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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an 28. 2022

자연스러운 기분이 들어

아들에게 들은 내 인생 최고의 찬사

며칠 전, 자기 전에 불을 끄고, 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얼굴은 볼 수 있도록 건전지가 얼마 남지 않았는지 희미한 실빛이 나는 펭귄 등불 아래... 말없이 한참을 서로 쳐다보다가 내가 먼저 말문을 조용히 열었다. 


나: 엄마는 몸을 깨끗이 샤워한 뒤, 포송포송한 상태로 우리 둘 이렇게 침대에 누워있는 이 시간이 하루 중에 제일 좋더라. 
우진: 응. 나도 그래. 
나: 우진이는 엄마 얼굴을 보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어? 어떤 느낌이야?
우진: 자연스러운 기분이 들어. 


나는 아이 입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이란 말에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 정적 속에서 두 눈가에 눈물이 서서히 고이기 시작했다. 


우진: 엄마, 왜 울어?

나: 고마워서 울어. 


나는 아이가 이런 대답을 하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기분이 좋다. 즐겁다. 편안해. 정도 예상했다. 물론 화나. 무서워. 싫어. 안좋아. 이런 대답도 솔직하고 좋다. 


자연스러운 기분이란 뭘까? 나는 평소 자기 전에 아이에게 늘 이런 말을 해준다.

"엄마는 우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늘 응원합니다"


아이에게 늘 이 말을 해줬더니, 언제는 내게 "엄마, 자연스러움이 무슨 뜻이야?"라고 물은 적이 있다. 

"꽃, 나무, 하늘, 공기, 땅, 흙, 모래, 바다 이런 것들이 자연이야.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것들이지. 비행기, 자동차, 자전거, 컴퓨터, 핸드폰 이런 것들은 자연이 아니고. 이런 것들은 사람이 만든것이라서 자연은 아니야."

아이는 길을 가면서 자연인 것과 자연이 아닌 것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구분하기 시작했다. 자연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인위적인 것이 아닌, 가공된 것이 아닌 태초부터 '있는 그대로'의 날것이다. 그날 아이는 자연스럽다는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한 듯 보였다. 


나는 아이가 자연스럽게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억지로, 인위적으로, 강압적으로가 아닌, 때가 되면 꽃이 피고, 계절이 바뀌고, 나무가 자라고, 비가 내리고, 해가 뜨고, 새가 지저귀듯... 몇 살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은 없다. 늦어도 괜찮다. 사실 빠르고 늦다의 개념도 인간이 만들어낸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빠르고 무엇이 늦다는 말인가. 언제가 빠른것이고 언제가 늦은 것일까.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밤이 되면 달이 떠오르듯, 인간도 자연스러움 속에서 성장하고 발달해야 된다.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억지로 성장하게 끔 하다보면 결국 부작용이 발생한다. 인간 개개인 모두가 다르듯 발달하는 속도도, 생각하는 속도와 방식도 모두 다르다. 나 자신에 맞게, 내 리듬에 맞게, 내 속도에 맞게,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계절이 바뀌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성장하면 된다.


아이에게 비친 엄마 모습은 '자연스럽다'였다. 이는 내게 최고의 찬사였다. 아름답다, 이쁘다, 착하다, 좋다, 편안하다 보다 한 수 위다. 아이에게 엄마는, 엄마의 품은 자연스러운 곳이어야 한다. 종종 뉴스 또는 TV 프로그램에서 가정 불화로 인해 부모 자식 간에 등을 돌리고, 서로 보지 않고, 싸우는 집들이 나온다. 자라나는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운 것이 들어있지는 않았을까. 인간도 자연처럼 하나의 자연스러운 대상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부모가 인위적으로, 억지로, 인공적으로 아이 삶에 개입하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성인이 돼서 자식은 부모를 보는 것이 이제 부자연스럽다. 만남이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찾아가 뵙지 않는다. 뵙더라도 함께하는 시간이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못하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한채 자신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가버린다.  


나는 아이에게 자연스러운 엄마였다. 애써 잘 보일 필요도 없고, 편안하며, 있는 그대로, 인위적으로 꾸밀 필요도 없으며, 자랑할 필요도 없는, 그냥 자연 그대로의 존재였던 것이다. 너무 감사했다. 한동안 나는 아무 말못하고 그저 아이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진아, 고마워. 나를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계속 자연스러운 기분이 드는 엄마가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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