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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Feb 23. 2022

내 그림이 미국 잡지에 실렸어요

자기 효능감

샌프란시스코에 사시는 하련님이 미국 키즈 매거진 illustoria 그림 공모전을 작년에 알려줬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무심코 보냈고, 시간이 꽤 지나 잊고 있었는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그림을 채택되었고, 아이 그림이 실린 잡지를 집으로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그린 La Poule(닭) 그림이다. 비늘 달린 양, 털 달린 물고기처럼 실제 표피와 다른 질감으로 표현한 동물을 그리는 것이 주제였다. 아이의 닭 그림은 닭 털 대신 프랑스 신문을 오려서 붙였다. 종이로 된 닭 정도 되겠다.


illustoria 매거진 표지 및 안에 자신이 그린 닭 그림이 있는 페이지를 들고 찍은 사진 by 모니카


아이에게 너의 그림이 미국 잡지에 실렸다고 말했다. 평소 미국이란 나라는 강대국이며, 유명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고 알려줬기 때문에 익히 미국에 대해 아이는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핸드폰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묻길래 스티브 잡스라고 말해줬는데 그 사람은 어디에 살고 있냐고 묻길래 미국 사람이라고 답했다. 스파이더맨, 배트맨, 캡틴 아메리카, 슈퍼맨 등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다들 어디에 살고 있냐고 묻길래 이것도 다 미국이라고 말했다. 그런 대단한 나라, 미국에 내 그림이 실렸다는 것은 아이에게 크나큰 충격이자, 기쁨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자신감을 한층 얻은 듯 보였다.  


"우진아, 거 봐,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5살밖에 안됐는데, 너의 그림이 미국 잡지에 실렸잖아. 엄마도 못한 것을 네가 해냈어. 정말 대단해."


아이는 잡지책을 펼치더니, 연필을 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알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엄마, 나 미국 갈래. 미국 가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 영어 공부해야겠어."


작년 여름, 한국에 사시는 나연 님을 통해 알게 된 아동 그림 공모전에 그림을 보냈고, 채택되어 상장과 상품을 받은 적이 있다. 아이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받는 상이 었다. 제목은 파란 토끼였다. 희망을 상징하는 파란색. 아이는 그날 이후 자신감을 얻었다. 물론 이전에도 자신감이 있었지만, 자신이 무엇인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본 , 그림을 그리는 것을 더욱 좋아했고, 뭐든 자신감 있게 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파란 토끼가  것은 다름 아닌 자신감, 성취감, 자기 효능감이었다.  , 유치원에서 그려오는 그림들을 액자에 넣어 집에 일렬로 진열했다. 일명 우진 갤러리를 만들었다. 아이는 오며 가며 자신의 그림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나는 아이가 그림에서 상을 받았다고 해서, 아이에게 그림에 대단한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엄마들이 아이가 어떤 분야에 상을 받으면, 그 분야에 특출함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더 시키려 하거나, 아이보다 엄마가 더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부모들은 어린아이가 어떤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면 재능이 있는 거 아닐까 또는 혹시 천재 아냐라고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실제 영재들 중에서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욕심 때문에 고유한 영재성이 점차 사그라드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나는 아이에게 겉으로는 많이 북돋아주고 늘 응원하지만, 속으로 그렇게 내 아이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들은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누구나 대단함을 가지고 있다.   


파란 토끼로 인해 받은 상품인 마스크는 양가에 나눠드렸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자가 받은 상으로 마스크를 주변에 나눠주며 자랑하셨고, 특히 친정은 아이와 화상 통화할 때마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한마디 하셨다. 아이는 이를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조금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있다. 아이가 잘한 것에만 너무 치중하다 보면 '다들 내가 잘하니까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이가 뭔가를 잘했을 때 주의할 점은 그것에만 몰두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면 아이는 '내가 그림을 잘 그려서 엄마가 나를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상을 받고, 공부를 잘해야 이쁨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 앞에서 애쓰는 아이가 돼버린다. 부모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 그림을 잘 그려도 좋아하고, 못 그려도 좋아하고, 상을 받아도 좋아하고, 못 받아도 좋아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주 미묘하고, 적절한 지점을 찾아야 하며, 때론 복잡한 것이다.


