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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Feb 13. 2022

밀도 있는 사람

이 빠진 날

며칠 전부터 아이 아랫니 한 개가 많이 흔들렸다. 이제 빠질 때가 됐나 보다 싶었다.

"우진아, 오늘 이 뺄까?"

"아니, 조금 더 있다가... 무서워..."

아이 눈빛을 보니, 빼고 싶은 마음이 무서운 마음보다 더 커 보였다.

"그래, 그럴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엄마가 치실만 살짝 해줄게."

아이가 정말로 무서웠다면 싫다고 했을 텐데, 치실을 이빨에 살짝 가져가니, 입을 아 하고 크게 벌렸다. 나는 치실을 어금니 사이에 가볍게 했다. 평소 아이에게는 치실을 자주 하지 않는데, 오늘 이빨을 뽑으면 어떨까 싶어서 치실을 이용했다. 치실을 하다가 흔들리는 이쪽으로 슬금슬금 가져갔다.

"엄마가 이빨에 살짝 실을 걸어볼까?"

"응"

"많이 흔들려서 이를 빼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 저번에도 집에서 실로 뺐었잖아. 그때 하나도 안 아프다고 했잖아."

"알았어. 빼 줘."


시간을 오래 끌면 두려움이 커지기 때문에 말이 나왔을 때, 단숨에 잡아당겼다. 저번보다 쉽게 빠졌다. 아이도 아프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처음, 두 번째 아랫니는 치과에서 뽑았다. 세 번째, 네 번째 아랫니는 집에서 실로 뽑았다. 세 번째 이를 누워서 뽑다가 잘못해서 이가 아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이를 뽑으면 요정이 와서 돈을 놓고 간다는 얘기를 학교에서 들었는지, 이번에는 이를 꼭 가지고 싶다고 해서 앉아서 뽑았다. 이가 저절로 쓱 빠질 정도로 뿌리가 많이 녹은 상태였다. 아이는 이를 손에 쥐고 이리 보고 저리 봤다. 나도 이를 만져보니 신기했다. 이 가운데는 신경이 드나드는 곳인지 매우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는 사기처럼 단단했다.


햇살 좋은 주말 오후,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서 공을 찼다. 함께 뛰며 공차기를 약 30분 정도 하니 땀이 살짝 났다.

"우진아, 밖에 나오니까 기분 다”

"엄마랑 공차니까 재밌어. 엄마, 내가 축구 가르쳐줄게."

발끝에 다는 공이 공중을 향해 뻥하고 날아가니 답답한 마음도 함께 저 멀리 날아가는 듯했다. 찌뿌둥한 몸도 한결 상쾌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했다.


집에 들어와서 흙먼지 뭍은 공을 씻으려고 물에 담갔다. 아이는 애지중지 보관하던 이빨을 가져오더니, 물에 떨어뜨렸다.

"엄마, 공은 이렇게 큰데 물에 떠 있어. 근데 이는 이렇게나 작은데 물에 가라앉아. 이가 더 무거운가 봐."

"맞아. 공은 보기에는 크지만 안에는 공기뿐이지? 이빨은 공이랑 비교도 안되게 많이 작지. 근데 이빨은 속이   거야. 조금 어려운 말로 밀도가 높다고 . 밀도. 한번 따라해 볼래?”

"밀. 도."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되게 커 보이는데, 알고 보면 속이 텅 빈 사람이 있어. 알맹이가 없지. 근데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작아. 근데 알고 보면 속이 꽉 찬 사람인 거야. 한마디로 알찬 사람인 거지. 다시 말해서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어. 엄마는 우진이가 네 이빨처럼 겉으로는 작아 보일지라도 그 속은 꽉 차고, 단단하며, 알맹이 가득한 밀도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살다 보면 실제 그런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대단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허영심과 과시욕으로 인한 허상이었고, 속은   경우가 있다. 반대로, 겉으로는 박하고 단출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지혜와 지식으로 가득하고, 겸손하며, 대단한 사람임을 뒤늦게 알게  경우도 있다.


그날 저녁, 아이는 깨끗이 씻은 이빨을 머리맡에 고이 놔뒀다.

"엄마, 요정이 오나 안 오나 자는 척 하자. 눈만 감고 있자."

"그래, 그렇자."

히히” 아이는 신난다는 듯 씩 웃는다.

아이와 눈을 감은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이는 어느새 잠이 스르륵 들어있었다.

나는 아이가 이빨처럼 밀도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곁에서 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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