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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an 07. 2022

노력하나 들이지 않고 2개 국어를 하게 된 비결

아이들은 어떻게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가?

파리에 처음 왔을 때 아이 나이는 만 1살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생후 13개월 정도였다. 나는 말이 많지 않은 엄마다. 아이가 말을 하려면, 엄마가 수다쟁이가 돼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억지로 수다쟁이가 될 수도, 되고 싶지도 않았다. 때 되면 다 할 텐데 뭐하러 적성에도 안 맞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걸까란 생각을 했었다. 물론 수다쟁이 엄마를 비하하는 의도는 결코 없다. 나도 말이 많은 엄마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어떻게 저렇게 쉴새없이 재미있게 아이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신기하고 부러웠다. 실제로 아이에게 말을 많이 해주는 집 아이들은 말을 빨리 깨우쳤다. 근데 나는 아이 키우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부쳐서 말할 힘도 에너지도 없었다. 또, 말을 빨리 깨우치게 하려는 의지도 크게 없었고...


파리에 도착해서 1년 가량 아이와 집에 있었다. 대화가 적었기에 아이는 말이 빨리 늘지 않았다. 책을 읽어주지도 않았다. 읽어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됐다. 파리 생활 1년이 조금 넘어가면서, 아이가 약 만 2살 반 가량 됐을 때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녔다. 그곳에서는 프랑스어로 말하는데, 아이들 대부분이 프랑스어를 썩 잘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우리 아이를 배제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아직 만 3살 미만 아이들이니까... 서로 장난감 가지고, 그림도 그리고, 몸으로 놀며 친해졌다. 아주 간단한 프랑스어 단어 몇 가지 정도만 할 줄 알았다. 


만 3살이 되자, 주재원 혜택으로 국제 학교에 다니게 됐다. 유치원에서는 전부 영어로 했다. 다행인 것은 각국의 아이들이 대부분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각국 모국어는 잘할지언정 영어는 다들 처음이었다. 물론, 영어권 아이들은 영어를 하지만 영어권 아이는 1~2명 뿐이었다. 그렇게 1년을 또 잘 보냈다. 영어 한마디 못하던 아이는 1년 후, 기본적이 영어 단어와 짧은 영어 문장 정도 구사했다. 그렇다고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 4살, 주재원 계약이 끝나서 프랑스 공립 유치원에 다니게 됐다. 만 4살이 되면서 아이는 한국어를 조금씩 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집에서는 한국어, 학교 가면 영어, 사회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니 스스로 혼동이 많이 됐을 테다. 그렇다고 엄마가 3개 국어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니... 근데 만 4살이 되면서 어떻게 한국어를 잘하기 시작한 것일까? 나는 유튜브 영상을 많이 보게 했다. 사실 나 편하고자 한 일이었다. 한국어 습득에 도움되겠지라는 생각은 거의 못했다. 최소한 그것을 보고 있는 동안은 요리며 청소며 집안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유튜브 영상을 보고 또 본 시간들이 쌓여서 한국어 어휘가 늘어나고, 문장도 구사하게 됐다. 


요즘 아동 영상물 시청이 논란이지만 나의 경험에 비춰볼 때 부정적인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유튜브에서 한국어뿐 아니라 문화도 배울 수 있었다. 한국에 살지 않기 때문에 영상을 통해 한국 문화도 덩달아 배웠다. 주로 본 영상물은 온갖 키즈 유튜버(일일이 이름을 밝히기 힘들지만 검색하면 매우 많다), 콩순이, 뽀로로 등등... 유튜브가 아이 한국어를 가르쳤다는 것에 슬프지만 나는 인정하는 바이다. 


만 4살에도 아주 썩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를 기점으로 한국어가 일취월장했다. 만 4살 반 정도 되니 막힘 없었다. 만 3살이 넘어도 물, 꺄꺄, 엄마 등 간단한 단어 몇 개만 말해서 걱정이 아주 살짝 들기도 했지만,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한국이었으면 조부모님을 비롯해서 주변에서 한마디씩 했을 것 같다), 길거리에서 비교하는 사람도 없고, 비교할 만한 한국 또래 아이도 없었기 때문에 두 발 뻗고 마음 편히 지냈다. 때 되면 다 하겠지 하면서...


한국어는 이렇게 만 4살 반을 기점으로 어느 정도 됐다. 그런데 이제부터 또 다른 산이 나타났다. 만 4살부터 공립 유치원에 다녀야 하는데,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로 들어갔다. 만 4살이면 이제 어느 정도 프랑스 아이들은 모국어를 잘 구사하는 편이었다. 유치원 입학하고 2주 정도는 아침마다 전쟁이었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음식도 입에 안 맞고, 친구들과 소통도 안되고... 


2주 정도가 지나니까 유치원 가는데 문제가 없었다. 2주 동안 친한 친구를 사귄 것이다. 아이는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지만, 친구와 소통은 비록 안되지만, 우리 아이의 손을 잡아준 고마운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착한 프랑스 아이들 덕분이기도 하고, 아이가 비교적 성격이 사교적인 덕분이기도 했다. 낯을 가리거나, 사교적이지 않거나, 불안감이 높은 아이들은 유치원 생활 적응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이곳 한국 엄마들 중에서 자기 아이가 유치원에서 말이 안통해서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전쟁인데, 유치원 적응하는데 거의 1년이 걸렸다는 경우도 봤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나마 성격, 성향 덕분에 말은 안 통하지만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잘 놀며 지냈다.  


