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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Feb 16. 2022

네가 제일 수고가 많아

엄마, 나도 수고스러워

오늘 아침 유치원 가기 전, 아이를 씻기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도 수고스러워."


잘 안 들려서 다시 물었다. 아이는 약간 부끄러운지 작게 얼머부렸다. "수고스러워..." 나는 몇 번 들은 뒤, 그제야 알아들었다. 갑자기 한 두 달 전쯤 아이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추운 날씨에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하는 신랑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아이가 일어나면 아빠는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나는 그때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새벽에 회사로 출근했어. 우리를 먹여 살리려고 아침부터 회사 나가고, 아빠가 수고가 많다. 그지? 아빠가 제일 수고 많고, 그다음 유치원 가는 우진이, 그다음 집에 있는 엄마. 엄마가 세상 제일 편하네... 하하"


그 당시 아이는 특별한 말이 없었다. 근데 속으로 혼자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두 달 지나서 갑자기 자기가 제일 수고가 많다고 말했다. 며칠간 신랑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없던 날이 많던 아빠가 집에 있으니, 이제는 자기가 제일 수고스럽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는 집에 있고, 나 혼자 유치원에 가니까 내가 제일 수고스러워." 맞는 말이다. 나는 평소에도 아이가 유치원에 매일 가는 것이 대견하고, 때로는 안쓰럽기도 했고, 정말 수고가 많다고 늘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 입으로 이런 말을 직접 들으니, 마음이 짠했다.


"우진아, 유치원 가는 것이 힘들어? 힘들면 안 가도 괜찮아."

"아니, 안 힘들어. 갈래."

나는 아이가 일부러 엄마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말하는 줄 알고, 다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힘들면 엄마한테 말해줘. 유치원 가는 게 힘들면, 집에 있어도 돼."

"아니야. 만들기 하고, 그림 그리는 것 좋아. 가고 싶어."


아이는 유치원 가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위로받고 싶고, 아빠보다 내가 더 수고가 많다는 말을 엄마한테서 괜스레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는 그런 존재다. 별것 아닌 것에도 자기가 제일 뛰어나고 싶고, 잘나고 싶고, 앞서고 싶고, 뭐든 자신이 '제일'이어야 하는 그런 마음이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가족한테서 엄마한테서 제일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 아이의 이런 마음을 잘 알고, 살피고, 위로하고, 공감하면 아이는 금세 밝아지고 다시 힘을 얻으며 일어난다.


어릴 적 이런 말을 들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유치원 또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거나, 공부하기 힘들다고 하면 어른들이 "뭐가 힘들다고 그래?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을 때가 좋은 거야." "유치원에서 놀고먹고 자고 하는데 뭐가 힘들어? 돈을 벌어오라고 해, 일을 하라고 해. 너는 가서 그냥 노는 것도 못하니?" "학교에서 앉아서 공부하는 게 뭐가 힘들어? 사회 나와서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등등... 어른들의 레퍼토리...


아이는 엄마 아빠가 힘들게 일을 하고 있고, 돈을 버느라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만 4~5살 아이들도 다 안다. 엄마 아빠에게 단지 위로받고 싶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은 것이다. 이럴 때 부모는 아이 말에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말고, 설명하지 말고,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냥 아이 마음에 들어가서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된다. 그럼 아이는 새 힘을 얻는다. 나도 수고스럽다. 내가 제일 수고스럽다는 말로 괜한 투정도 부려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투정을 오롯이 받아주면 된다.


아이의 감정을 대하는 부모의 4가지 유형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감정 축소형, 감정 억압형, 감정 방임형, 감정코칭형. 아이의 수고스럽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듣거나, 무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그것은 감정 축소형 또는 감정 방임형에 해당할 것 같다. 여기서 혼을 내거나, 야단치거나, 가르치려 하면 이건 감정 억압형이 될 것 같다. 아이 감정을 축소, 억압, 방임하면, 아이는 부모에게 수용되지 못한 존재가 되고, 공감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좌절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부모님께 편안하게 내보이지 못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나는 아침에 아이를 꼭 안고서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로를 보았다. 그리고 등을 토닥토닥해주면서, "우진이가 제일 수고스럽다.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놀고, 밥 먹고, 선생님 말씀 듣고,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하루 종일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있으면서, 이 많은 것들을 혼자 힘으로 해내느라 참으로 수고가 많아."라고 말했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면서 빨리 옷을 입고 유치원에 가려고 했다.


아이는 평소 유치원 가는것을 좋아한다. 사교적인 성향이라 친구들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담임 선생님도 좋아해서 주말에 가끔 유치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밝고 사교적이라 괜찮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이 나름대로 힘들때가 있을 것이다.  5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서 스스로 밥을 먹고, 화장실 가는 것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그들만의 텐션도 있을 테다. 이에 따라,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도 있을 것이고, 또한, 선생님 훈계도 들어야  것이다.  모든 것들을 혼자서 해내고 있는 아이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도 있을 테고, 긴장도 하며,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모든  수고스러운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엄마 아빠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먹고, 다시 힘을 내서 바깥세상으로 나아간다. 아이도 어른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는 자기가 제일 수고스럽다.  세상 수고스러운 모든 이들에게 "오늘도 네가 제일 수고가 많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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