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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an 13. 2022

금요일은 영어책 읽는 날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다

아이 유치원에서 매주 금요일 오전에 영어책 읽기를 하니, 담임 선생님은 부모님들 중에서 영어책 읽기를 자원해주실 분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프랑스 유치원은 아이 유치원 생활을 알 길이 없다. 선생님 면담도 거의 없고, 학교 출입도 제한되어 있다. 한국처럼 학부모에게 교내 생활 사진을 보내주는 것도 아니다. 알림장도 한 달에 한번 정도 행사 공지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영어책을 읽으러 금요일에 가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흔쾌히 수락했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속으로 '선생님, 제가 더 감사하죠. 우리 아이 유치원 생활도 볼 수 있고, 교실도 볼 수 있으니까요.' 


어떤 영어책을 읽어줄까? 집에 있는 영어책을 뒤적거려보기도 하고, 더 좋은 영어책은 없을까 싶어서 동네 도서관에 가서 영어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이 친구들 앞에서 멋진 엄마가 되고 싶어서 영어책을 3권 골라서 연습을 했다. 두 번 영어책을 읽으러 갔는데 첫 번째 책은 Cat and Mouse, 두 번째 책은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Santa's Beard를 읽었다.  


아이들에게 프랑스어로 설명도 해줘야 하니까 영어 단어마다 프랑스어 표현도 알아보고, 집에서 리허설도 했다. 평소 책을 즐겨 읽지 않는 아이가 엄마가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한다고 하니까 흥미를 가지고 엄마 책 읽기 리허설에 적극 동참해줬다. 이때라도 책을 읽히자 싶어서 금요일이 다가오기 전까지 매일 저녁 15분씩 영어책을 함께 읽었다. 


드디어 금요일 아침이 밝았다. 가방에 영어책 3권을 넣어 아이와 함께 유치원으로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아이는 전날 저녁부터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내 엄마가, 우리 엄마가 나와 학교에 같이 가고, 교실에 들어가고, 선생님처럼 책을 읽어준다니!' 그런 아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너무 사랑스러웠다. 유치원 입구에서 원래는 부모들의 입장을 엄격하게 관리하는데, 담임 선생님과 입구 안내 선생님들과 미리 입을 맞췄는지,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들어가세요!" 한다. 이런 대접받는 기분이란. 


이층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온통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가득했다. 일명 복도 갤러리다.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 반 친구들이 "우진이 엄마예요?" 하며 묻는다. 나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아이들도 있었고, 부끄럽게 살며시 나를 쳐다보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아이처럼 비슷하게 생긴 아시아인 엄마가 신기한지 멀뚱멀뚱 가만히 쳐다보는 아이도 있었다. 안면이 있는 몇몇 아이들은 나한테 와락 안기기도 했다. 역시 여자 아이들이 애교가 많았다. 한 명이 안기니 다른 아이도 내 품에 안겼다. 그걸 지켜보는 우리 집 아이는 질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지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아이를 꼭 안아줬다. "우리 우진이가 최고야!" 아이는 금세 미소를 뗬다.


8시 30분부터 9시 15분까지 아이들은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했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 퍼즐을 하는 아이, 삼삼오오 모여서 레고를 만드는 아이, 다 제각각이다. 이때 선생님은 아이들 출석을 하나씩 확인하고, 방과 후에 학교에 더 남는 아이들이 누구인지 체크했다. 아이들이 소란 피우지 않고, 각자 자발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아이는 내 손을 잡아끌면서 교실 이곳저곳을 소개해줬다. 엄마가 학교에 오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지, 종일 상글벙글하다.


