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PI-2와 TCI, 문장완성검사 이렇게 세 가지 심리검사를 받았습니다. 일전에 TCI 검사만 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중간점검 차 세 가지를 세트로 받았어요. ADHD 치료도 1년에 가까워지고 있고 그간 이모저모 노력도 했으니까 긍정적으로 변한 부분이 있는지 수치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더 해결해야 한다고 느끼는 문제점이 타당한지도 확인하고 싶었고요.
결과는...
1. 아직 멀었다
2. 내가 생각하는 문제가 그 문제 맞다 (파국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다)
3. 상담 가라
...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1-2년에 한번씩 받아보고 변화를 체크할 생각이라서, 지금 결과와 해석상담 내용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이 글에 적는 설명은 모두 상담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결과지를 그대로 올리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나중에 읽는 저도 지겨울 것이 예상되지만 어쩔 수 없이 줄글로 씁니다.
다면적 인성검사II
이름은 '인성' 검사지만, 현재 심리상태를 여러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측정하는 검사입니다. 건강검진의 혈액검사와 비슷하다고 하네요. 수치에 따라서 '술 좀 줄여라'와 같은 잔소리를 들을 수 있대요.
결과지 첫 페이지에는 타당도 척도와 임상 척도가 나옵니다. '높음'을 따지는 항목별 기준 점수는 65점입니다. 타당도는 이 수검자가 검사에 솔직하게 응했는지를 보는 것으로, 저는 65점을 넘은 항목이 없으므로 검사 결과가 타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임상 척도는 점수가 많이 올라갈 경우 치료가 필요할지도 모를 항목들입니다. 저는 다 괜찮은데 Pt와 Si가 상승했습니다.
· Pt(Psychasthenia): 척도 7, 강박증
· Si(social introversion): 척도 0, 내향성
이 척도들의 이름은 검사 초기에 붙여진 거라서, 강박증이라고는 하지만 진짜 강박증보다도 특성불안을 뜻한다고 해요. 특성불안이란 타고나기를 불안을 잘 느끼게 태어났다는 거죠. 불안에 대한 감지가 예민합니다. 특성불안이 높은 것의 강점은 위험을 잘 피한다는 것이고, 단점은....... 그렇게까지 걱정 안해도 되는데 불편할 수 있다는 거예요. 평소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그렇고요. 선생님께서는 이걸로 병원에 가기보다는 불안을 야기하는 것에 빨리 대처해서 싹을 잘라버리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신과에서 특성불안 검사지를 풀어도 점수가 거의 언제나 탑을 찍는 불안 인간입니다^^ 살아 있는 경보기죠... 아마 도망도 잘 치고 위험을 잘 피한 덕분에 지금까지 이 유전자가 살아남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험할 거리가 별로 없는 현대사회에서는 다소 오작동이 심한... 그런 사람입니다.
혈액 검사를 한 다음 혈장만 다시 검사하는 정밀검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아래 척도들이 약간 문제가 됩니다.
· RCd(Demoralization):의기소침 (75점)
뭔가 엄청 안 좋아 보이네요. 하지만 이건 '경보등'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합니다. 무슨 경보인지는 다음 척도들에서 볼 수 있어요.
· RC2(Low Positive Emotions): 낮은 긍정 정서(75점)
이는 '기분 부전'을 말한다고 해요. 사는 게 재미가 없고, 즐거울 일도 없고, 늘 밍숭맹숭. 병원에 가면 기분부전장애로 진단이 나올 수 있대요.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즐겁지 않은 원인이나 이유를 찾아 해결해야 합니다. 해결을 하지 않고 방치하면 수치가 쑥쑥 올라 우울증이 되므로 중간에 끊어줘야 한다네요.
· RC4(Antisocial Behavior): 반사회적 행동(71점)
이것도 이름만 보면 무시무시한데, 반사회적 '태도'와 반사회적 '행동'은 다르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이건 '사고 치는' 경향을 말한대요.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술 먹고 소리지르거나 싸우는 걸 예시로 들어주셨어요. 찔리네요. 지금은 안 그러지만 과거에는 그랬기 때문에... 다행히 저는 현재 술을 거의 끊었습니다.
· RC7(Dysfunctional Negative Emotions): 역기능적 부정 정서(77점)
이 척도는 앞서 나온 Pt(강박증) 척도와 같은 것으로, 특성불안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름하고 실제 의미하고 매치가 안 되네요.
성격에 약점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저는 다음 척도가 상승했습니다.
· NEGE(Negative Emotionality/Neuroticism): 부정적 정서성/신경증 (72점)
불안을 뜻한다고 해요. 성격적으로도 불안에 취약한 것이죠. 불안할 만한 일이 있어서 감지기가 울렸다! 하면 빨리 해결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제가 주관적으로 호소하는 항목들입니다. 병원에 가서 '저 두통이 있어요', '배가 아파요'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대요. 특정 항목이 상승했다 해도 바로 병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증상인 거니까요. 원인은 제각각일 수 있대요.
