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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an 19. 2022

종이 한 장이 반짝이는 작품으로 변하는 순간

액자에 들어가는 순간 반짝이는 명작으로 재탄생된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집으로 가져온다. 매일 가져오는 일상적인 그림도 있고, 며칠 걸려서 완성한 그림도 있다. 이런 그림은 분기별로 가져온다. 아이가 정성 들여 완성한 그림은 내 눈에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루브르에 걸려 있는 그림보다 더 멋져 보인다. 이게 바로 콩깍지란 걸까... 아무튼 내 눈에는 그렇다. 나와 관계없는 이미 세상에 죽고 없는 유명 화가의 그림보다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내 옆에서 늘 펄떡이며 살아 움직이는 아이의 그림이 나에게는 더 생생하고 사실적이며 친숙하게 다가온다. 유치원에서 아이는 어떤 표정으로 어떤 몸짓과 손짓으로 그림을 그렸을지 상상하며...


아이의 그림을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작년부터 그림을 액자에 넣기 시작했다. 이케아에 파는 저렴한 액자 하나 샀을 뿐인데 종이 한 장의 가치 차이는 실로 놀랍다. 종이에 그린 그림이 집안에서 여기저기 나뒹구르다가 찢어지기도 하고, 물감이 공기와 닿으면서 서서히 변색되기도 하며, 물이 묻어서 물감이 번지기도 한다. 그러나 액자에 넣어두면 종이가 빳빳하게 펴지고, 공기와 수분의 접촉을 차단하여 보관도 잘된다. 동시에 종이 한 장이 액자에 담겼을 뿐인데 그 가치는 몇 배나 껑충 뛰는 효과를 순간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동안 아이와 여러 미술관을 다녔다. 파리에 있는 미술관은 말할 것도 없고, 피렌체, 바티칸, 시카고, 토론토, 런던, 암스테르담, 베를린 등에 있는 유명하다는 미술관에 함께 갔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그림을 알든 모르든 그냥 같이 다녔다. 물론 나도 그림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해외여행을 갈 때면 여행의 한 부분으로 현지 유명 미술관은 빼먹지 않았다. 


아이는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가리키면서 "엄마, 왜 그림이 벽에 걸려있는 거야? 왜 이곳에는 그림만 있는 거야?"라고 물으면 "유명한 그림들을 벽에 걸어두고, 사람들이 보러 오게 하는 곳인데 미술관이라고 해"라고 했다. 아이는 어느새 그림이 벽에 걸려있으면 그 그림은 값비싼 작품이 되는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림 한 장이 돈이 되는 것이라는 자본주의적 사고도 어느 순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아이의 그림을 액자에 넣어서 벽에 기대어 두었다(벽에 걸어두면 좋겠지만, 우리 집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못을 박을 수가 없다). 


아이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황금색 테두리를 가진 액자에 가지런히 들어가서 벽에 진열되는 것을 보고 있으니 매우 뿌듯한 모양이다. 그렇게 그림을 한 개 두 개 액자에 넣기 시작해서 지금은 집안 복도에 진열해두고 오다가다 그림을 본다. 이 좁디좁은 복도가 작은 미술관이요, 갤러리다. 이름하여 우진 갤러리. 

지난주, 생루이섬 갤러리를 방문하다 작품마다 반짝이는 전구를 둘러놓은 것에서 착안하여 우진이의 작품에도 크리스마스 트리에 사용했던 긴 전구 줄을 둘렀다. 


우리집 우진 갤러리


종이 한 장이 액자에 들어가니 작품이 되고, 전구 줄을 액자에 두르니 반짝이는 명작으로 재탄생되는 놀랍고도 신비스러운 순간이다. 


아이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 성취감, 자존감, 자신감... 등 다양한 감정이 샘솟을 터이다. 나는 아이가 이런 성취감을 삶에서 조금씩 천천히 맛보길 바란다. 동시에 자존감도 자연스럽게 높아지면 좋겠다. '나도 할 수 있구나. 내가 그린 그림이 이렇게 멋지게 보이는구나. 내 그림이 작품이 되어 벽에 걸릴 수 있구나. 내 작품이 돈이 되는구나(아... 이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건가)'. 


어릴 적부터 경제관념을 가지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신랑은 아이한테 벌써부터 돈돈 하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아이에게 솔직하게 얘기한다. 네가 그린 그림이 유명해지면 너의 그림은 비싼 가격이 매겨지게 되고, 그것을 팔면 너는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돈 얘기를 자주 하면 좋지 않겠지만, 자본주의 현대 사회에서 돈 이야기가 꼭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날은 아이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엄마, 미국이 부자 나라라고 했지? 내 그림 들고 미국 가자. 미국 가서 내 그림을 팔자. 그럼 우리 부자 되는 거잖아."


성취감, 자존감, 자신감, 도전정신 등 긍정적인 감정을 아이 내면에서 단단하게 키울 수 있게 해주는 보조 역할은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더 잘 그려라. 이것은 이렇게 그리는 것이 좋겠다. 저건 저렇게 해야지.' 이런 말은 삼가고, 아이의 어떤 그림에도, 어떤 창작물에도, 어떤 표현에도 맞장구와 칭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고, 아이의 그림을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부모가 보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이 내면에는 엄청난 성장이 일어난다. 


아이는 우진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된 듯, 자신의 작품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아이의 생각과 감정까지 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는 그림 하나하나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했다. 그제서야 왜 이렇게 그렸는지 알 수 있었다. 평소에 아이가 그림을 가져오면 나는 이것 저것 잘 캐묻지 않는 편이다. '이 그림은 무엇을 표현했어? 이건 왜 이렇게 그렸어?'라고 묻기 보다는, 아이가 말을 하고 싶어하면 관심있게 잘 들어주고, 말을 하고 싶지 않으면 궁금해도 묻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의 작품이 소중한 듯 이리저리 재배치도 해보고, 넘어지지 않게 소중히 그림을 다루는 등 디스플레이 하느라 이 방 저 방을 분주히 드나들었다. 이런 아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랑스럽고 감사했다. 


