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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insight Oct 11. 2023

잘못된 트랙은 없어...
새로운 트랙만 있을 뿐

결혼을 추천하며~~

엊그제가 결혼기념일이었다. 2000년에 결혼했으니 23주년이다. 잘 견뎠다? 이건 좀 아닌 것 같고... 수고했네? 이것도 좀 맘에 안 든다. 결혼 23년 차가 들어야 할 결혼 기념 인사는 뭘까? 울 딸이 그걸 새벽에 들어오며 해준다. '결혼 축하해요!'  


결혼을 참 빨리 결정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요새 29살은 아장아장 아가인데 그때는 그 나이에 결혼 안 하고 있으면 하자 있는 여자 취급하기 일쑤였다. 난 나름 전문직에 종사했고 자부심도 있었는데 29라는 숫자에 맘이 급해졌다. 내 이상형, 북극곰을 만나자 앞뒤 안 가리고 5개월 만에 결혼했다. (동생들에게 북극곰 같이 생겼다고 했는데 만나보더니 북극곰은 무슨, 우루사구먼... 그랬다.ㅠㅠ) 


사실 이 결혼을 해야 하나 고민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내 글은 순도 100%를 지향하기 때문에 시댁 블러처리 이런 건 안 하려고 한다.) 어머니와 남편이 언성을 높이며 내 앞에서 싸웠다. 우리 집에서 전혀 본 적 없는 강도의 싸움이었기에 그날 받은 충격은 며칠을 갔다. 이런 집에 시집가도 되나... 저런 시어머니 괜찮을까? 그런데 어이없게도 인생 최대의 결정 앞에서 내가 한 생각은 '청첩장 다 돌렸는데...'였다. 엄마, 아빠의 체면과 사람들의 구설에 오르내릴 일이 먼저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너무 극성맞은 엄마 밑에서 자란 남편감이 너무 불쌍했다. 거기서 또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데... '나 아니면 이 사람 결혼 못할 것 같다'는 오지랖을 떨었다. 그렇게 나는 북극곰, 아니 우루사와 결혼을 했다.  




23년 전 내가 참 짠하고 안쓰럽다. 엄마, 아빠의 체면 보다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다른 이들에게 피해 주면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아니 그렇게 했어야 했고,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치기 어린 생각으로 중요한 결정을 서두르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23년 전 결정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반성한다고 말하고 싶다. 딸들에게는 가르치고 싶다. 결혼을 결정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남편감, 혹은 시댁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발견했다면 주저 말고, 절대 엄빠의 체면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존중하라고. 나의 모든 센서가 경고등을 보내고 있었는데 애써 무시한 것을 '반성'한다. '후회'라는 단어는 쓰고 싶지 않다. 


반성과 후회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는데 뭐 둘이 비슷하다. 그런데 뉘앙스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반성에는 왠지 건설적인 무엇이 묻어있고, 후회는 부정적인 냄새가 난다. 후회는 뉘우침인데 반성은 돌이켜 봄이다. 후회는 왔던 길을 바라보고 있는데 반성은 앞으로 갈 길을 보고 있다. 여태 결혼을 잘 못한 것처럼 떠들다가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니 낱말 뜻풀이가 길어졌다. 지금도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남편과 사는데 결혼을 후회한다고 하면  좀 미안하지 싶다. 




결혼기념일 즈음에 반성, 후회 운운하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결혼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남기고 싶어서이다. 벚꽃 흩날리는 따듯한 봄날도 있었고 살을 에는 추운 날도 있었다. 뻥 뚫린 10차선 도로를 달릴 때도 있었고 맨발로 음침한 골짜기를 헤맬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강해졌고 어른이 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비를 경험했고, 그 '유'들이 나를 사랑해 준다. 가장 중요한 건 사랑받으니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많이 지혜로워졌다. 23년 전의 결정이 미숙한 결정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 경주에서 잘못된 트랙은 없다. 새로운 트랙만 있지.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앞으로 더 행복하게 기쁨을 선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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