그럼 제가 어떤 문제들을 힘들다고 호소하는지 볼까요.
· ANX(Anxiety): 불안 (78점)
예... 또 불안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이미 불안하네요"라고 하셨습니다.
· OBS(Obsessiveness): 강박성 (86점)
이건 강박적인 생각을 뜻한다고 해요. 고민, 또는 똑같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 또는 '행복하려면 ㅇㅇ해야만 한다'는 당위적 사고를 많이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강박적 생각이 불안을 높이게 된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상담을 받아서 푸는 게 좋다고 하셨어요. 이미 익숙해져서 스스로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를 수도 있고, 그러면 혼자서 빠져나가는 게 쉽지 않다고 하네요.
· DEP(Depression): 우울 (84점)
이것도 기분부전과 연관됩니다. 강박적인 생각이 불안과 기분부전을 자가발전한대요.
· LSE(Low Self-Esteem): 낮은 자존감 (76점)
네. 자신감이 없습니다.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실제로 능력이 없을 수도 있고, 능력은 있는데 현재 분야가 안 맞아서 그럴 수도 있대요.
· SOD(Social Discomfort): 사회적 불편감 (82점)
저는 대박 내향적입니다.
· WRK(Work Interference): 직업적 곤란 (71점)
일을 억지로 하고 있거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뭣 같거나, 아무튼 어떤 이유로 스트레스가 쌓여 있다고 합니다. 일 자체의 문제인지 인간관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해결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
· TRT(Negative Treatment Indicators): 부정적 치료 지표 (68점)
요건 뒤에 쓸게요. 부정적 치료 지표... 무시무시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건 아니었습니다.
개인의 약점, 강점, 개성, 특징 등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는 높은 점수만 해석했으나 이 척도는 낮은 점수도 해석합니다.
· A(Anxiety): 불안 (71점)
당연하죠? 저는 임상, 성격병리, 내용 척도 모두에서 불안이 높게 나옵니다. 그런데 보충 척도의 불안은 신체적인 걸 말한대요.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나는 등의 본능적인 불안이자 무기력한 불안이래요. 뭔가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불안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이해는 다 못했지만^^ 다 제가 겪는 신체 증상들이긴 합니다.
기분부전, 그리고 낮은 지배성과도 관련이 있대요. 불안을 통제할 수가 없고, 그러니까 기분이 안 좋아지고... 불안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뭐 그렇지', '어차피 안 될 거야' 같은 강박적인 사고 때문이고... 영구기관이야 뭐야.
· Do(Dominance): 지배성 (34점)
점수가 낮으면 지배를 못한다고 합니다. 뭘 지배하지 못하느냐... 바로 자신의 삶, 대인관계 등을 지배하지 못하는 거래요. 자동차를 자신의 인생이라고 친다면 운전석에 내가 앉아 있지 않은 겁니다. 어딘가로 끌려가도 내가 핸들을 틀 수 없어요.
※ 이외에 대학생활 부적응(82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73점), 결혼생활 부적응(58)은 셋이 동반상승했을 때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해석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혈액 검사 결과 콜레스테롤이 높게 나왔다고 쳐요. 그러면 왜 높은지가 중요하겠죠. 그걸 알려주는 파트라고 합니다. 임상 척도를 자잘하게 나눈 항목들이 있어요.
저는 아래의 항목들이 상승했습니다. 앞서 임상 척도에서 D(우울)은 별로 높지 않았는데, 임상 소척도에서는 걸리는 게 있었어요. 이 항목들이 엮여서 보여주는 것이 뜻밖에도 성장과정 중의 학대, 불우한 유년, 즉 지연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고 합니다.
D(우울): 59점
· D1(주관적 우울감): 68점
· D4(둔감성): 73점
· D5(깊은 근심): 72점
우울 자체는 높지 않은데 뜬금없는 애들이 높게 나왔습니다. D4(둔감성)은 '멍 때림'인데, 보통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경험한다고 합니다.
Hy(히스테리): 46점
· H2(애정 욕구): 39점
애정 욕구는 너무 높아도 낮아도 문제인데, 40점 이하면 애정 고갈 또는 애정 결핍이라고 부른대요. 비유하자면 비타민 같은 영양소가 부족한 상태라네요. 그리하여...
Pd(반사회성): 52점
· Pd5(내적 소외): 72점
이 점수가 높아졌습니다^^ 사랑을 못 받았으니 외롭다고 설명해 주셨네요.
Sc(정신분열증): 61점
· Sc1(사회적 소외): (67점)
· Sc3 (자아통합결여-인지적): 70점
· Sc4 (자아통합결여-동기적): 70점
Sc는 원래 '정신증'이라고 해서 놀랐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오히려 안심(?)이었습니다.