어릴 적 친정엄마가 피아노를 직접 가르쳤는데, 어쩌다 보니 굵직한 콩쿠르에서 연속 1등을 2번 한 적이 있다. 엄마는 내가 피아노 천재인 줄 착각하시고, 그 후로 더욱 큰 꿈을 품고서, 피아노를 매일 연습시키셨다. 그 후로 2년 후, 나는 피아노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 당시 나는 피아노를 잘 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자신감, 자기 효능감이 전혀 없었다. 1등을 해도 내 실력을 믿지 못했다. 달리는 말처럼 그저 연습 또 연습. 내가 진정으로 잘한다는 느낌 없이 피나는 연습의 결과라고만 생각했다. 피아노 콩쿠르 본선에서 탈락한 적이 있는데, 엄마는 실망한 나머지 나를 매몰차게 대했다. 그때 엄마의 눈빛과 분위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을 보면 아이는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크게 다가와 뇌리에 박힌다. 그만큼 아이에게 엄마는 강력한 존재다. 그 당시 친정 엄마가 "못해도 괜찮아. 떨어질 수도 있지. 나보다 네가 더 속상할 텐데 괜찮아."이렇게 말해 줬다면 어땠을까? 못해도 괜찮고, 잘해도 괜찮은 우리 딸. 욕심을 내지 않고 편안하게 해 줬다면 피아노를 계속 쳤을까? 특히 예술 분야는 강요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연습도 필요하지만 진짜로 내가 즐기고 즐겁게 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상을 받고, 매거진에 그림이 실리는 것을 통해 "나도   있구나. 하면 되는구나. 다른 것도 자신 있게 한번 해볼까?  자신이  괜찮은 사람인가 보다."  정도 느낌가져가길 바란다. 자기 효능감, 자존감, 자신감, 성취감, 만족감 이런 단어들이 어릴  중요하다고들 한다. 이런 감정들은 실제 어떤 것을 스스로 성취를 했을 , 느낄  있을  같다. 나는 아이가 어릴  이런 긍정의 감정들을 다양하게 느낄  있도록 해주고 싶다. 덧붙여 '너는   있다' 메시지를 넌지시 던져주면 긍정 효과는 배가 된다. , 말을 너무 많이 하면  된다.


아이는 단번에 자신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영어 공부도 하겠다고 하질 않나, 어제는 방학이라 집에 있으면서 똑똑해지기 위해 텔레비전 시청을 줄이겠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놀라운 변화다. 사실 지금까지 식사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밥을 먹었다. 그런데 어제는 아이이게 처음으로 "밥 먹으면서 텔레비전 보면 안 똑똑해진대."라고 말했더니, 바로 행동을 교정했다. 나는 속으로 이번 방학을 기점으로 천천히 행동을 교정해봐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사실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 단박에 행동을 고쳐먹는 모습을 보고, 엊그제 미국 잡지에 자기 그림이 실린 것이 꽤나 큰 영향을 준 것 같았다.


나는 아이가 지금처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커서 화가가 되어도 좋고, 건축 디자이너라든지 관련 직업을 가져도 좋다. 또는 그림은 취미로 하로 전혀 다른 일을 해도 좋다. 아니면, 어릴 때는 그림을 그렇게 좋아하더니 점점 커가면서 그림을 싫어하게 돼도 상관없다. 지금  시기에 필요한 창의성, 자기 표현력, 상상력, 감수성 개발 등에 유익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스럽다. 나는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며,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취감을 맛보고, 그로 인해 자기 효능감을 충분히 맛볼  있다면, 어른이 되어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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