는 주차장이 없다.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밤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꽤 걸어야 트로카데로에 도착한다(여기에 비까지 오면...). 잠깐 볼 건데 돈 내고 멀찌기 파킹 하는 것도 조금 아쉽다.  


'친환경 도시와 삶의 편리함, 두 개 다 가지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친환경을 위해서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삶의 편리함을 우선시한다면 환경은 파괴된다. 아... 참 어렵다.

그래, 주요 관광지 주차 시 벌금을 내는 것까지 이해할 수 있다. 안에 사람이 있는데, 한번쯤 물어보고 벌금을 매기던지... 경찰은 갑자기 다가와서 재빨리 사진만 찍고 팽 돌아섰다. 신랑 말에 의하면 앞에 있던 운전자는 너무 황당해서 차에서 내려서 경찰한테 물었단다. 한국은 확실히 정이 많은 민족이다. 경찰이 이럴때 한번쯤 물어보기라도 한다. 운전자가 발언할 수 있는 여지라도 준다.  


갑자기 옛 일화가 떠올랐다. 아이가 만 2살 정도였을 때다. 소아과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이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차 안에서 계속 울었다. 까르푸 앞에 잠깐 차를 세웠는데 이때 경찰관이 우리를 보더니,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라고 무섭게 말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어댔고, 카시트에 절대 앉지 않으려고 온힘을 다해 나를 밀어냈다. 그 당시 프랑스어도 못하던 때라, 이 난감한 상황을 영어로 설명하는데, 경찰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말하려고 하면 되려 그냥 벌금 내세요라는 으름장을 놓았다. 약 10분 정도 카시트 앉히기를 시도했고, 이쯤되면 봐줄 줄 알았다. 소아과 갔다온 아기 수첩을 보여줘도 얄짤없다. 아기도 나도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10분 쯤 지났을까... 겨우 카시트에 앉혔다. 그제서야 경찰은 말 한마디 없이 돌아갔다. 그때 여자 경찰관의 얼굴과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무서웠다. 한국이었다면, 만 2살 아기가 열이 나는 아픈 상황에 병원 다녀오는 길이라는 것을 알면, 여러번 시도해보고 아기가 앉지 않으면 정으로라도 살짝 눈 감아줬을텐데... 그 당시 아무 말도 못하고, 너무 억울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집에 도착해서 슬그머니 발코니로 갔다. 저 멀리 푸른빛을 강하게 내뿜고 있는 에펠탑을 보고 있으니 속이 쓰리다. 최소 30유로(한화 약 4만 원)짜리 푸른색 에펠탑 사진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한국에 계신 많은 분들이 널리 널리 보시면 좋겠다. 
 

(좌) 트로카데로에서 바라본 에펠탑 모습 (우) 집 발코니에서 바라본 에펠탑 모습. 푸른 조명이 강한 탓인지 에펠탑 윗부분의  하늘도 파랗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