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텍스트의 힘, 다시 읽고 쓰는 시대

텍스트의 힘, 다시 읽고 쓰는 시대

by 김용년

텍스트의 힘, 다시 읽고 쓰는 시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이미지와 영상을 스쳐 지나간다. SNS 피드에는 짧고 자극적인 영상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10초 이내에 소비되지 않으면 주목받기 어려운 콘텐츠가 대세를 이룬다. 그런 가운데, 활자를 기반으로 한 문화는 점점 뒤로 밀려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활자 문화는 지금 다시 부활하고 있다. 오히려 젊은 세대가 앞장서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이를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텍스트를 읽고 쓰는 것이 ‘힙’한 행위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이것은 우리가 디지털 피로감 속에서 더 깊은 사고와 의미를 찾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현상일지도 모른다.


‘텍스트힙’ 열풍, 활자를 다시 주목하다


이러한 현상은 ‘텍스트힙’이라는 신조어로 표현된다. ‘텍스트’(Text)와 개성 있고 쿨하다는 의미의 ‘힙’(Hip)이 결합된 단어로, 활자 문화를 새로운 감각으로 즐기는 젊은 세대의 태도를 반영한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필사를 하며 이를 SNS에 인증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SNS에서 ‘북스타그램’이라는 태그를 검색하면 600만 개 이상의 게시물이 쏟아진다. 젊은 세대는 책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문장을 공유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며 소통한다. 1년에 목표한 책 권수를 정해 독서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필사 노트를 만들어 직접 손글씨로 글귀를 남기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영상과 이미지 중심의 콘텐츠가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텍스트는 오히려 신선하고 차별화된 방식으로 다가온다. 짧고 가벼운 정보가 주를 이루는 시대에, 깊이 있는 사고와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텍스트 문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이 ‘힙’해진 이유


텍스트힙 열풍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먼저, 젊은 세대는 항상 자기만의 문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영상과 이미지가 익숙한 세대일수록, 오히려 활자를 통한 소통이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또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는 자기 계발과 지적 성장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킨다. SNS에 독서 기록을 남기는 것은 단순한 인증이 아니라, 자신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책을 읽으며 쌓아온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자기표현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게다가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도 크다. 아이돌이나 배우들이 추천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유명인이 읽은 책을 따라 읽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브의 장원영이 유튜브에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추천하자 이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배우 한소희가 읽은 800페이지짜리 철학 서적 ‘불안의 서’가 출간 10년 만에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은 출판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출판사들은 단순한 내용뿐만 아니라, ‘책꾸(책 꾸미기)’ 열풍에 맞춰 책 표지를 감각적으로 디자인하거나, 필사를 유도하는 레이아웃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텍스트 기반의 새로운 SNS와 독서 플랫폼의 성장


텍스트힙 열풍은 SNS 플랫폼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진과 영상이 주를 이루던 SNS 시장에서 다시 텍스트 기반의 플랫폼이 인기를 얻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이버 ‘블로그’다.


블로그는 오랜 역사를 가진 플랫폼이지만, 최근 1020세대를 중심으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2022년 1월, 네이버 블로그를 사용하는 10대 이용자는 35만 명이었지만, 2023년 말에는 58만 명으로 급증했다. 20대 이용자 수도 같은 기간 75만 명에서 98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는 젊은 세대가 짧고 빠른 정보가 아닌, 더 깊이 있는 기록과 사유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블로그에서는 긴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며, 영상 편집이나 화려한 연출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더 진솔한 자기표현이 가능하다.


또한, 텍스트 기반의 SNS 앱 ‘X’(구 트위터)와 ‘스레드(Threads)’도 이용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짧은 텍스트로 생각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영상과 이미지보다 ‘글’을 중심으로 한 소통이 활발하다.


독서 모임과 오프라인 활동으로 확산되는 텍스트힙


텍스트힙 열풍은 단순한 온라인 문화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독서 모임에 참여하며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독서 모임 플랫폼 ‘트레바리’는 대표적인 사례다. 2015년 시작된 이 플랫폼은 최근 2030 세대를 중심으로 가입자가 급증하면서 누적 회원 수 11만 명을 돌파했다. 독후감을 써야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의무 독후감 제출’ 시스템과,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지적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독립 서점을 찾아다니는 ‘책방 투어’도 인기다. 단순히 책을 사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고, 함께 글을 쓰는 활동을 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읽고 쓰는 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텍스트힙 열풍은 단순한 유행일 수도 있다. 젊은 세대는 새로운 트렌드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또 빠르게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읽고 쓰는 행위’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고 싶어 한다. 영상이 아무리 발달해도, 텍스트가 주는 깊이 있는 사유의 과정은 다른 어떤 매체로도 대체될 수 없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단순한 지적 활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텍스트힙 열풍은, 단순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더 깊은 소통을 나누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려는 움직임이다. 영상과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에도, 활자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우리는 지금, 그 힘을 다시 발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YouBook 유북 : 인간관계의 기술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경영자 리더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