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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버(Beaver): 우울증과 자살의 문제

by 정영기

여행의 초대 – 트렁크 속 비버 인형과 마주하는 순간


안녕하세요, 오늘도 삶이라는 미지의 땅을 탐험하는 여러분께 특별한 여정을 제안합니다. 혹시 차 트렁크를 열었을 때, 인생의 전환점이 숨어 있을 거라고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오늘 우리가 함께할 영화는 2011년 조디 포스터 감독의 작품 <비버(The Beaver)>입니다. 멜 깁슨이 연기한 주인공 월터 블랙은 성공한 장난감 회사 CEO였지만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우연히 트렁크에서 낡은 비버 인형을 발견하며 철학자 야스퍼스가 말한 '한계상황'의 문을 두드립니다. 한계상황은 부딪혀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벽입니다. 바다 위에 배가 암초를 만나 난파당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 비버는 쥐와 같은 설치류 동물입니다.


야스퍼스는 "죽음, 고통, 죄책감 같은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처해 좌절한 사람들에게 보이는 상징이 있다"고 말합니다. 트렁크 속 비버 인형은 월터에게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라는 상징이었습니다. 이제 그가 본래적 자아를 찾기까지의 여정에 함께해 보시겠어요?


출발역 – 우울이라는 이름의 기차


월터 블랙은 인생의 모든 역을 지나쳐 버린 기차처럼 우울증의 끝없는 터널에 갇힌 남자입니다. 영화는 월터가 자살을 시도하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완벽했습니다. 성공한 장난감 회사 CEO, 아름다운 건축가 아내 메레디스(조디 포스터)와 두 아들이 있었죠. 하지만 월터는 2년 넘게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며 점점 자신을 잃어갑니다. 회사는 무너졌고, 아내는 그를 떠났으며, 아들 포터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닮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의 방에는 수많은 시계가 시간을 재고 있지만, 정작 월터 자신은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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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는 자살시도에 실패한 후 어느날 우연히 자동차 트렁크에서 비버 인형을 발견한다. 이 우연한 만남이 그의 삶을 바꾸게 된다.


야스퍼스는 이런 상태를 '대기실에 갇힌 실존'이라 설명합니다. 월터는 마치 기차표도 없이 역을 방황하는 승객처럼 '과거의 성공한 CEO'와 '현재의 무기력한 남자' 사이에서 진짜 자신을 찾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죠.


철학의 역 – 비버 인형, 가면 뒤에 숨은 외면적 자아


트렁크에서 건진 비버 인형을 손에 끼우는 순간, 월터는 '비버'라는 새 정체성을 창조합니다. 영화에서 월터는 알콜을 마시고 잠든 후 깨어났을 때, 비버 인형이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인형을 통해 유쾌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는 마치 무대 위에서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 같습니다.


월터는 비버를 통해서만 대화하기로 결정하고, 자신이 쓴 처방전을 가족과 동료들에게 보여줍니다. 그 처방전에는 "월터 블랙은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으며, 비버 인형은 그를 치유하기 위한 심리적 도구"라고 적혀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외면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가 공존합니다. 외면적 자아는 사회가 원하는 모습,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이며, 내면적 자아는 상처와 불안, 진짜 욕망이 담긴 본래의 자신입니다. 이상적으로는 이 두 자아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월터는 비버 인형이라는 극단적 외면적 자아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비버는 처음에는 월터를 구원합니다. 비버를 통해 월터는 어린 아들 헨리와 다시 연결되고, 장난감 회사에 돌아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비버 목공 키트'라는 장난감으로 회사를 되살리는데, 이 장난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월터 자신처럼 새로운 정체성을 만드는 도구입니다. 인형을 통해 가족과 다시 대화하고, 회사도 살려내죠. 그러나 가면은 점점 주인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메레디스는 처음에는 월터의 변화를 받아들이지만, 점차 비버가 떠나지 않는 상황에 불안해합니다. "난 네가 아닌 비버와 대화하고 싶어"라는 대사처럼, 외면적 자아인 비버가 내면적 자아인 월터를 압도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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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 – 자신에게 돌아가는 고통의 통로


비버는 점점 더 월터의 삶을 잠식해 갑니다. 비버와 월터 사이의 정체성 투쟁이 심화되면서, 월터는 점점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갑니다. 비버 없이는 말하지 못하게 되고, 거울을 보면 비버만 보입니다. 처음에는 도움을 주던 외면적 자아가 이제는 내면적 자아를 완전히 덮어버리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메레디스는 월터에게 비버를 떠나라고 요구하고, 월터는 이를 시도합니다. 괴로운 심정의 월터는 비버 인형을 제거하려 하지만, 인형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저항합니다. 쓰레기통에 버리려 해도, 불에 태우려 해도 실패합니다. 이는 깊숙이 자리 잡은 정신적 방어기제를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상징합니다.


결국 월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전기톱으로 자신의 팔을 잘라 비버 인형을 떼어내는 것이죠. 이 충격적인 장면은 영화의 전환점입니다. 월터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비버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야 하는 과정을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자아 회복을 위한 고통의 수용을 상징합니다. 월터는 육체적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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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퍼스가 말하는 '한계상황을 통한 각성'이 바로 이 순간에 구현됩니다. "가면을 벗는 건 피부를 뜯는 것만큼 아파" 이 고통의 순간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철학의 길 – 자아의 조화를 찾아서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내면과 외면은 조화를 이루고 있나요?" 완벽한 부모, 무결점의 직장인, 늘 유쾌해야 하는 친구라는 가면...


한편, 영화에서는 월터의 아들 포터(안톤 옐친)의 이야기도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대학 에세이 대필로 돈을 버는 포터는 아버지를 닮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결국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대신 써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도 자신만의 '비버'를 갖고 있는 셈이죠. 포터는 인기 있는 치어리더 노라(제니퍼 로렌스)의 에세이를 쓰면서 그녀의 슬픔과 진실된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외면적 자아에만 의존하면 결국 비버처럼 우리의 진짜 모습을 압도하고 잠식하게 됩니다. 반대로 내면적 자아만 중시하면 월터의 초기처럼 고립과 우울에 빠질 수 있죠.


야스퍼스는 이런 가면을 벗어던지는 행위를 '실존적 자유의 실현'이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팔을 자르는 것과 같은 고통을 감수해서라도 진정한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면과 외면의 조화를 찾는 첫걸음인 것입니다.


여행의 종착역 – 불완전함을 탑승권으로


월터는 영화 끝에 완벽한 치유를 얻지 못합니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여전히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대신 그는 아들 포터와 함께 부서진 시계를 하나씩 수리하며 말합니다. "이제 시간은 우리를 통제하지 않아." 이 장면은 아버지와 아들이 마침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화해의 순간입니다.

팔 하나를 잃었지만, 그는 마침내 외면적 자아와 내면적 자아 사이의 균형을 찾아갑니다. 비버 인형을 통해 얻은 소통의 기술은 유지하되, 이제는 그 가면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는 법을 배운 것이죠.


포터 역시 노라와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배웁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대필하던 그가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야스퍼스의 철학이 말하는 '본래적 자아'란 완벽함이 아니라 상처와 결함을 포용한 채 삶을 향해 계속 걸어가는 태도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도 외면과 내면이 충돌하는 순간, 월터처럼 고통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 작은 결단이 당신의 진짜 여행을 시작할 티켓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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