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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pr 01. 2022

문화 박람회라고 들어보셨나요?

3월 2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8시까지 뇌이쉬르센에 위치한 사블롱 극장(Théâtre de Sablons)에서 직역하면 문화 활동 포럼(Forum des activités culturelles)이 열렸다. 70개 이상의 협회 및 기관에서 나와서 업체 소개를 한다. 이 업체들은 바로 각종 악기, 그림, 외국어, 체스, 댄스, 만들기 등등을 배우는 곳이다. 굳이 한국으로 치자면 학원 박람회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학원이란 곳을 쉽게 보지 못해서, 이번 기회에 어떤 곳이 있으며, 어떤 프로세스로 등록하고 학습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모든 프로그램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고, 사전 등록을 해야 한다. 


신랑이 차로 데려다줬다. 야외 광장에는 체스를 할 수 있도록 설치해뒀다. 사블롱 극장은 종합 문화 센터라고 보면 된다. 이전에는 은퇴 주택으로 사용된 건물이었다. 1864년 5월 16일 Sainte-Anne 양로원이 문을 열었고, 자선 수녀회가 운영했던 이 시설은 혼자 살 여유가 없는 노인 여성을 환영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고 한다. 1981년 문을 닫았고, 1990년대 중반 뇌이쉬르센 시에서 이 건물을 구입했다. 2008년, 역사적 기념물로 남길 만한 주요 파사드와 예배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은 철거 작업을 통해 새롭게 공사에 착수했다. 음악당, 공연장, 전시실, 활동실로 사용될 공간을 현대식으로 새롭게 꾸몄다. 무대 장비도 모두 최고급 현대식으로 구비됐다. 주요 공연장 및 리셉션 홀 천장은 유리로 설치해서 하늘이 보일 수 있도록 했다. 2010년, 화가이자 시각 예술가인 Ruben Alterio와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Nicola Borella로 구성된 듀오팀은 극장, 음악, 시각 예술을 중심으로 사블로 극장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했다. 야외에 정원같이 잘 꾸며진 식물 사이사이 예쁜 등이 수놓아져 있었다. 밤에는 이 전등에 불이 일제히 켜진다는데 야간에 와서 보면 정말 이쁠 것 같다. 


(좌) 사블롱 극장 전경 (중) 광장에 시민들이 많다 (우) 문화 박람회 프로그램 by 모니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거의 미로에 가까웠다. 매우 현대적이고, 깨끗했지만 어디가 어디인지 도통 찾아갈 수 없게 설계되어 있었다. 익숙해지면 쉬울지는 모르지만 처음 온 사람들은 매우 헤매기 쉬운 구조였다. 3층에 있는 교실에 들어섰다. 발레 수업을 하는 곳인지 벽면이 유리로 되어 있고, 발레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천장에는 오디오가 붙어 있었고, 방음 시설도 좋았고, 조명도 좋았고 프랑스에 이런 현대식 건물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10시부터 10시 반까지 하는 만 4세~6세 대상 댄스 수업에 참가했다. 8명 정도의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이 함께 참여했다. 선생님은 동작 하나하나 천천히 설명하면 몸을 움직이고, 자신의 몸을 탐색하고 관찰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듯했다. 후반부로 넘어가니 개구리, 새 등 동물의 움직임을 함께 따라 했다. 아이들은 매우 좋아했다. 10시 45분쯤 끝났다. 학부모들은 업체에서 나온 선생님께 향후 수업 등록 등에 관해 문의를 했다. 


(좌) 맥도날드 해피밀 먹는 우진 (중) 댄스 수업 중 발레 동작 (우) 음악 수업은 취소가 됐다 by 모니카


그다음 사전 등록해 둔, 영어 수업에 참가했다. 8~9살 정도로 보이는 2명의 아이가 선생님께 수업을 받고 있었다. 생각보다 영어 수업에 사람들이 없었다. 그 아이들 수업이 끝나자, 우진이한테 일대일로 수업을 해줬다. 수업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다. 그냥 종이 한 장 펼쳐놓고, 너의 이름이 뭐니? 몇 살이야? 무슨 음식 좋아해? 등 간단한 문장으로 질문을 했고, 아이는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스티커 및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Maison de la famille de Neuilly 소속의 영어 선생님이자 여행 가이드라고 했다. 영어권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는 것 같았다. 하시는 말씀이 발음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무리 맞는 문장을 사용해도 발음이 좋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악센트가 심한데 프랑스 악센트로 영어를 하면 못 알아듣는다며, 엊그제 베르사유 궁전 가이드를 했는데, 옆에서 다른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하는데 자신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며 발음을 강조했다. 


나는 기자 정신이 순간 발동해서 그녀에게 인터뷰를 했다. 

나: 아주 개인적인 의견인데요, 프랑스인들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영어 구사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정말 그렇나요? 


그녀: 네,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프랑스 공교육에서 문법과 독해 위주 수업 방식 때문입니다. 회화 위주의 수업이 부족해요. 