사회적 소외는 학대 경험이 있었을 때 올라가고, 자아통합결여는 그러한 상처가 있기 때문에 '멘붕'이 온 상태라고 하네요. 멘붕이라니ㅋㅋ
능력이 없다거나 원래 게을러서가 아니라, 상처가 낫지 않은 채로 계속 아파서 자기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해요. 또 저의 약점은 불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불안 장애의 하나라서 특히 외상으로 진행되기가 쉽다고 해요.
유년기 학대 외에 다른 외상 사건을 겪었을 때도 이렇게 나오냐고 여쭤봤는데, 비슷한 정도의 충격을 주는 사건이라면 가능은 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외상 사건을 겪은 사람에게 부모님이 보여주는 태도가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하네요.
상담을 통해서 확실하게 치료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까 내용 척도가 '주관적인 호소'라고 했는데요. 그 세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 검사에서 뭐라고 외쳤는지 볼까요...
DEP: 84점
· DEP1(동기 결여): 80점
의욕이 없습니다.
· DEP3 (자기 비하): 79점
'난 안 돼', '난 못할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 DEP4 (자살 사고): 83점
'힘들어 죽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ASP: 55점
· ASP2(반사회적 행동): 76점
ASP 척도에는 ASP1 (반사회적 태도)와 ASP2(반사회적 행동)가 있는데, 저는 반사회적 행동만 높습니다. 사이코패스의 경우 두 척도가 모두 상승하거나, 오히려 반사회적 행동 척도가 낮다고 하네요. 사이코패스와 저의 차이는... 사이코패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를 해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욱하고 화가 나서 실수를 합니다. 선생님이 '정상참작이 되는 거죠'라고 하셔서 울 뻔했습니다...
TPA: 66점
· TPA1 (조급함): 77점
성격이 급한 편이래요.(당연함 저는 ADHD임..)
성격도 급한데 불안하기는 불안하고, 근데 운전도 내가 안 하고 있고, 힘들고, 외롭고, 즉 저는 인생이 즐거울 리가 없습니다ㅋㅋㅋ
LSE: 76점
· LSE1 (자기 회의): 84점
이건 위에 나온 자기 비하랑 비슷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 비하는 능력에 대한 것이고, 지금은 '멘붕'이라서 능력이 발휘가 안 되는 거래요. 자기 회의는 '나 너무 못났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다기보다, 성장 과정에서 '내가 못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타박이나 핀잔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이렇게 됐을 확률이 높대요.
SOD: 81점
· SOD1 (내향성): 90점
MMPI가 인정한 찐 내향인 어떠세요.
TRT(부정적 치료 지표): 68점
· TRT2 (낮은 자기개방): 67점
부정적 치료 지표에서 점수가 조금 높았던 이유가 있는데요. 진짜로 치료 예후가 안 좋다기보다는 내향성이랑 연결된다고 합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기 개방을 잘 안 하기 때문이에요. 보통은 뭐가 있으면 '나 힘들어용ㅠㅠ'하고 말해야 주변에서 알고 도와주는데, 저 같은 사람들은 말을 안한다는 거죠. 선생님은 물에 빠졌을 때를 비유로 드셨습니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 살려달라고 해야 사람들이 와서 구해주잖아요. 하지만 저는 말을 안 해서 사람들도 '음 수영할 줄 아나보다' 하고 지나간대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빨리 상담받으라는 말을 또 들었습니다ㅋㅋㅋㅋㅋ
그럼 MMPI의 해석상담을 요약하고, 제 실제 상황을 더해서 써 볼게요.
1. 특성불안이 높다. 강박적인 사고가 불안과 우울을 자가발전하고 있는데, 스스로는 어떤 사고가 문제인지 알기 어려우니 상담에 가라.
이건 제가 정확히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강박 사고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미루는 습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버릇이라서 예전 심리상담 때도 많이 다뤘던 거거든요. 젠장 뭐가 또 있지... 역시 혼자서는 어렵네요.
2. 어릴 때 겪은 학대(지연성 PTSD)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외상 때문에 '멘붕'인 상태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상담에 가서 성장과정을 쭉 훑고 매듭을 풀어라.
제가 거의 20회기 넘는 심리상담 동안 했던 작업이 이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번 검사 결과에도 나왔으니 아직 해결 못한 부분이 있다는 거겠죠. 그런데 사실 상담을 다시 시작하려고 저번주에 상담소에 방문했었어요. 그때 제가 들고 간 문제가 몇 가지 있는데, 상담 선생님께서도 어릴 때의 학대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반사회적 행동'도 정확해요. 상담소에 울컥 화 내는 문제도 들고 갔거든요... (상담 선생님께서는 트라우마 노출 치료를 권하셨습니다)
저는... 상담을 또 받아야겠군요^^ 돈을 모아야겟어요.
MMPI의 내용이 길어졌으니 TCI는 다른 글로 나누겠습니다.
참고로 문장완성검사도 심리검사 해석에 반영되어 있지만, 세세하게 말하면 제가 각 문장이 제시된 의미를 알게 되고... 그러면 다음에 검사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오염되기 때문에) 생략한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