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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Dec 30. 2022

정신건강에 관심이 많아요

정신건강이 안 좋으니까





저는 정신건강에 관심이 많습니다. 정신건강이 별로 안 좋
기 때문이죠. 한때는 정신과 병명을 열심히 모으기도 했습니다. 지금껏 겪은 어려움의 이유, 지금 당장 힘든 이유,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이유를 병명이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느꼈거든요. 간절한 나머지 병명이 제시하는 증상에 제 경험을 끼워 맞추거나 과장해 보기도 했습니다.(물론 이게 별 의미 없다는 건 금세 깨달았어요.)


진단이 내려질 정도인 '증상'의 범위는 넓은 듯 좁아요사람마다 '증상'과 비슷한 부분을 갖고 있기도 하고, 누구든 힘든 시기를 겪습니다. 정도가 심하거나 생활에 지장을 줄 때 '증상'이 되죠. 하지만 병원에서 증상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겪는 어려움이 환상인 건 아닌데, 그때는 그걸 몰랐습니다. 제가 몰랐던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코감기에 걸리면 누구나 콧물을 흘리지만 정신병이 나타나는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요. 아까 말했듯 증상의 범위는 좁아도 사람이 겪는 어려움은 천차만별입니다. 동반질환, 살아온 경험, 습관, 행동 패턴, 생각, 특성, 환경 등등, 그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가 전부 다르니까요. 


제가 병명에 집착했던 건 커다란 두부를 작은 반찬통에 욱여넣는 것과 비슷했어요. 반찬통에 들어가지 못한 부분은 숭덩 잘려나갔죠. 변화는 잘려나간 다른 부분에서도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부러 못 본 척하고 '(별 노력 없이) 당장 좋아질 수 있는 마술 같은 방법'을 찾았어요. 그래서 진단명을 받은 뒤로도 제가 원하던 '완벽한 설명'은 당연히 얻지 못했습니다. 완벽한 설명이 없으니 마술 같은 해결책도 없었습니다.







저의 첫 진단명은 기분부전증이었습니다. 얼마 뒤, 진단명이 양극성장애로 바뀌었습니다. 이게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이네요. 십 년은 긴 시간이죠. '내가 정말 양극성장애일까?' 하고 의심한 시간도 길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삽화를 겪은 지금은 겸손하게 인정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ADHD 진단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이 진단으로도 많은 수수께끼가 풀렸어요. 어릴 적의 온갖 이상한 행동들이, 엄마도 저도 이유를 몰랐던 행동들이 ADHD라는 줄을 따라 주르륵 정렬하는 듯했어요. 하지만 살면서 겪은 문제들과 저의 문제 행동들을 전부 ADHD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양극성장애도 마찬가지로, 파괴적이었던 사건들과 불안정했던 시기를 너무나 잘 설명해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저를 다 말하지 못합니다. 


아까는 두부였는데, 이번에는 여러 실이 얽힌 직물을 상상하면 어떨까요. 진단명은 저라는 직물을 직조하는 실 몇 가닥입니다. 이 실이 빨간색이라 해서 직물 전체를 빨갛다고 할 수는 없겠죠. 제 삶은 병명, 기질, 성격, 경험, 환경, 이 모든 것의 총합입니다. 병명은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증상'은 제 일부일 뿐이라는 걸 유념하려 합니다. 모든 문제를 ADHD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ADHD만 나아지면 될 것처럼 느껴져요. 양극성장애도 마찬가지고요. 불안장애도 그렇죠. 하지만 실제로 저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병명으로만 접근하려 하면 해결은 요원해지고 맙니다. 잘못 짜인 부분을 찾아서 고치려면 어디가 얽혀 있는지 찾아보고 여러 실의 교차점을 풀어야만 해요. 






지금까지는 병명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고 이야기했는데요, 여기서 손바닥 뒤집듯 엎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때 병명의 도움을 받을 수 있거든요. 병명은 굉장히 유용한 도구입니다.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일반인도 접근할 수 있는 정보와 영상이 정말 많아요. 이 사용설명서를 보고 실제로 푸는 건 저의 몫이지만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병명을 도구로 사용하되 정체성으로 삼지는 말자는 거예요. 병의 특징을 정체성으로 삼는다면 저는 퍽 무시무시한 사람이 됩니다. ADHD가 있고, 양극성장애도 있고, 불안장애가 있고, 트라우마가 있고, 회피형 성격이고, ACE 점수가 높고, 불안정애착이고, MBTI는 INTP고, 사주에 장성살이랑 역마살이 들어 있고....

...이렇게 나열된 것들을 보면 전 어떤 사람처럼 보일까요? 이것들이 다 합쳐진 사람은 대체 어떤 인간일까요? 어떤 사람을 떠올리셨든, 여러분이 현실에서 저를 만난다면 그래도 인상이 썩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전 괜찮아요. 뭐 어떡해요. 


조금 슬퍼졌지만 이제 직물의 마지막 실을 이야기할게요. 어쩌면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실일지도 몰라요. 바로 '환경'입니다. 개인의 심리적 문제에는 우리를 둘러싼 조건과 사회에도 원인이 있어요. 지금까지 실컷 병 얘기를 했지만, 전부 병 때문이라 말하는 건 이 커다란 영향을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바꾸기엔 무력하다고 생각하기에 모든 문제의 원인을 너무도 쉽게 자신에게 돌려버리는 것 같습니다. 환경이 바뀌어야 할 문제까지 우리의 책임으로 돌리며, 내 돈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해 버티라는 건 가혹하지 않은가요. 물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해결이 요원한 일들이 있습니다. 국제정세나 기후재난 같은 거요. 이런 일들은 수용하는 수밖에 없죠(단, 포기하지는 않고요). 하지만 사람이라든가 직장처럼 바꿀 수 있는 환경은 바꿔야 합니다. 어려운 이야기임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 주저하지 않기를 바라요.






저는 이 브런치에 제가 정신건강을 위해 사용했던, 또 사용하는 방법들을 써 보려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시도했던 방법들이에요. 양극성장애나 ADHD라는 주제를 잡아 쓰기보다는, 그냥 죄다 모아 놓을 작정입니다. 다소 일관성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저의 문제는 여러 원인이 직조한 결과물이니까 푸는 방법도 병명에 국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두서가 없어 보여도 어쩔 수 없어요. 이 묘한 결과물이 저인걸요.  


그리고 저는 의지가 허약하고 게으른 사람 중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전문가도 아니어서 유용한 정보를 전해드릴 수 없어요. 다만 제가 '그나마' 할 수 있었던 아주 작은 방법들을 쓸 생각입니다. 이지 모드 매뉴얼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것도 보는 분에 따라서는 '뭐야 어렵잖아'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저도 "침대에서 일어나세요"라는 글을 보면 "뭐야 어렵잖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쓰는 글은 예제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제 글에 "침대에서 일어나세요"라고 적혀 있다고 해서 똑같이 하실 필요는 전혀 없어요. 포인트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자체가 아니라, '내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일'이 무엇인지 궁리하는 데 있기 때문이에요. 거기에 제 경험이 힌트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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