나: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은 자국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편인 것 같아요. 이전에 UN 공용어가 프랑스어였던 만큼 프랑스어가 세계 언어이기도 했던 적이 있는데, 점점 미국이 부상하면서 영어에 많이 밀린 것 같아요. 프랑스는 그때 그 시절을 잊지 않고, 프랑스어를 강조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듣고, 보고, 경험한 것을 근거로 말씀드려요.


그녀: 그 말도 맞아요. 프랑스어는 아프리카, 퀘벡 등을 비롯해서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많이 쓰이고 있으며, 더욱 확장하려고 하고 있지요. 하지만 영어가 글로벌 언어인 이상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나: 프랑스에서는 몇 살 때부터 영어 교육을 시작하나요? 제가 보고 경험한 바에 따르면, 만 3세~5세 유치원 아이들 중에서는 영어 공부하는 아이들을 거의 못 봤어요. 한국은 이 나이 때 아이들도 영어를 공부하곤 하거든요. 이곳 유치원에서는 영어 공부는 따로 없고, 물론 선생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요. 저희 아이 담임 선생님은 영어를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금요일마다 잠깐씩이라고 영어를 가르쳐주시긴 하는데, 다른 반은 안 그렇더라고요. 부모들도 아이들이 모국어를 우선 잘 배우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물론 몇몇 부모들은 영어 공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소수인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는 영어 교육이 있나요? 


그녀: 네, 여기는 유치원에서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아요. 말씀하신 대로 선생님 재량에 따라 달라요. 초등학교 때부터는 영어 수업이 있어요.  


나: 한국은 영어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프랑스는 안 그런 것 같아서 처음에 조금 놀랬지요. 


그녀: 지금 이 나이 때 아이들은 영어 공부라고 해서 대단한 것을 하기보다는 영어로 노래하고, 회화 위주로 수업을 해요. 대게 2개 이상 언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은 3개, 4개 언어까지도 비교적 쉽게 배우더라고요. 우리 반에 5개 국어 하는 아이가 있는데, 2개 이상하면 외국어를 확실히 더 빨리 배워요. 아이는 몇 개 국어 하나요?


나: 한국어, 프랑스어를 하고, 영어는 조금만 할 줄 알아요. 


그녀: 계속 노출시켜주다 보면 다른 언어도 쉽게 배울 수 있을 거예요. 


가볍게 아이 영어 수업 들으러 왔다가, 인터뷰를 해버렸다. 내가 궁금한 것들이기도 하지만 다른 부모님들도 궁금해할 것 같아서 이렇게 글로 남긴다. 그래, 모국어가 탄탄해야 한다. 그다음 두 개, 세 개 언어로 천천히 자연스럽게 확장해나가면 된다.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즐겁게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영어 유치원을 보내서 너무 어린 나이에 영어를 가르치는 면이 없지 않은데, 프랑스는 모국어 중심의 교육을 한다. 천천히 영어를 접한다. 그녀 말처럼 회화보다는 문법과 독해 위주 수업도 영어 구사력 저하에 한 몫하겠지만, 내 의견으로는 프랑스인들의 사고방식이 더 큰 영향이 있지 않나 싶다. 그들은 무조건 미국에 대해 우호적이지도 않고, 영어를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처럼 열정적으로 영어 영어 하지 않는다. 자기 나라 안에서도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고, 자국 내에서도 여행할 곳이 많으며, 자국 내에서 평생 살다 이 세상을 하직해도 괜찮을 만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눈을 돌리거나, 다른 나라 언어를 꼭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비교적 약한 것 같다. 물론 젊은 세대들은 영어를 배우고, 영어 구사력도 높고,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만, 구 세대들이 그렇다는 얘기다. 이 또한 내 의견이고 내 생각이라는 점을 참고해주시면 좋겠다. 


오후 2시에 성인 수채화 수업을 등록했다. 이것은 나를 위한 수업이었고, 중간에 2시간 정도 시간이 비어서 야외로 나갔다. 체스판이 한창이었다. 우진이는 처음 접해보는 체스를 해보고 싶어 했다. 팸플릿을 보니, 곧 다가오는 부활절 방학 기간 체스 수업 프로그램이 나와있었다. 이틀 수업에 100유로(한화 약 13만 원)이다. 하루에 3시간 수업이다. 11살 형이 우진이 앞에 앉아서 체스를 가르쳐줬다.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그 형아가 너무 고마웠다.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게임을 즐기고 싶었을 텐데 전혀 모르는 한국인 5세 꼬마가 앞에 앉았으니... 설명을 차근차근 잘해줬다. 우진이는 알아듣는 모양인지 집중해서 귀담아 들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그 형은 "아이가 빨리 이해하네요! 브라보!"라고 했다. 나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던데, 관심 갖고 잘 알아듣는 우진이가 대견했다. 현장에서 든 나의 생각은 이렇다. '역시 아이들은 빨리 배운다. 놀면서 배운다. 게임을 좋아한다. 같은 또래 친구 또는 형들을 통해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알려줬으면 이렇게 진지하게 듣지 않았을 텐데...' 역시 부모가 가르키는 것과 다른 사람이 가르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험했다. 