드디어 영어 읽기 시간. 아이들 표정을 살피며 책을 읽었다. 알아듣는 아이도 있고, 못 알아듣는 아이도 있다. 재미있어하는 아이도 있고, 지겨워하는 아이도 있다. 그래도 끝까지 잘 앉아서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 몇몇 단어를 따라 하기도 했다. 영어를 하나도 못 알아들어도 좋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정도만 살짝 느껴보기만 해도 유치원 아이들에게는 좋은 시간이 된다. 외국어에 호기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뭘 굳이 공부해야 하기보다는 이런 환경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담임 선생님께 이곳 아이들은 초등 입학 전, 만 5살이 되면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우는지 물었다. 아니라고 한다. 선생님 재량에 따라 가르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고 했다. 본인은 영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본인 반만 이렇게 영어 책 읽기 시간을 매주 금요일에 가진다고 했다. 매주 금요일 약 30분 정도만. 프랑스에서는 몇 살 때부터 영어를 본격적으로 학교에서 가르치냐고 물었더니 중학교라고 답했다. 초등학교에서도 영어 수업 시간이 있지만 많은 시간은 아니라고 했다. 


한국이라면 유치원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하곤 하는데, 이곳은 달랐다. 어릴 적부터 영어보다는 모국어인 프랑스어 교육을 강조하는 편이다. 한국과 비교해서 영어 교육 시작하는 시기도 늦은 편이다. 글로벌 프랑스보다는 자국 우월주의 프랑스다. 물론 영어를 잘하는 청소년 및 대학생 청년들도 다수다. 하지만 타 유럽 국가에 비해서 영어 실력이 낮은 편이다. 


주변 아이 친구 부모들에게 물어보면 영어 교육을 시작하고 있는다는 집은 단 1명 봤다. 자녀 교육열이 높은 Y. 그 외에는 다들 운동 한 두 개 정도 하고 있고, 영어 교육은 아직 어리다며 시키지 않고 있다. 단, 유치원에서 만 5살부터 학교에서 방과 후 특별 활동으로 영어, 연극, 음악 중 1개를 선택해서 하고 있다. 우리 아이의 경우 연극을 선택해서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참여하고 있다. 


한국어와 프랑스어 두 개 언어 하기도 힘들텐데 여기에 언어를 한 개 더 추가하면 스트레스 받을까 봐 영어보다는 연극을 선택했다.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도 키우고, 재미도 있고, 프랑스어도 늘고 여러모로 연극이 가장 이 나이 때 아이한테 좋을 것 같았다. 


대신 나는 집에서 아주 가끔 영어책을 읽어주곤 한다. 국제학교 다닐 때 1년 동안 영어를 사용해서 그 당시에는 곧잘 했지만, 프랑스어 환경에 놓인 뒤부터 영어는 차츰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괜찮다.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영어를 놀이처럼 접하면 된다. 


2022년 새해를 맞이하여, 집에서 매일 하루에 한 개 또는 두 개 단어를 매일 써보기로 했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시작했으니, 어제까지 총 세 번을 했다. 예를 들어, 가방을 쓰면, 영어로 BAG, 프랑스어로 SAC 이렇게 동시에 3개 언어를 함께 글자로 써보고, 소리 내어 읽었다. 여기에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있진 않다. 그날 쓴 단어를 외울 필요도 없다. 이전까지는 유치원 갔다 오면 가방 던져놓고, 티브이 보거나 놀기만 했다면, 올해부터는 (곧 만 6살이 되기도 하기에) 단 15분이라도 앉아서 연필을 손에 잡고 종이에 글자를 써보는 '습관' 또는 '루틴'으로 자리잡기를 바랄 뿐이다.


더불어 엄마와 함께 소통하고 대화하는 시간도 겸하고... 이때 주의할 점은 아이가 장난치거나, 글자를 쓰지 않으려고 하더라도 화를 내서는 안된다는 점. 자칫 화를 버럭 내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지금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15분 앉아서 무엇인가 써보는 '습관'을 만들어가는 시간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임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하루 한 두 단어를 3가지 언어로 써보기 습관이 될 테니까... 


나도 처음 시작해보는 거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다. 작심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삼일은 했다.  


아이 유치원에서 읽은 영어책 2권. 두 권 모두 다 아이들이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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