그렇게 프랑스 공립 유치원에 정확히 1년을 다닌 작년 10월 경부터 아이가 갑자기 집에서도 프랑스어를 종종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잘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가 집에서는 절대 프랑스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해보라고 해도 절대 안 했다. 학교 선생님께 물으면 아이가 알아듣고, 발전하고 있다는 간단한 답변뿐이었다. 그래서 학교 봉사 활동할 기회가 있다면 최대가 참석하려고 했고, 그때마다 아이가 프랑스어를 하는지 관찰했다. 


아이가 집에서 프랑스어로 대화를 하는 게 신기했다. 이 엄마라는 사람은 집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쳐 준 적이 열 손가락 꼽을 정도다. 나는 기본적으로 엄마가 아이를 직접 가르치면 사이만 나빠진다는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이 신념을 어느정도 깰 필요는 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프랑스어 책을 읽어주기도 했지만 그것도 얼마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지 않기도 했고...(애써 핑계를 찾아본다...) 한국어 키즈 동영상이 아이의 한국어 선생님이었고, 프랑스 유치원 친구들이 아이 프랑스어 선생님이었다. 둘 다 고마운 존재들이다.  


아이는 프랑스 유치원 생활 1년이 되는 때부터 한국어가 아닌 프랑스어 영상물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프랑스어로 보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며 한국어로만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시청하기 불편함이 없는지 프랑스어 키즈 티브이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이제 역전됐다. 그전에는 내가 아이보다 프랑스어를 더 잘해서 알려주곤 했는데, 이제는 아이한테 내가 물어봐야 할 지경이다. 기분 좋은 지경이다. 


지금 아이는 만 5살 반. 한국어도 재잘재잘 잘하고, 프랑스어도 조잘조잘 잘 말한다. 두 개 국어를 스위치 전환하듯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스러워 보였다. 엄마가 노력을 했으면 더 빨리, 더 잘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만족하고, 지금 이때가 바로 이 아이에게는 가장 적절한 때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때란 없다. 어른이고 아이고 각자 다 때가 다를 뿐이다. 


한국어는 만 4살 반, 프랑스어는 만 5살 반 정도에 유창해졌다. 한국어를 4년 반 동안 믿고 기다렸기에 다른 언어도 자신감을 얻어서 1년 만에 잘 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더 빨리 더 늦게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 아이들은 다르고, 무엇을 받아들이는 때도 다 다르다. 나는 아이를 항상 믿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줬다. 엄마가 노력한 것은 없지만, 공부를 시키거나 가르친 것은 비록 없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 생각할 때 이렇게 아이가 두 개 국어를 잘할 수 있게 된 비결을 말하라고 한다면, 언제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식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정말 식상한 말이기도 하다. 


한국어를 못해도 불안하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너는 잘할 수 있다고, 언젠가는 잘할 수 있다고, 너는 최고라고, 엄마는 우진이를 믿는다고, 그리고 엄마는 우진이를 있는 그대로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매일 밤 귀에 속삭였다. 프랑스어를 하기 싫어할 때도 절대 다그치거나, 잔소리하지 않았다. 아이가 스트레스 받는 것이 가장 걱정되어서 학교 생활을 편안하게 잘하는 것만으로도, 친구들과 잘 노는 것만으로도 매일 감사하며 살았다. 


말을 못해서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말을 못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즐겁게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하게 하기 보다는 좋아하는 것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만들기를 좋아해서 종이접기와 만들기를 집에서 같이 했다. 연극을 좋아해서 연극을 몇 번 보러 다녔다. 놀이터도 많이 다니고, 코로나 전에는 여행도 많이 다녔다. 이 외에는 친구들 만나서 신나게 노는 것이 전부였다.


부모의 편안함 속에서, 즐거운 학교 생활 속에서, 따뜻한 가정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기 내면에서 스스로 한국어와 프랑스어를 배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티비를 통해, 친구를 통해, 선생님을 통해 습득하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마트에서, 길거리에서, 엄마 아빠가 사람들과 말하는 것에서 혼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잠자는 시간 빼고 나머지 시간에 아이는 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하고, 입으로 조물조물 말해보고 있었다. 


지금 만약 아이가 말이 늦어서 걱정 된다거나, 외국어 공부를 시키려는데 잘 안된다거나... 그런 부모님들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먼저, 아이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해 주세요. 엄마가 불안해하거나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엄마는 너를 믿고 있다는 무한 믿음을 보여주세요. 아이가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하고, 즐겁고, 부모로부터 무한 신뢰와 긍정, 조건없는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면, 언젠가 아이는 스스로 터득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꽃봉오리가 어느 날 갑자기 확 터지듯 그런 꽃피는 날이 옵니다.  


루이비통 재단 오디토리움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책도 보고, 그림도 그려보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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