어제는 나날이 색이 옅어지는 것 같은 마녀(Une Sorciere)그림을 하루 빨리 액자에 넣어주고 싶은 마음에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 있는 이케아에 갔다. 집에서 이케아까지는 약 40분가량 소요된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웬만하면 지하철 안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아서 루브르 리볼리(Louvre-Rivoli) 역 세 정거장 앞인 콩코드(Concorde) 역에서 내렸다. 콩코드 역에 내려 뛸르리 정원을 걸었다. 오전 11시 정도였다. 운동복을 입고 조깅하는 사람들과 분수대 주변으로 둘러싼 의자에 앉아서 햇볕을 쬐는 사람들이 있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좌) 예술의 다리 (중) 세느강과 루브르 박물관 (우) 오르세 미술관 근처 작은 갤러리들이 줄지어 있다


오르세 미술관을 지나는데 주변에 작은 갤러리들이 많았다.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아이가 그린 그림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순전히 엄마 마음일 수 있겠지만). 아이가 그린 그림을 이 그림 옆에 놔둬도 별로 차이가 없겠는걸? 이란 생각이 들 정도인 그림도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파리 미술학교인 보자르(Beaux arts de Paris)가 나왔다. 건물에는 뛰흐(ture)로 끝나는 세 단어, 그림(Peinture), 건축(Architecture), 조각(Sculpture)이라는 글자가 통일감을 가지고 묵직하게 적혀있었다. 그 옆에는 무지개색으로 'We are Poems(우리는 시)'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시인(Poets)도 아니고 시(Poems)로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우고 론디오네(Ugo Rondinone)의 작품으로 2019년 10월 학교 입구에 설치된 이 작품은 우리의 일상을 시(Poems)화하기 위한 보편적 상징이자 실존적 명령을 표현했다고 한다. 우고의 작품은 합리적인 사고 패턴으로 인한 제약에서 벗어나도록 하며, 꿈같고 비논리적 우주에 빠져들게 한다. 우고는 스위스 태생으로 현재 뉴욕에서 거주하며 작업 활동 중이다.


(좌) 예술의 다리에서 바라본 퐁네프와 시테섬 (중) 보자르 건물에 그림, 건축, 조각이라 적혀있다 (우) 보자르 입구 위에 무지개색깔로  '우리는 시다'라고 적혀있다.


추운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갤러리의 그림들을 하나씩 보면서 걸었다.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 앞에 다다르자, 익숙한 아코디언 소리가 들려왔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노래를 힘 있게 부르고 있었다. 다리 오른쪽으로는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이 보였고, 왼쪽으로는 시테섬과 퐁네프가 보였다. 파리와 아코디언은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물론, 오페라, 재즈, 클래식도 어울리지만 아코디언의 경쾌한 음색과 리듬은 흑백 파리 모습과 잘 어울린다.  


최근 개장한 사마리텐(Samaritaine) 백화점이 등장하자, 이케아에 다다랐음을 직감했다. 이곳 이케아는 소규모 매장이다. 주로 데코레이션 홈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마녀 그림을 넣으려면 50X70 사이즈 액자를 사야 할 것 같다. 꽤 묵직하다. 이것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 집까지 약 20분을 걸어야 하는데 과연 내가 이것을 이고 지고 갈 수 있을까? 이미 마트에서 구매한 물건들도 양손 가득하다. 한 손에는 액자, 다른 한 손에는 장 본 물건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동심원들과 정사각형들 그림이 맞지 않은 액자에 들어가 있어서 보기가 안 좋았는데, 온 김에 그림 사이즈에 맞는 액자를 발견하고 안 살 수가 없었다. 결국 큰 액자 1개, 작은 액자 1개, 그리고 판다 인형, 물감 등을 이케아에서 구매했다. 


이케아에서 집까지 45분. 그 중 걷는 시간은 약 20분. 발목, 허리, 어깨, 목 뒷덜미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평소 목과 어깨가 약한 나는 조금만 무리하면 이곳에 통증이 쉬이 느껴진다. 오늘 산 물건 중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은 없다. 주로 집안 살림과 아이를 위한 품목들이다. 과연 나를 위한 물건이라면 이렇게 이고 지고 했을까? 모르겠다. 걸어가는 내내 통증은 심해졌지만, 오랜만에 푸르른 파리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이가 좋아하는 순간을 상상하면서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아이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얼굴을 떠올리면 아픈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 이것은 엄마가 되었기에 느껴볼 수 있는 감정이었다. 아이가 기쁘면 엄마도 기쁘다. 그래. 아이 덕분에 파란 하늘도 보고, 멋진 파리 풍경도 보고, 갤러리 그림도 보고, 아코디언 연주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집으로 걸었다. 아이란 존재는 정말로 내게 신비하고 놀라움을 안겨준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액자 두 개를 보자마자 마녀 그림과 칸딘스키 그림을 끼워 넣는다. 자기 스스로 완성한 그림이 액자에 들어가자 환호를 질렀다. 우리 모자에게 있어서 멋지고, 행복하고, 기쁘고, 경이로운 순간이다. 우진 갤러리에 작품 하나가 더 추가되었고, 전구에 불을 켰다. 반짝이는 작품들로 가득한 이 공간에서 아이와 나는 한 뼘 더 성장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순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좌) 그림을 직접 액자에 끼워 넣는 아이 (중, 우) 아이가 자신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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