형아는 떠났고, 이제 엄마 차례라며 앉아보라며 자기가 알려주겠단다. 나는 뜨거운 햇살 아래, 관심도 없는 체스게임을 하고 있으려니 주리가 뒤틀렸다. 아이가 신이 났을 때는 연극하며 좀 받아줘야 하는데, 도통 체스에는 흥미가 안 났다. 억지로 듣고 게임을 겨우 따라갔지만 내심 힘이 들었다. 나이 많은 저질 체력 엄마여... 마침 다른 아이가 다가왔고, "안녕! 체스할래?"라고 물었다. 둘은 체스를 했고, 표정은 둘 다 사뭇 진지했지만, 잘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체스 학원 선생님은 금메달과 상품으로 물총을 주셨다. 우진이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좌) 체스판이 한창 (중) 11살 형아 덕분에 체스를 처음 배워보는 우진 (우) 큰 체스 by 모니카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맥도널드에 가서 해피밀을 주문했다. 이전에 맥도널드 햄버거 사건 이후, 패스트푸드는 사 먹지 않았다. 그전에도 아이에게 패스트푸드를 사 먹인 적이 거의 없다. 오랜만에 간 맥도널드에 주문도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직원한테 하는 게 아니라 기계에 주문을 하며 자동으로 티켓이 나오는 방식이었다. 4유로 해피밀 구성이 꽤나 괜찮아서 놀랬다. 적은 양으로 다양하게... 아이들 입맛에 꼭 맞춘 메뉴. 그리고 장난감까지.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야외에서 감자튀김과 너겟을 먹고 있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갑자기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친정 엄마가 내 생일 파티를 맥도널드에서 하게 해 주셨다. 그 당시 맥도널드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때라, 미국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생경했다. 10명 정도 아이들을 초대해서 맥도널드 백 스테이지 체험을 했다. 뒤에 냉동고에 들어가서 식품이 어떻게 운반되어 오고, 음식을 만드는지 하루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이가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친정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그 당시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주려고 하셨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다 가능한 일이었다.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기는 커녕, 이를 당연시 여기거나 오히려 학원을 많이 다녀서 불만을 갖기도 했던 나를 반성한다. 다 먹고 나서, 성인 수채화 반에 참가했다. 그림을 그리는 건 줄 알았는데,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수채화에 대한 설명을 하는 시간이었다. 수채화 화가이며, 여러 권의 그림책도 내셨다. 여행한 곳들을 그림으로 많이 남기셨다. 그다음 음악 수업으로 갔는데, 취소가 됐다. 


연극 및 피아노 연주, 어린이 합창 등 다양한 콘서트도 진행됐다. 지하 박람회장에는 70개 업체가 부스를 만들어서 홍보를 하고 있었다. 뇌이쉬르센 콘서바토리 부스에 갔다. 6월부터 등록을 시작하며, 9월부터 수업이 시작된단다. 수업은 1년 단위로 진행된다. 비용 지불은 3차례 나눠서 할 수 있다. 아이는 곧 만 6세가 된다. 이제는 예체능을 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악기도 하나쯤 배우면 좋겠고, 운동도 하나쯤 하면 좋겠다. 6월 등록 시작이라고 하니, 아직 조금 시간이 있다. 시청에서 마련한 문화 박람회 덕분에 프랑스 학원 시스템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한국처럼 언제든지 원할 때 들어갈 수도 없고, 월별로 수강료를 내고 다니는 시스템이 아니다. 사립 학원보다는 시와 연계해서 보조금을 받고 활동하는 협회 개념의 문화 센터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좌) 콘서바토리 홍보 부스 (우) 박람회 현장 (우) 극장을 싹 비워서 70개 부스로 채워졌다 by 모니카


아이는 체스에 빠져서 체스를 더 하고 싶어 했다. 시계가 오후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이곳에 있었다. 저질 체력인 나는 거의 녹초가 됐다. 걷기도 힘들고, 말도 안 나왔다. 신랑이 왔고, 세 명은 다 같이 집으로 향했다. 최근에 발견한 꽤 괜찮은 빵집에 들러서 에끌레어와 브리오슈 푀테이를 샀다. 아이는 길을 가면서 에끌레어를 말 그대로 번개같이 먹었다. 가다가 C네를 우연히 만났다. 우진이는 C에게 목에 건 체스로 받은 금메달을 높이 치켜들며 자랑했다. 곧 있을 생일에 보자며 헤어졌다. 아이는 하루 종일 놀고도 더 놀고 싶은지, 생 잠 공원 놀이터에 들러 더 놀겠단다. 엄마는 체력이 방전됐으니, 아빠랑 둘이 놀다 오렴. 하루 종일 진행된 프랑스 문화 박람회 일일 체험 알차게 했다. 


(좌) 연주회장으로도 사용되는 예배당에서 아이들이 합창을 한다. 천사들의 합창이다 (중) 어릴적 달타냥이 생각났다. 연극 시라노의 한 장면 (우) 성인 수채화 수업 by 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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